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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기우진 Sep 12. 2022

커피숍 예찬

난 촌놈이다. 소도시 익산에서 1960년대에 태어나 그곳과 인근 도시 전주에서 자랐다. 첫 대도시 경험은 1980년대 8-9년 정도 지냈던 서울에서다.


커피숍 가는 것을 제대로 즐기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시절이었다. 1980년 중반이었다. 학부때는 커피숍보다는 다방이 더 흔했었다. 그런데, 1980년 중반부터 분위기가 세련된 커피숍이 학교 주위에 생기기 시작했었다. 그때, 같이 어울려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공부를 같이 하던 친구들이었다. 그중에 부자집 아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매우 듬직하고 착했다. 호주머니에 항상 상당액의 현금을 들고 다니던 친구였다. 우리 그룹의 커피와 술은 거의 다 자신이 책임을 지던 친구였다. 얼굴도 영화배우처럼 잘생겨서 같이 어느곳을 다녀도 여학생들이 그친구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 다른 아이들은 (나를 포함) 안중에도 없게 만들었던 친구. ㅋ 그 친구와 대학원 시절 단짝이 되었다. 그당시 가난한 촌놈이었던 나는 가끔 점심을 굶었었다. 그런 나를, 그 친구는 어찌 알았는지, 가끔 무심하게 따로 불러내어, 햄버거를 사주곤 했었다. 여름에는 팥빙수도 사주었었다. 웃는 얼굴이 참 해맑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던 친구였다. 그 친구때문에 대학원 시절이 즐거웠다. 내가 그 친구에게 해준 것은 시집 한권을 사준 것 뿐이었다.


석사를 마치고 난 군대를 갔고, 군면제였던 그는 유학을 먼저 떠났었다. 그러고보니, 난 인복은 있는 편이었다. 옛날에는. 외로운 시절마다 내 주위에는 항상 곁에 있어주었던 단짝이 있었다.


대학원 시절, 점심을 같이 먹고, 근처 근사한 커피숍으로 가서 수다를 떠는 것이 우리의 일과중에 하나였다. 우리 그룹은 7-8명 쯤 되었다. 우루르 몰려가 그 커피숍에 가면, 우리 그룹은 눈에 띄는 그룹이었다..고 회상한다. 범생그룹. 그중에 한 친구는 영화배우같이 잘 생겼고. 그러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커피숍에서 일하던 아가씨 (아마 학생들?)들이 테이블에 자주 와서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어보곤 했었는데.. 그럴때마다, 난 항상 물을 부탁했었다. 얼마되지않아, 난 별명을 얻었다. '붕어'. ㅋ 물은 참 많이 마셨던 시절이었다. 커피보다는 차를 선호했었고.


일요일 오후인 지금, 캠퍼스 주위의 커피숍에 앉아 있으니 떠오르는 추억이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단짝을 찾아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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