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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치

김상욱

초심

by 요기남호

이번 윤석열의 내란사태를 깨어있는 시민들의 용기있는 행동과 대다수의 국회의원들 (대부분 야당)의 재빠른 행동으로 초기에 진압할 수 있었다. 아직 윤석열의 비겁하고 추잡한 행동으로 내란은 지속되고 있지만, 민주시민들과 올바른 국회의원들과, 기대되는 재판부의 탄핵인용결정으로 인해, 조만간의 내란종식은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게 되었다. 내란 종식에 기여하였고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그 모든 분들께 경의와 힘찬 응원을 보낸다. 여기에선, 희귀한 여당의원 김상욱을 자세히 소개한 경향신문의 인터뷰를 올린다.


김상욱의원의 용기있는 행동들을 지켜보며, 그 행동들의 근원은 무엇인지가 궁굼했었다. 경상도출신 여당국회의원이란 타이틀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그 행동들은 다른 근원이 있지 않을까했었다. 이 인터뷰는 그 근원에 대해 말해준다. 특히, 다음 문단들이 그 근원을 설명하고 있다.


'김상욱 의원은 1980년 1월1일 경북 의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출생했다. 1남1녀 중 장남이다. 초등학교 때 대구로 이사한 후 아버지는 염색공장에 다녔다. 대구초, 대구북중, 영진고를 졸업한 후 1998년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조용했어요. 자존심은 강한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도 못 다니다보니 좀 주눅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대신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했어요. 역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시사 프로그램도 열심히 봤습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초등학생 때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어요.'


'- 금융회사에 취직해 다니다 로스쿨에 입학한 이유는 뭔가요.


“대학 시절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한계를 느껴 포기했었어요.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려면 한 달에 10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엄두가 안 났거든요. 동생도 대학에 들어가는 상황이라, 졸업도 하기 전에 취직했어요. 하지만 자율성 없는 조직생활이 잘 맞지 않았어요. 돈도 좀 모아뒀으니 변호사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하지만 사회봉사나 사회운동을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는 법무법인 정우의 송철호 변호사 사무실을 거쳐 울산지역 최대 전관 로펌인 법무법인 우덕에서 일했다. 2014년 법률사무소 정성, 2017년 법무법인 더정성을 창립했다. 밤낮없이 일한 덕에 변호사 10명을 둘 만큼 울산에서도 손꼽히는 법무법인으로 성장했다. 각종 자문위 활동은 물론 무료 변론도 많이 했다. 울산 동구 판자촌인 새납마을 철거사건이 특히 유명하다. 지주 측을 대리해 철거를 완료시키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는 승소를 완벽하게 세팅한 후 수억원의 성공보수 전액을 포기하고 이를 수단으로 지주를 설득했다. 마을 주민이 지주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양자가 합법적 임대차 계약을 맺게 했다. 덕분에 수백명의 주민이 거리에 나앉지 않게 됐다.'


그러니까,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를 한 사람이다. 그런데, 자수성가를 한 후에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새납마을 철거사건에서 그의 해결방식은 그의 사람됨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나싶다. 성공보수를 포기하고, 수백명의 주민이 거리에 나앉지 않도록 지주를 설득한 그의 방식. 이런 그의 인간성이 내란사태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들의 근원이었지 않나싶다.


자수성가로 성공을 한 후에 자신들의 뿌리를 잊고, 자신의 성공이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김상욱의원처럼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물론 야당에는 그런 사람들이 매우 많다. 여당에는 희귀종이다. 그래서 감상욱의원이란 존재는 한국사회에서 꼭 필요하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 칭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보수 정치인이다. 더불어민주당에 옮겨와도 괜찮은 정치인이다. 그의 향후 행보가 기대가 된다.



https://v.daum.net/v/20250108060013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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