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의 화신에게 트럼펫이 최적의 악기인 이유 1

트럼펫을 부는 요기 z

by 요기남호

어려서 악기를 배우면, 악기마다 교과서가 있다. 저난도부터 고난도의 음악들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하는 교과서말이다. 나중에 커서 그 악기의 프로 연주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예를 들면, 피아노는 체르니, 바이올린은 스즈키. 그 교과서들에서 처음 배우는 곡들은 대부분 동요들이다. 트윙클 트윙클 리틀 스타 (Twinkle twinkle little star) 같은. 나같은 어른들에게는 지루한 곡이다. 나처럼 중년이 되어서 악기를 배우는 것은, 프로가 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물론 프로연주가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여야한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일상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악기를 배우며 또 스트레스를 받으려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저, 즐기려고 배우는 거다.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 하나 더하려고. 이런 경우에는, 시작부터 바로 좋아하는 대중가요로 연습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빛바랜 기억 속 한귀퉁이에서 끄집어 낸 노래를 부르면, 옛 추억도 생각난다. 동요보다는 훨씬 동기부여가 잘된다.


대부분의 대중가요의 음역은 두 옥타브 안팎이다. 그정도의 음역은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으니까. 한 옥타브에는 열두개의 음들이 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대중가요를 악기로 연주하려면, 그 악기로 24개 안팎의 음을 낼 수 있으면 된다.


피아노는 다른 음을 내는 건반들이 퍼져있다. 한 음을 내려면, 그 음에 해당하는 건반을 누르면 된다. 24개 안팎의 음에 해당하는 건반들의 위치를 손이 기억을 하면, 피아노로 대중가요를 연주할 수가 있다. 나에겐 좀 복잡하다. 손가락이 외워야하는 건반의 위치가 너무 많다. 어떤 손가락으로 어떤 건반을 눌러야하는지를. 손가락에게만 이 임무를 부여하기에는 내 손에겐 좀 벅차다. 물론 부단한 노력을 하면 될 것이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내가 게으르다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에겐 트럼펫이 이상적인 악기다. 24개 안팎의 음을 내는데 손가락만이 아닌 입술도 역할을 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손가락이 기억해야할 경우의 수가 대폭 줄어든다. 내 몸의 한 기관이 아닌, 두 기관이 힘을 합치니, 게을러도 익숙해지는 게 피아노보다는 훨씬 쉽다. 물론, 피아노는 그냥 건반을 치면 음이 나온다. 트럼펫은 처음엔 불어도 음이 안나온다. 입술 주위의 근육이 발달이 되어서 불었을때 입술이 떨어주고 (버징이라고 한다) 그 입술에서 나온 떨린 공기가 트럼펫 관 안에서 공명현상을 일으켜야 음이 제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계만 지나면, 즐길만하다. 적어도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나의 연주, 아니 연습을 즐기는지는 다른 문제지만. 한달이면 이 단계를 지난다. 두달이면, 대중가요를 어색하게나마 부르기 시작한다. 60일이다. 중요한 첫 이정표가. 첫 60일만 꾸준히 하면, 이 악기는 자신의 일부가 되어간다. 아직은 어색할 수도 있지만. 석달이면, '들을만 하네' 란 말을 지인에게서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악기는 앞으로의 삶을 동반하는,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친구가 된다. 세월이 갈수록, 관계는 무르익고, 좋은 와인처럼 맛 혹은 재미는 점점 농염해질 것이다. 희망사항이다.


자, 트럼펫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데 공명현상이 핵심이다. 이 공명현상에는 조화 진동(Harmonic vibration)이라는 간단한 물리법칙이 작동한다. 직업병이다. 이런 문제를 접하면 디테일까지 생각해서 과학적으로 이해를 해야만 하는 것이.


트럼펫에는 누르는 버튼이 3개 뿐이다. 3개의 버튼을 누르거나 안 누르거나의 경우의 조합 수는 2^3 = 8가지다. 그러니, 트럼펫으로 24개 안팎의 음들을 내려면, 한가지의 버튼 조합으로 2-4가지 정도의 다른 음을 낼 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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