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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먹는여우랄라 Nov 04. 2022

야식의 맛 입문기

이제, 몸을 키워보려 합니다.

  아이가 아침부터 나를 보며 빙글빙글 웃더니 주먹을 쥔 손을 눈두덩이 위에 올려 놓고, “엄마 눈이 이렇게 튀어 나왔어. 밤톨같아.”한다.


  요즘 밤마다 우리 가족은 야식을 즐긴다. 아니, 즐기려 애쓰는 중이다. 어제는 오후 5시에 밥을 먹고 저녁 9시에 보드게임을 하며 다시 라면을 두 개 끓여 먹었다. 눈두덩이가 밤톨이 될 걸 알지만, 아침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야식이라니, 그것도 무려 라면이라니 말이다.


  나는 아이를 가졌을 때, 자연주의와 전통육아에 빠져 있었다. 심지어 출산할 때는 산파를 불러 집에서 낳고 싶어했고 자연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으며 아이의 옷도 세제없이 빨거나 삶아 입히는 유별난 자연주의 엄마였다. 특히 큰 아이 때는 라면을 사 본적도, 햄을 사다 구워본 적도 없었다. 명절 선물 세트에 들어있는 햄은 햄을 좋아하는 집에 기증했고 배달음식에 딸려오는 탄산도 버리거나 모아두었다가 다른 집에 주기 바빴다. 심지어 나는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면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 내가 작년 가을부터는 달라졌다. 아이의 몸을 키울 수 있다면, 자다가도 밥상을 차려줄 수 있고 밤 마다 치킨을 함께 먹어줄 수도 있는 마음으로 바뀐 것이다. 작년 가을, 둘째 아이가 운동 선수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들이 예뻐하는 입맛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김치류를 가리지 않고 잘 먹고 국, 찌개, 나물을 편식없이 골고루 먹는다. 키는 평균 이상이고 몸은 날렵하다. 말랐지만 탄탄한 몸을 가진 아이라 어느 누구도 아이의 발달이나 몸집에 대해 말을 꺼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운동을 시작하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작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아이의 체구를 걱정한 적이 없었는데, 선수들 틈에 세워놓으니 가리지 않고 골고루 잘 먹는 예쁜 습성은 ‘말랐다.’거나 ‘힘이 없다’는 말에 묻혀 명함도 내밀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야 ‘선수답다.’‘힘이 좋겠다.’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선수들에게 적합한 칭찬의 언어였다.  


 그래도 나는 얼마간은 먼 미래에 ‘더 건강한 아이가 될 거야.’ ‘결국은 클 거야’란 말로 이런 상황을 버텼고 양을 늘리기 보다 좋은 것을 더 가려 먹이는 쪽으로 신경을 썼다. 영양제도 먹여 보고 몸에 좋은 식재료로 더 맛있는 요리도 해 주고 우유도 양을 늘려 먹였다.


  그런데, 알다시피 좋은 습관은 오래 버텨야 결과를 낼 수 있고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결국은 크겠지만, 1년에도 수없이 이루어지는 대회 때마다 자신의 기량을 평가받는 선수들에게는 칭찬을 마다하지 않고 권장되는 방법은아닌 것이다. 조금 더 빨리 키워야 하고 결국 얻게 될 예상 키보다 더 클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운동 선수들에겐 권장된다. 아이를 훈련시키는 감독님도 아이의 몸을 키우라고 권하였고 몸이 커야 힘이 생긴다는 충고를 여러 사람에게 듣게 되었다. 더구나 주위에선 덩치가 큰 아이들조차도 성장 주사를 맞히고 있었다. 결국 선수에게 몸이란 가장 큰 자산이고 능력으로 취급됨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렇듯 뒤늦게 깨달음을 얻었다. 왜 늘 깨달음은 뒤늦게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선수가 된지 1년 즈음이 되어서야 이 깨달음이 변화를 촉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은 늦었지만 나는 요즘 주위에 운동선수를 키운 엄마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있다. 다들 이구동성 ‘매끼에 고기를 먹여라’ ‘밥 양을 늘리고 늘려지지 않는다면 영양 쉐이크를 먹이라’ 했고 또 다른 엄마들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끼니와 끼니 사이에 고열량 간식을 먹이라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들에게 고기를 잘 먹이지 않는 편이었다. 한 주에 한 두번 고기를 먹이고 대부분은 채소반찬과 생선, 어패류를 먹였다. 우유도 아이에게 안 맞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시고 싶을 때만 먹도록 했고 간식은 주로 과일이었으며 야식은 위에 안 좋을 것 같아 먹이지 않았다.


  이제 달라지기로 했다.


그야말로 ’작정하고 먹이기‘에 돌입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린 야식의 세계로 입문하게 되었다. 요즘은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고기 요리를 고민하고 끼니 때는 밥 양을 늘리기 위해 국그릇에 밥을 푸고 간식으로는 인스턴트도 마다하지 않기로 했다. 그뿐 아니라 “엄마, 밥!”이란 소리를 제일 반갑게 여기며 “배고파”라는 말을 가장 사랑하는 말로 여기기로 했다. ’밥‘이란 단어엔 자다가도 반갑게 일어나 밥상을 차리기 위해 마음 수련에 돌입했다.  


  그리하여 운동 선수인 둘째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마저도 두어달 전부터 야식에 빠지게 되었다. 햄버거, 라면, 빵 가릴 것 없이, 그리고 시간대와 상관없이 ‘아무때나’ 그뿐 아니라 먹거리의 종류도 개념치 않게 되어 ‘아무거나’ 먹어 치우고 있다. 자연식과 채식주의는 저 먼 나라 이야기로 날려버리고 ‘선수 몸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뭐 좀 먹고 싶은데…”란 말은 요즘 나를 곧장 움직이게 하는 동작 버튼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이 아직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느 면에선 부작용 아닌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일단, 선수님은 운동량이 워낙에 많아서인지 몸무게가 늘기는 커녕 마른 몸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비선수군 중 첫째 딸아이는 한참 성장기여서인지 선수와 같이 그 많은 먹거리를 즐겁게 먹은 결과 비선수인으로서는 하루가 다르게 몸피가커지고 있다. 첫째 아이는 여자아이로서는 달가운 일은 아닌지 자신이 자꾸 뚱뚱해지고 있다며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다. 거기다 나머지 늙은 비선수 둘 즉, 우리 부부는 하루 하루 속이 부대끼는 부작용과 함께 아침마다 눈두덩이가 밤톨만해지기도 하고 주먹만 해 지기도 해서 화장을 해도 가려지지 않는 안타까운 외양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야식을 이어가고 있다. 첫째 딸아이의 덩치가 커지는 것은 키도 몸도 작은 엄마의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라 말리고 싶지 않고, 우리 부부는 선수님의 행복이 곧 우리의 기쁨이므로 효과 좋은 소화제를 준비하기로 했다. 선수님이 야식을 즐겁게 먹을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우리의 몫으로 받아들일 용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선수님의 몸피가 자랄 때이다. 아니, 자라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럼, 오늘 밤엔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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