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산수

작은 할머니

by 요기남호

* 표지사진: 올해 만으로 94세이신 어머니의 작품. 이미 선은 다 그려져 있고, 색깔만 어머니가 칠하셨다. 그래도 색깔 선택이 밝고 참 좋다. ㅎ



어머니에 대한 수수께끼 하나가 풀렸다. 학교문턱에도 가본적이 없으신 어머니가 어떻게 덧셈 뺄셈등의 산수를 배워서 계왕주를 하실 수 있으셨느냐는 수수께끼.


오늘, 어머니를 찾아뵙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어머니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외할아버지는 부안의 꽤 잘살던 집안의 6 형제 (네 아들과 두 딸) 중에 큰아들이었다. 그런데, 어렸을 적부터 노름에 빠졌다. 그래서 그 집안에서 집과 논밭을 떼어주고 독립을 시켰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그걸 송두리채 노름으로 날렸다. 그리고 셋방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자, 다시 그 집안은 외할아버지에게 집과 조그만 논밭을 주었다. 부잣집 큰아들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할아버지가 그런 경우였다. 그래도 그후엔 그 집은 팔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어릴적 방학때 가끔 놀러가곤 했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부안 이복동에 있던 집이 그 집이었던 것이다.


그전의 글에서 썼듯이, 어머니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은 외할아버지의 봉건적 남존여비 생각때문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었던 어머니는, 학교에 다니던 친구에게서 얻은 교과서를 몰래 담장틈새를 비롯해서 집안 어느곳에 숨겨두면, 외할아버지는 귀신같이 찾아서 불구덩이에 넣어 태워버리곤 하셨다한다. 여자가 배우면 안된다며. 빌어먹을.


그럼, 어머니는 숫자를 누구에게 배우셨을까. 오늘 그 이야기가 나왔다.


외할아버지의 막내 동생 (그러니까 어머니에게는 막내 삼촌)이 그 고리다. 나에겐 막내 외할아버지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때까지 사셨다. 내가 어렸을적 나의 어머니를 어여삐여기셔서 가끔 우리집에 놀려오셔서 종종 뵌 적이 있는 작은 할아버지다. 그당시는 절에서 운수를 보는 것이 본업이시던 분이었다.


그 막내할아버지가 대학을 다니셨다. 어머니가 10살쯤 되던 해에 결혼을 하셨는데, 부인이셨던 막내할머니는 김제 죽산의 부잣집의 큰 딸이었다한다. 공부도 중고등학교까지 다니신, 제법하신 분이었다한다. 그 두분이 결혼 직후에는 부안에 사셨는데, 그때 그 막내할머니 (어머니에겐 막내 숙모)가 어머니에게 숫자를 가르치셨다한다. 막내할머니가 집안일을 다 마치신 저녁에 어머니를 불러, 이제는 여자도 숫자도 알고 자신의 이름 석자도 쓸 줄 알아야한다시며 어머니를 가르치셨다한다. 어머니가 곧잘 배우자, 이런 똑똑한 아이를 썩힌다고 한숨을 쉬셨다한다. 어머니에겐 불행하게도, 얼마있지 않아 막내할아버지 할머니는 군산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업을 하셨다.


그후 어머니가 13살때 어느날 막내할아버지가 찾아와서, 어머니를 군산으로 데려가셨다한다. 부안 할아버지 밑에서 썩히지말고, 군산에서 무엇이라도 가르치겠다며. 군산에서 막내할아버지 가게에서 잡일을 도와주며 지내고, 저녁에는 막내할머니에게 숫자를 배우셨다한다. 그당시 막내할머니 슬하에는 자식이 없어서 어머니를 매우 이뻐하셨다한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지냈는데, 할아버지 (어머니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이곳에 두면 여자 버린다며 다시 부안으로 어머니를 끌고 가셨다한다. 막내할아버지 할머니의 반대를 기어이 꺾으시고. 어머니는 그때 군산에 남았으면, 장사수완도 배우고, 막내할머니에게서 숫자와 글을 많이 배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섞인 회상을 하셨다. 그래도, 그때 배운 숫자때문에 계왕주를 할 수 있었다며 그때의 과거를 회상하셨다.


그러니까, 나의 어머니의 삶에 결정적 도움을 준 두 여자분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겐 막내 숙모 (나에겐 막내 할머니)와 계왕주를 같이 했던 친구 (나에겐 영희이모)가 바로 그 두 여자분이다. 그 두분의 공통점은 그당시에 여자로서 공부를 제법 하신 분들이다. 어머니 주위에 있던 깨우친 여성들이 어머니를 도와주신 것이다.


남존여비사상에 찌들었던 외할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어머니의 인생은 매우 달랐을 것인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