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억 속의 친구들

인생무상

by 요기남호

아주 오래된 친구가 날 알아볼까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최근에 대학 물리과 동기들의 카톡방에 초대를 받아 들어갔다. 대학입학 40년 만이다.


카톡방에 들어가니, 기억 저편에서 희미하게 나타나는 이름들이 날 맞이했다. 이름과 같이 뜨는 사진들. 어떤 사진은 바로 이름과 연결이 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진은 한참을 물꾸러미 바라보아야만 이름과 연결이 되었다. 긴 세월의 여파는 사람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일까.


한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승헌, ㅇㅇ은 기억해?

죽기전에 한번 보고 싶네.

알아 보려나 모르겠네.^^'


이렇게, 오래된 친구가 날 알아볼까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40년은 긴 세월이다. 비슷한 직종에 몸을 담고 있는 친구들이나, 경조사에 얼굴을 비쳤던 친구들은 그동안 그래도 한두번은 얼굴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별로 변해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친구들의 사진 중 몇은 한참을 물꾸러미 바라보아야 젊음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가 있었다. 사는게 덧없다. 표지사진 속 폐허가 된 건물처럼. 이제 앞으로 각자에게 남은 세월이 얼마인가를 걱정하며, 오랜 친구를 만날 수가 있을까를 걱정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머리쓰는게 싫어, 강원도 산골 강가에 리조트를 세워 몸으로 때우고 있다며, 리조트 전경 사진을 띄운, 허우대가 크고 느긋했던 친구. 대학시절 당시 유행했던 마이클 잭슨의 달빛 춤 흉내를 내곤 하던 친구. 미국에 오래 살다가, 역마살이 더 끼었는지, 히딩크감독이 감독생활을 하고 박지성이 한동안 축구했던 네덜란드 에인트후번에 가서 살고 있다는 친구. 중고등학교 교사직을 2년반가량 남겨놓고, 은퇴후에 심리상담을 할까 준비하고 있는 친구. 모두가 각자 처한 곳에서 열심히들 살고 있다.


전라도 촌놈이었던 내가 광주항쟁 다음해에 서울로 상경한 뒤, 첫해를 가장 친하게 보냈던 친구는 경상도에서 올라온 김천 촌놈이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는 신경림의 싯구절처럼, 이 두 경상도 전라도 촌놈들은 서로 보기만 해도 낄낄거렸었다. 수줍음이 많아 낯을 가리던 나에 비해, 그 친구는 항상 웃고 천방지축이던 촌놈이었다. 그 녀석과 같이 낄낄대던 시간때문에 난 낯선 서울생활을 그런대로 어렵지않게 적응할 수가 있었다.


그 친구가 내가 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 자신의 고향 김천에 놀러갔었다는 사실을 되새겨주었다. 그렇지않아도, 내가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갔었지 아마 하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새기던 중이었다. 익산 촌놈이 경상도에 처음 가본 사건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빼고는. 강가에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1박 2일을 하며 놀았다는 디테일한 기억을 전해왔다. 난, 개울가만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기억은 선별적이다. 사진한장 남기지 못했던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그 친구가 지금 놀러 전남 나주에 와 있다고 셀카사진을 보내왔다. 10년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때, 장례식을 치른 후, 그 친구와 다른 친구 2명을 만나 술한잔 했었다. 그래서인지, 사진 속 그 친구는 낯이 익었다. 머리염색도 하고, 마스크까지 해서, 옛 모습 그대로다. 참 부지런하다. 난 게을러 염색을 못하는데.. ㅋㅋ



그 친구의 청에 오늘 자전거를 타고 강가에 나가 그 옆 까페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게으른 난, 올백이다. 그저 우아하게 나이가 들어가길 바랄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경계인의 잡담,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