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된 편지
* 누나집 책장에서 나온 편지. 정확히 35년 전에 내가 어머니에게 썼다는 편지. 글씨체도 지금과는 다르게 조심조심 예쁘다. 이글을 쓴 기억은 있다. 한여름이었다. 지금처럼. 7월의 하루. 그런데, 이 글을 부모님께 보낸 기억은 나질 않는다. 대학원 2학년때였다. 내나이 만 22년 7개월. 여름방학때 고향집에 내려가, 마당 빨래줄에 걸린 어머니의 낡은 셔츠를 보고 쓴 글이었다. 누나가 이 편지를 접어 그 이듬해 내가 준 석사 논문에 끼어 놓았었단다. 그래서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오늘, 반백이 되어 돌아온 내 눈앞에 놓여있다. 그 글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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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 아버님, 어머님께
25년 되었다는 옷.
내 나이 스물 넷.
날 나으시기 한해전, 혹은
나의 이 생명을 이미 몸에 지니고 계셨을
그때. 길바닥 싸구려 좌판앞에서
큰 마음 먹으시고 꼬깃꼬깃 접힌
돈을 끄집어 내셔서 사셨을 그 옷.
그 옷이 지금.
스물 넷이나 된 아들의 눈앞
빨래줄에 가냘프게 널려있다.
빠신 횟수는 얼마나 되었을까?
"그게 뭐여! 풍신나게에!
그렇게 고생혀서 아들 갈쳐봐야
소용도 없디야.
갈쳐봐야 장모허고 지 색씨 뿐여.
ㅇㅇ엄니 안봐?"
"우리 아들들은 글 아녀어"
"그려~ 글 안나 봐~"
이 자식놈들 내려갈 적마다
동네 아주머니들 장난흉을 일말의 걱정
아들이 사준 옷을 입으실 그날을
생각하시며 되뇌이시곤 하시는 어머님
그 기나긴 기다림으로 깊이 패인 주름살.
색깔이 바래지고 또 바래져 이젠
희미한 경계들만 남아있는 옷.
그 옷에 나의 어린시절,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지금까지의 어머님의 한없으신
희생과 사랑이 모두 다 박혀
갑자기 새롭고 또렷한 색으로
내 가슴에 와 아프게 박힌다.
오늘은
그 옷을 입으신 울 엄니와
오랜만에
손을 꼭 잡고 시장엘 나갔다.
싸구려 좌판이 널려있는
그 시장엘.
'86. 7. 5. 아침
소자 승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