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의 11일: 첫째날

사랑과 이별

by 요기남호

* 제목 그림은 연송 김환수 화백의 작품.


2021.7.4. 일요일


누구나 겪는 일이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


어머니가 물었다.

'언제 미국에 돌아가냐?'

'16일 요.'

'그럼, 언제 또 오냐?'

'내년 여름에 오겠죠.'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을랑가..'

'그럼요, 100세까지 사시고, 또 10년 더 사셔야죠.'

'그럴까..' 하시며 희미하게 웃으셨다.


2년만에 뵙는 어머니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 여름에는 오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에 이번 일정도 바뀌었다. 원래 한국을 방문할 때는 개인적인 방문이었다. 그리고 2주정도 머무르곤 했었다. 어머니를 뵙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으니까. 그 외에는 꼭 뵈어야할 선생님과 만나야할 친구들 몇 뿐이었으니, 2주면 충분했다. 그런데, 이번엔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공적 방문거리를 찾았다. 다행히 최근에 연구한 결과가 한국의 한 연구소에 있는 팀과 공동연구가 가능한 주제였다. 그래서, 그 팀이 나의 방문을 주선해 주었다.


그 연구소는 대전에 있었다. 어머니가 계신 곳에서 KTX로 50분 가량 떨어진 곳이다. 그래서, 방 2개가 있는 숙소를 얻었다. 어머니를 그 숙소에 모시고 같이 지낼 의향으로. 그런데, 여기서부터 엇나기 시작했다. 먼저 어머님이 오시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내가 낮에 출근을 하면 혼자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야하니, 그것이 싫으셨다. 막상 한국에 들어와 이 숙소에 와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숙소가 너무 협소했다. 어머니가 오실 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의 생각이 짧았다.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친 6월 26일 오후에 어머니의 익산 집에 내려갔다.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다음날 다시 대전에 올라왔다. 수요일이었다. 연구소에 나와 일을 하고 있는데,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익산에 간다고.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내려 오라고 했다며. 홀로 생활을 하시니, 끼니를 제대로 챙겨드시지를 못하신다. 그래서 기운이 너무 빠져서, 잠시 쓰러지신 듯 하다. 환영이 보였다고 하셨다. 누워있는데, 남자 두사람과 여자 한사람이 당신의 머리맡에 서서 당신을 내려보고 있었다고 하셨다. 누나는 저승사자였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겁이 나셔서 누나에게 당신을 데려가라고 하신 것이었다. 고집이 대단하셔서, 당신이 숨을 거둘때까지, 당신 집에서 홀로 사시겠다던 어머니가 이젠 겁이 나신 거다.


다행히 누나의 집은 대전에 있다. 연구소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 갔다 할만한 거리에 있다. 목요일에 누나가 어머니를 모시고 대전 누나집에 돌아왔다. 그날 연구소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에 잠깐 누나집에 가서 어머니를 뵈었다. 누나가 억지로라도 음식을 좀 드시게 하였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괜찮으신 듯 보였다.


지난 주말을 서울에서 보냈다. 한국에 방문하면 꼭 찾아뵙는 백낙청 선생님과 몇 친우들을 만나고 대전에 돌아왔다. 누나집에 들렀다.


테레비에서는 트로트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하루종일 보고 또 보는 프로그램이라고 누나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추억의 노래를 듣게 되나보다.


누나가 말했다. '꿈쩍을 안하실라고 해. 동네에 좋은 공원이 있는데, 그곳에 가자고 해도, 싫타시네.'


사가지고 간 과일을 앞에 두고, 어머니가 물어오신 거였다.

'언제 미국에 돌아가냐.'


누나가 차린 저녁식사를 하고, 어머니께 잘 주무시라는 인사를 드렸다. 누나의 아파트를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나의 숙소로 향했다. 어머니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하나..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날씨도 협조를 하지 않는다. 내일 오후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누나와 메세지를 주고받았다. 누나 아파트를 리조트로 생각하기로 했다. 남은 한국체류 11일 동안. 매일 초저녁에 그 리조트에서 어머니랑 누나랑 재미있게 놀기로 했다.


무엇을 하고 놀까.. 어머니와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