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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기우진 Apr 28. 2023

외삼촌

며칠 전,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조카가 전해왔다.


나에겐 유일한 삼촌이었다. 어머니의 하나뿐인 남동생이었고, 또 나의 부모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신 관계로, 삼촌 집안과 우리 집안은 내가 기억하는 한 항상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다. 삼촌 슬하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촌들이 있기도 해서, 어렸을 적에는 명절과 제사 때마다 서로 오가는 사이였다.


삼촌의 향년 연세는 87세. 대학생 시절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알고 난 후, 난 나의 부모님세대들을 그저 사랑하기로 했었다. 그 세대분들이 어려서 그리고 젊었을 적에 겪은 일들은 일제 치하, 한국전쟁,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자식들을 교육시키는 과정까지. 그 세대에게 지워진 시대적 과업은 매우 힘든 일들이었다. 내가 그 세대에 속하지 않고, 그 세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을 고맙게 생각하여왔다. 그 세대의 피땀이 어린 희생의 혜택을 받았으니까.


삼촌은 딸 셋에 막내아들 하나인 부안 집안에서 막내아들이었다. 그 집안의 사랑과 관심을 거의 독점하지 않았을까 한다. 나의 어머니는 둘째 딸이었는데, 당신의 하나뿐인 남동생을 아주 각별하게 생각하셨다. 삼촌과 얽힌 나의 가장 오래된 두가지 기억은 삼촌이 익산에서 제법 큰 음식점/술집을 하실때 그집에 놀러가 맛있는 반찬과 함께 밥을 먹었던 기억,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때 여름방학이면 삼촌은 부안 해수욕장에서 무슨 상점을 꾸리신 듯 한데, 그때 우리 가족이 그 해수욕장에 놀러가서 사촌들과 같이 물놀이를 한 기억이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때부터는, 쌀가게를 하셔서, 나의 조카들은 삼촌을 쌀집할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삼촌은 외할머니를 닮아서, 미남이셨다. 그리고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띄셨다. 적어도 나에겐. 성격이 가까이하기엔 어려웠던 나의 아버지와 별탈없이 잘 지냈던 친척들은 별로 없었는데, 삼촌이 그중에 한 사람이셨다. 삼촌은 남 흉보는 소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는 성격이셨다. 다른 사람이 남 흉보는 이야기를 하면, 그저 허허 웃으시며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곤 하셨다. 어린 나에겐 그런 삼촌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듯 싶다. 내가 학업을 위해 서울로 그리고 타국으로 떠난 후, 가끔 고향에 들릴때마다, 잊지 않고 뵙고 식사를 같이 한 친척은 삼촌이 유일했다.


12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삼촌은 매일 아침 당신의 누나인 나의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하셨다. 내가 가끔 어머니댁에 방문을 하고 있으면, 매일 낮에 자건거를 타시고 우리집에 오셨었다. 마루 혹은 안방에 앉아 삼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새록하다.


'20-30대 때는 세월이 잘 안가더니, 40대 때는 세월이 빨리 가더라.'


내가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때였다. 학부시절이었는지 석사학위과정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름이었던 기억이다. 부모님댁에 내려와 며칠 지내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삼촌이 찾아오셨다. 따스한 햇볕이 드는 마루에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삼촌이 '... 40대 때는 세월이 빨리 가더라.'라는 말을 가벼운 헛웃음과 함께 하신 것이. 그러니까, 그 당시 삼촌은 50대 초반이셨을 것이다. 40대를 훌쩍 넘기고 당신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허탈한 심정이 드셔서 였을까.. 그때 난 사실 삼촌이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보이셨다. 혈기넘치는 20대초중반이었던 내 눈에 50세가 넘은 사람들은 다 할아버지 할머니 처럼 보였으니까.. ㅋ 그런데 이제 내가 59세가 되었다.. 지금 20-30대 청년들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바로 그때의 삼촌의 모습이 아닐까.. 세월무상이다.


작년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때, 익산에 내려가 삼촌을 찾아뵈었었다. 2-3년전에 자전거에서 넘어지신 후에 거동을 잘 못하시고 계셨다. 그 모습이 나에겐 삼촌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삼촌의 미소가 보고싶다. '허허'하는 소리와 함께.


삼촌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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