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탄 프로젝트 1
1938년 겨울, 독일 베를린 소재의 카이저 뷜헬름 화학연구소 (Kaiser Wilhelm Institute for Chemistry)에서 화학자 오토 한 (Otto Hahn)과 프릿츠 스트라스만 (Fritz Strassmann)이 원자핵분열현상을 실험적으로 발견한다. 사실, 그 실험결과가 핵분열인지를 처음에 그들은 인지하지 못했다. 그 실험결과가 원자핵분열임을 증명한 과학자는 두 이론물리학자들이다. 리제 마이트너 (Lise Meistner)와 그의 조카 오토 로버트 프리취 (Otto Robert Frisch)가 그들이다. 원래 독일에서 활동하던 이 두사람은 그 당시에 덴마크에 있는 닐스 보어 연구실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유대인이었다. 히틀러의 반유대정책을 피해 독일을 탈출하는 여정에 잠시 보어 연구소에 몸을 담고 있었다. 리제 마이트너와 오랜 공동연구를 해왔던 오토 한이 그 실험후에 닐스 보어를 방문하였고, 그때 그 실험결과를 마이트너에게 보여주고 독일로 돌아갔다. 그후 며칠 사이에 마이트너는 조카 로버트 프리취와 그 실험결과가 원자핵분열임을 이론적으로 증명하였다. 오토 한과 스트라스만의 실험논문은 1939년 1월 발표되었다. 마이트너와 프리취의 이론논문도 그 직후에 세상에 공개되었다. 원자핵분열이 실제로 일어날 수가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그 당시 세계는 가파르게 2차세계대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1933년에 이미 독일 수상이 된 히틀러는 차근차근 반유대인정책으로 대표되는 인종주의와 극우정책들에 기반을 둔 철권정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에따라, 아윈쉬타인과 스질라드등의 수많은 유대인 과학자들이 독일을 떠나고 있었다. 1936년 스페인에서는 프랑코 장군으로 대변되는 극우군사세력이 평화로운 선거로 선출된 좌익정부에 대한 군사쿠테타로 내전이 시작되었다. 그후 3여년간 지속된 스페인내전에서,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뭇솔리니는 프랑코를 위한 군사적 도움을 제공하였다. 1937년 7월 동양에서는 일본이 중국본토를 침범하여 베이징을 점령하였다. 일본제국주의의 본격적인 아시아대륙침략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1938년 3월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였다. 다른 서방국가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히틀러는 고무되어 독일의 영토 팽창을 가속화한다. 1939년 3월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였고, 4월 이탈리아는 알바니아를 점령한다. 그리고 1939년 5월 히틀러 독일과 뭇솔리니 이탈리아는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철의 동맹을 맺는다. 1939년 8월 23일 독일의 히틀러와 소련의 스탈린은 상호불가침조약을 맺는다. 이 조약의 이면에는, 독일이 폴란드의 서부를 점령하고, 소련은 폴란드 동부를 점령한다는 약속이 있었다. 이에따라, 1939년 9월 1일 독일은 폴란드 서부를 침공한다. 그리고 9월 17일 소련은 폴란드 동부를 침공한다.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다.
이러한 국제정세하에서, 물리학자들은 핵분열현상의 실험적 발견이 함축하는 군사적의미를 재빠르게 간파하였다. 이 현상은 전무후무할 폭탄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즉감하였다. 특히 히틀러의 반유대인정책으로 인해 독일을 떠나야했던 유대인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히틀러 독일이 이 원자탄을 먼저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극도의 실존적 위험을 느꼈다.
1939년 8월, 그 공포감을 안고 두명의 핵물리학자는 차를 몰고 뉴욕시 외곽에 위치한 롱아일랜드에 있다는 아윈쉬타인을 찾아간다. 그 두명의 물리학자는 레오 스질라드와 에드워드 텔러다. 두 사람 모두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 물리학자였다. 이들의 방문 목적은, 스질라드가 초안을 쓴 편지에 저명한 아윈쉬타인의 동의와 저자로서의 서명을 받는 것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내진 그 편지는 후에, 아윈쉬타인-스질라드 편지라 명명되었고, 나중에 미국정부가 대규모 예산으로 추진한 맨하탄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