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황장애일까?

갑자기 가슴이 뛰면 화장실이 가고 싶다.

by 책먹는여우랄라

#1. 공황장애일까?

어떤 사건이 먼저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라고 여겨지는 일은 대표기도로 나섰던 지난가을의 일이다. 교회는 내게 무척 익숙한 장소다. 가끔 강의를 나갈 일이 있는데, 한 장소에서 6회, 8회를 하는 작은 수업 강의를 제외하고 모든 강의는 낯선 장소에서 한 번씩만 이루어진다. 그럴 땐 늘 긴장한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후들후들 떨리고 목소리가 떨리다 못해 갈라지는 시간이 10여분 지나간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인지라 그 10여 분이 지나고 나를 보는 청중들의 시선에서 공감과 지지의 눈빛을 읽은 어느 시점부터는 떨림이 잦아들고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간다.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을 하나하나 집어가며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절에 유머를 던지고 상대의 반응을 지켜보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행사는 이런 낯선 강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교회란 공간은 내겐 어릴 때부터 자라와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고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수십 년을 함께 지내온 사람들인 터라 내 가족 대하듯 편안하다. 그만큼 마이크를 잡자마자부터 농담을 던질 수 있는 편안함이 있는 곳이 내겐 교회다.

그런데, 그날, 나는 그 공간이 무척이나 낯설었고 두려웠다. 그날은 대표로 강단에 올라하는 기도이니 떨릴 만도 하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지만,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떨림이었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낯선 두근거림이 습격했다. 갑자기 훅하고. 가히 습격이라 할 만큼 숨이 차기 시작했다. ‘어? 이건 뭐지?’했으나 마음을 되짚어볼 수도 없이 기도 자리에 섰고 나는 기도문을 읽어 내려갔다. 겨우 한 줄을 읽었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라 다음 줄을 읽기가 힘들었다. 다시 ‘마스크 때문인가 보다’라고 위안하려는데 다음 문장이 가쁘게 뱉어지고 숨을 고르려 다음 문장 앞에서 쉬었는데 숨을 고를 수가 없이 더욱 차올랐다. 그렇게 몇 줄을 더 읽었으나 밖으로 뛰쳐나가 마스크를 벗어버리고픈 급박한 숨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아멘으로 마무리하고 내려와야 했다. 자리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혼자 숨을 고르며 이상해진 나를 고민하느라 그날의 예배시간을 초조와 긴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교회에서 앞에 나설 일이 생겼는데, 또다시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날은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자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요의를 느꼈다. ‘예배 중간에 나간다는 것은 목사님께 예의가 아닌데, 내가 일어서는 순간 모든 교인들의 시선을 받게 될 테고 예배의 흐름을 끊을 텐데’ 하는 생각에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참아보려 하였지만 그럴수록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아 조용히 일어나야만 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심호흡을 했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행동이 강박장애 환자의 손 씻기 의식인 듯 화장실을 다녀오니 긴장이 풀려 예배 시의 다음 상황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예배 중에 나도 모르게 숨이 차오르면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요의가 찾아왔고 화장실을 다녀오면 괜찮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올해 들어서면서는 버스에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집에서 일터까지는 버스로 20여분. 겨우 20여분인데, 버스를 타고 있다가 어느 순간 숨이 차오르면 화장실이 참을 수 없이 다급하게 가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버스에서도 내려야 했다. 그런데, 내려서 마스크를 벗고 천천히 걸으며 마음을 이완시키면 화장실을 조금은 더 견딜 수 있었다.

‘무슨 일일까?’

나는 한참을 생각해야 했고, 내게 엄습해 있는 불안과 걱정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아야 했다.

그런데, 아는 것 같다. 나는. 나는 내가 왜 이리 힘들어하는지.

그렇지만, 나는 이런 나를 인정할 수가 없다. 여기서 멈추고 싶지가 않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열심을 다하고 있는데, 지금은 조금 어려워도 더 버텨봐야 할 텐데, 다들 이만큼은 하고 있지 않을까? 다들 이만큼의 어려움은 있지 않을까? 이 정도 어려움으로 징징대야 하는가? 이 정도는 버티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이들도 이 정도는 하고 살 텐데, 내 몸과 마음은 뭘 이리 쉽게 반응하는가?

불안이, 또 다른 불안으로 이어지듯 생각이 생각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나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나를 보듬어주지 않았다.

평소에도 잘 참는 나이니까 또 참아내야 한다고 그저 무심하게 굴었다.

무언가 해내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내게 쉼을 허락하지 않았다.

먹은 나이만큼 이 만한 일은 이겨내야 한다고 오히려 나를 다그쳤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특히나 친한 친구나 가족들을.

그들에게만은 나의 힘듦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잘 버텨서 결국은 무언가 해낸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심리적으로 약한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바람이 나를 더욱더 불안하게 할 거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책을 보다가도,

걷다가도

화장실이 급해져 버스에서 내려서도.

나는 나 스스로 공황장애가 왔구나. 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니 이 또한 건강한 또 다른 마음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리고 버티려 했다.

그런데 마음의 작용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 그 많은 사람들이 유약해서 그렇겠는가?’ 다들 버티고 버텼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벌써 한 5개월이 지나을 즈음,

그날은 집에서부터 가슴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하더니 버스에서 내려야 했을 뿐 아니라 내려서 바람을 쐬는데도 안정이 되지 않았고

이러다간 버스를 아예 못 타고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상담과 초음파검사, 그리고 질문지 작성, 다시 상담.

선생님은 그래프를 보여주며 공황장애의 자율신경계 그래프는 정상보다 확연히 높이 올라가 있는데, 나의 경우는 반대로 낮게 떨어져 있으며 질문지와 상담상으로 볼 때 공황과는 다르다고 하셨다. 활력이 없고 무기력해져 있는 상태라고. 많이 지치고 힘든 상태라 유사증상처럼 나타난 것 같다 하셨다. 설명을 완벽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많이 힘드셨나 보네요.’ ‘많이 지쳐있으세요.’라는 두 문장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턴가 ‘어른은 참아내는 사람’이란 생각을 한 걸까?

꿋꿋이 눈물을 참아냈다.

아마도 눈물을 쏟지 않은 건 여전히 나를 붙들고 있는 자존심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나를 보듬기보다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붙들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은 약을 일주일치만 줄 테니 먹고 편안히 있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힐 거라 했다.

과연 그럴까?

첫날 아침 약을 먹었다.

공복에 먹어야 한 데서 아침에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신 후 약을 먹고

편안히 앉아 있었다. 주신 약이 뭔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내가 간 정신과에선 처방전을 주지 않고 병원에서 바로 약을 제조해 주었고 약 봉투에도 약 명이나 용량이 기재되지 않아 무슨 약인지, 기대효과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선생님이 약을 먹으면 졸릴 거라 했는데, 졸리지가 않아서 약이 도대체 작용을 하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