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말하다

프롤로그

by 서윤
프롤로그


내가 살았던 인생에서

흥미로웠던 것들은

오직 나 자신에게 이르기 위하여

내가 내디뎠던 걸음들뿐이었다.


ㅡ헤르만 헤세 ㅡ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자신을 붙잡고 괴롭히던 피해의식, 서러움을 내어놓기 위한 끝없는 노력에도 끝내 가슴 한편에 대못으로 박혀있는 나의 이야기를 이제 용기 내어 풀어놓으려 한다.


엄마와 딸, 할머니와 손자, 고모와 조카 어쩌면 누구도 스스로 원했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가족이라는 것, 가족과의 관계라는 것, 엄마도 나도 여자였다는 것, 우리는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다.


엄마는 부유한 집 큰딸로 태어났지만, 갓난아기 때 화롯불에 넘어지면서 화상을 입고, 한쪽 얼굴, 가슴, 손에 장애를 입었고,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갈 수 없었기에 외할아버지는 선비집 둘째 아들을 데릴사위로 들여서 엄마가 혼인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 형제는 5남매였는데, 큰아버지는 딸만 넷이었고, 작은아버지는 어렸을 때 홍역을 앓고 난 후에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 하게 되어서 혼인은 했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는데, 작은아버지는 유난히 우리 아버지를 좋아하셔서 평생을 우리 가족으로 함께 살았다.


엄마는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을 낳으셨는데 둘째 아들은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보냈지만, 양육은 우리 부모님이 하셨다. 문제는 작은아버지에게도 양자로 보낼 아들이 필요했다는 거다.

엄마는 아들 둘을 낳은 후에 내리 딸만 7명을 낳으셨고. 7번째 딸이 바로 나다.


내가 태어날 당시에 큰오빠는 결혼을 해서 나보다 두 살 많은 딸이 있었고, 나보다 4일 먼저 태어난 아들이 오빠의 아들이면서 우리 집 장손이다.

오빠의 아들은 우리 집안에 내리 딸만 7명이 태어나고 얻은 아들이면서 장손이었으니 가족들의 기쁨은 대단했을 거다.


나는 조카와 4일 차이로 태어났는데 기다리던 아들도 아니었고, 더구나 며느리는 아들을 낳았는데, 시어머니가 또 딸을 낳았다는 상황은 나의 엄마도 고통이었을 거다.


엄마는 결국 식구들 몰래 갓난아이였던

나를 한밤중에 뒷산에 버렸다고 녹음기처럼 평생을 틀어주었다.

죽지도 않고, 울어대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데리고 와서 키웠다는 엄마의 레퍼토리를 나는 항상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들어야 했다.


아들이 필요했던 집안에 딸로 태어난 것도 딸을 낳은 엄마도 잘못은 없다.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딸이라는 이유로 멸시하고 외면하고 미워하는 엄마를 전부 이해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엄마를 무조건 미워할 수도 없었다.


'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 '

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다만, 깨무는 강도가 어떠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라고 늘 생각한다.




내 안에 깊숙이 박힌 독약을 이제는 해독시키고 싶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고 어떤 지우개로도 지울 수 없었던 슬픔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꺼내면서 지우고 싶다.

나 자신을 위해 용기라는 걸음을 내디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