산수유꽃 그리고 열매
출근길 아파트 화단에 산수유꽃이 피어있는 걸 보았다.
봄이니까 꽃이 피는 건 당연하지만, 노란 꽃 아래 매달려 있는 쭈글쭈글한 산수유 열매를 보니, 왠지 짠해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방언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 너는 왜 아직 가을과 겨울을 붙잡고 거기 매달려서 버티는 거니? '
대답이 없다.
꽃에서 태어나 여름의 초록 잎 아래서 적당한 더위와, 안전한 바람과, 필요한 비를 맞으면서 가을이 왔을 때, 빨간 열매가 되어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을 때, ' 너 참 탐스럽게 예쁘다. 너 참 어여쁘다 ' 했었다.
계절은 사람에게만 가혹한 게 아닌가 보다.
내가 자식에게 너를 낳고 돌봐주었으니 이제 네가 나를 보아주렴. 하는 것처럼 저 늙어 쭈글 해진 산수유 열매가 새로 피어나는 꽃에게 마지막 양분을 주고 있는가 보다.
겨울에 주차장을 향해 걷다 보면 힘없이 떨어진 빨간 산수유 열매들이 꼭 작은 핏방울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무심코 지나는 발걸음에 밟혀 형체가 없는 것들도 있었고, 안쪽으로 떨어진 것들은 그나마 형체를 보존한 채 시들어갔다.
자연사와 사고사 그 차이려나.
봄이 되면, 하얀 목련꽃에 눌려 꽃이어도 크게 눈길도 못 받으면서 아무 말 없이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걸음에 노란 웃음으로 하루의 인사를 건네는 산수유 꽃이다.
그러다 또 담장을 노랗게 물들이는 개나리가 피고 나면, 산수유 꽃은 왠지 더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꽃이 열매를 위해 때가 되면, 조용히 지고 또 그 자리에 봄이 오면 다시 꽃이 핀다.
나의 어머니에 어머니가 어머니를 낳고, 그 어머니가 나를 낳으시고, 내가 나의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처럼, 봄꽃은 생명의 첫 문이고, 또 끝의 문이기도 하다.
봄이 지나가고, 더위가 찾아오면 내가 오늘 만난 쭈글쭈글 산수유 열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고, 새롭게 초록 열매가 열리면 난 또 어머 너 귀엽고 예쁘네 할 것이다.
사람들과의 인연도 그러하듯이 말이다.
몇 년 전, 우연이 옷가게 주인이 예뻐서 옷도 예쁘겠지 하면서 그 가게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리고 옷을 고르는 내내 ' 어머 사장님도 예쁘고 옷들도 다 예뻐요 '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길에서 우연히 그 사장님과 마주쳤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몸도 조금 불어있었고, 얼굴도 많이 상해서 몇 년 전 내가 예쁘다고 호들갑 떨던 모습이 아니었다. 계절이 여러 번 변했으니 저이도 변한 걸까. 돌아서는 길에 한참 그 사람의 옛 모습을 떠올려 본 적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꽃들도 마찬가지다. 봄이 오면 활짝 피었다가, 여름이 되면 초록이 되고, 가을이 오면 그 꽃나무에 꽃이 피었던 건 기억에서 사라지고, ' 벌써 낙엽이 지네 '라고 하면서 그냥 나무구나 한다. 겨울이 오고 앙상해진 가지를 보면서 네가 무슨 나무였더라 할 때도 있다.
계절은 꽃만 데리고 가는 게 아니라, 기억도 데려가나 보다.
노란 산수유꽃 아래 매달린 시들해진 산수유 열매야.
' 너도 한때는 꽃이었고, 싱싱한 열매였으며, 빨갛게 토실토실 잘 영근 산수유였었어.
모두가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기억해 줄게. 너에게도 생이 있었고, 계절이 있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