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1
지워지지 않는 기억
내가 다섯 살 쯤으로 기억하는 어느 날 마당에서 어떤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용했던 집안이 소란스러워지고 가족들이 큰 대문 쪽으로 몰려가길래 나도 대문 앞으로 달려갔다.
그곳엔 나와 체구도 비슷하고 어딘가 얼굴도 닮은 남자아이가 서 있었는데
서로 안아주려고 아니 안아주고 싶어서 모두의 얼굴엔 흥분이 가득 차 있었다.
내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표정들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질투인지 투정인지 모르는 마음으로 있는 힘껏 그 남자아이를 밀쳐서 넘어트렸다.
그때 엄마의 손이 내 작은 뺨을 후려쳤고 뒤이어 들려온 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목소리로 지금도 내 귓가에서 윙윙 소리를 낸다.
" 감히 니까짓 게 누굴 건드려 "
가족 누구도 나를 달래주거나 괜찮으냐고 묻지 않았고, 넘어진 그 남자아이를 일으켜 안아서 다친데 없느냐고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면서 나를 향해서는 경멸의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날 엄마에게 쓸모없는 존재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대문 앞에 그 남자아이는 나보다 4일 먼저 태어난 친조카였고, 우리 집 귀한 장손이면서 엄마에게는 큰손자였다.
손자가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어떻게 그런 매몰찬 눈빛과 잘 벼려진 칼날 같은 손으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막내딸의 뺨을 후려칠수 있을까 ? 살면서 그 장면은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힌다
그리고 그날 나는 가족에 의해서 종이조각처럼 마당에 버려졌다.
겨우 다섯 살에 차별이라는 독초에 찔리고 상처라는 독약을 마시고, 영원히 치료되지 않을 흔적이 가슴에 새겨진 날이었다.
어쩌면 조카도 나처럼 그날의 기억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할 때가 있다.
그 기억이 조카와 나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각자의 생각으로 남았을 것이다.
가족의 저울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더라도 운명의 저울은 같은 무게이길 바랐지만, 그 조차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조카와 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그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조카는 그날부터 자신이 대우받는 걸 당연시 여겼고, 나는 외면당하는 걸 감당해야만 했다.
조카와 나의 간극은 하루하루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다른 모습으로 운명의 선이 분명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조카와 나는 반대의 모습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그날 나의 얼굴에 새겨진 엄마의 손자국은 사라졌지만, 마음에 남은 손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