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먹는여우랄라 May 26. 2023

사춘기 딸 VS 40대 엄마의 여행의 이유

딸과의 오사카 여행


저 사람한테 물어보자.”

딸 아이는 물으러 가려는 내 팔을 잡으며 눈썹을 찡그린다.

“엄마, 구글맵에서 다시 찾아볼게. 가만히 있어 봐”

“물어보면 되지. 뭘 또 찾아.”

“아이, 쫌”

‘아이 쫌’은 아이가 사춘기가 된 이후 자주 쓰는 말이다.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아이는 살짝 내게 눈치를 주더니 느릿느릿 사진 찍을 자리를 잡으며

“엄마, 셀카봉은 왜 안 써?”라고 따지듯 묻는다.



전에도 느꼈지만, 이번 여행에서 확신을 얻었다. 

사춘기 아이들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 

모든 물음은 인터넷에 쓴다. 


나는 습관적으로 사람들에게 묻는데, 그러면 내 팔을 잡으며 하지 말란 뜻으로 눈살을 찌푸린다. 내가 무언가 실수하는 것처럼, 혹은 보통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내가 하려는 듯 살짝 창피하게 여기는 것도 같다. 사실 나는 이 과정이 더 답답하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면 더 잘 알 것 같은데, 굳이 구글맵을 들고 방향을 이리저리 맞춰 보거나 이곳에 왔다 간 한국인들의 블로그나 인스타글을 들여다본다.


비단 해외여행에서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그렇다. 모든 궁금증과 떠오른 질문들을 인터넷에서 해결한다. 한국에서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이니 뭐 그럴 수 있다 치는데, 해외에서 그러는 건 왠지 논리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일본에 왔으므로 일본 사람들이 더 잘 아는 것이 당연할 텐데도, 일본인에게 묻는 걸 만류하고 인터넷에만 물으니 말이다.


처음엔 사춘기라 그렇겠지 했는데, 20대 딸을 둔 언니들도 이구동성 ‘우리 아이도 그래’라고 하는 걸 보면 세대의 문화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온라인의 세계가 편하고 이를 잘 다룰 줄 알게 된 세대는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사람에게 묻는 것은 가장 마지막 방법이다.


그런데, 이것이 아이들의 문화라해도 여행에 대한 나의 가치와 동떨어진 행동이라 이번 여행에선 많이 아쉬웠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또한 ‘여행기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19쪽)고 했다.




즉, 여행이란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여행의 실수는 여행을 여행답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세대다. 여행은 내게 새로운 경험의 창구이면서 새로운 만남의 조건이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국적인 경험들을 하게하고 한국에서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게 하는 것이 여행이며 특히나 그 여행지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서 받는 환대의 경험은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래서 나는 해외에 나가면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고 외국인 친구의 초대를 반기며 길도 자주 묻는다. 대체로 많은 외국인들은 친절과 환대로 반응한다. 인간은 보편적으로 타인에게 호기심과 관심이 있게 마련인데, 타지에 나와 있는 타국인의 경우에는 거기에 낯선 곳에서 겪을 어려움에 대한 측은함과 돕고자 하는 마음이 더해지기에 배려와 환대를 보이는 것이다. 지금껏 여행에서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가 길을 물으면, 길을 정확히 찾아 가는지 끝까지 지켜보는 배려를 보이고 혹여 딴 길로 갈 때는 다시 와서 길을 직접 안내해주었다.


 그리고 물었었다. 어디서 왔는지, 여행의 목적은 무엇인지, 오늘은 무엇을 할 예정인지. 나는 이런 질문들이 좋다. 나와 누군가와 연결되는 질문들. 왠지 또 어디선가 만날 것 같은 친절함.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딜 가는 중이라고 하면 상대는 거긴 이래서 좋고 이런 건 조심하라 말해주기도 하고 여행 중이라 하면 어디로 한 번 가보라고 현지인이 알고 있는 추천 장소와 맛집을 알려준다. 나는 그들의 환대를 통해 인간에 대한 보편적 애정이 다가올 때 여행이 좋아진다. 어쩔 땐 또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객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는데, 대체로 이런 여행객과는 또 다시 만나게 된다. 여행객의 동선은 대체로 유명관광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번 더 만나게 될 때는 왠지 모를 동류의식이 생겨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자유여행을 선호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사람을 만나길 꺼려한다. 어려워한다는 것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의 세계가 편해서 일테지만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준비되지 않은 상호작용과 상호작용을 선택할 수 없는데서 오는 긴장감이 그것이다. ‘phonephobia(전화공포증)’라는 단어가 있다. 정식 진단명으로 분류된 것 같진 않지만 검색 툴에서 검색했을 때 다양한 자료들이 검색되는 걸 보면 요즘 이야기되고 있는 표현인 것 같다. 이는 전화가 오면 긴장되어 꺼리는 증상으로 문자나 메시지의 경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보내줄 수 있고 반응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데 비해 전화는 준비할 수 없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대응해야 하는데서 오는 불안과 걱정이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지나치게 여기저기에 phobia를 붙이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가만 보니, 우리 집 아이들도 전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부모와의 전화 외엔 대부분의 사람들과 문자나 카톡으로 대화하거나 인스타 댓글로 소통하고 있었고 전화하라고 하면 전화가 더 어색하단다. 이것 또한 세대의 문화라고 여겨야 하는데, 나는 곧잘 염려가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이는 교류와 환대를 놓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너무 완벽하게 세팅된 세계만을 바라보고 있어 세계와 세계의 틈과 교류를 막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된다.


딸아이 역시 오사카에 오기 전에 블로그, 인스타, 유튜브를 통해 오사카를 미리 익혀둔 듯 했다. 먹방 유튜버가 알려준 맛집과 블러그와 인스타 속 핫한 장소를 검색해 두었다. 오늘은 어디를 가서 무얼 먹어야 하고 어디 가서 무얼 해야 한다고. 너무 명확하고 똘똘하게 길과 장소를 안내하는 아이. 그리고 한 치의 오차 없이 검색되는 구글맵의 도움으로 실수없이 잘 돌아다닌다. 자유여행이라했지만 온라인에서 본 다른 이가 가이드 역할을 하고 우린 그에 맞춰 움직인다.



그런데, 나는 몹시 아쉽다. 일본인과의 대화 한번 없이, 지하철을 놓치는 실수없이 완벽히 한국인들이 말해준 맛집과 최고의 장소를 찾아 움직이는 것, 그것을 실수없이 잘 해냈다고 자찬하는 것이 과연 여행일까? 남들이 말해준 코스와 장소를 똑같이 도장 찍는 이 여행이 과연 오래 기억될까? 의문이 든다.

물론, 어린 딸아이는 다양한 방식의 여행을 맛볼 필요가 있다. 도장 깨기 여행도, 실수투성이 여행도, 사람을 만나는 경험도.


그런데, 혹여 ‘이게 여행의 전부’라고 여기거나 혹시 앞으로도 이런 여행만을 추구할까 염려되는 건 엄마의 지나친 걱정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딸아이의 눈물 여행기(오사카 유니버셜스튜디오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