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윤석열 탄핵과 86세대가 할 일
* 표지사진: 영화 <하얼빈> 포스터
어제 조카와 영화 <하얼빈>을 보았다. 강추한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여러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꼭 보시라. 배우 현빈의 안중근 역은 탁월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며 치밀어오는 생각 하나: '이렇게 선열들의 희생으로 세운 나라인데, 감히 윤석열이란 작자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하다니!'
강추한다. 꼭 보시라. 내용이야 한국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안중근열사의 이야기다. 영화의 예술성과 완성도도 매우 뛰어나다. 어느 영화평론가들은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던데, 나에겐 가슴을 뜨겁게 하는 영화였다. 현재 벌어지는 현실상황과 맞물려, 감동이 더 했다.
지금 많은 민주시민들이 헌정질서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 2030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져 한국사회의 미래가 매우 희망적이다. 이런 와중에 한줌밖에 되지 않는 극우세력도 준동하고 있다. '백골단'까지.. 어이가 없다.
난 86세대다. 60년대에 태어났고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 광주세대다. 그당시에 용기가 있어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거나, 나같이 용기가 없어 길 가장자리에 서서 데모현장을 안타깝게 지켜보기만 했거나, 우리 세대는 광주에 대한 부채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현실상황에서 우리 세대가 해야 할일은 무었일까..
2주일 전 쯤, 같은 조카와 딸아이와 나의 어머니를 뵈러 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5060대로 보이는 면도를 며칠 하지 않은 듯한 남자가 등장을 하더니, 탄핵반대 종이를 들고 헌법재판소를 비판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긴 연설을 시작했다. 빌어먹을. 그 지하철 안에는 20대에서부터 6070대까지 남녀노소가 제법 앉아 있었다. 다들 무표정으로 그 사내의 연설을 견디고 있었다. 2-3분 후에, 난 화가 치밀어올라왔다. 난 다혈질이다. 이런 넌센스는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일어났다. 옆에 앉아있던 딸아이가 내가 무엇을 할지를 알고는 내팔을 잡고 하지 말라고 말했다. 30대 초반 조카는 지하철에 소음을 내는 걸 보고하겠다고 핸드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난, 그 사내 바로 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리고 그만하시라 했다. 소음이니, 시끄럽다고. 그 사내는 연설을 멈추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그 칸의 반대편에 서 있던 6070대 남녀한쌍이 우리에게 다가와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 남녀는 연설을 하던 사내보다 훨씬 고급스런 옷차림이었다. 나에게 빨갱이, 김정은만세할 놈이라는 등 웃기지도 않은 말들을 퍼부었다. 나도 지지 않고, 그 작자들에게 소리를 쳤다. 그때까지는 빵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모자를 벗었다. 남자가 나의 나이가 어리다는 식으로 말을 했으니까. 나의 반백의 머리카락을 보여주며 받아쳤다. 나 60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를 세웠는데, 당신같은 작자들이 거꾸로 돌리려하냐고 나도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ㅋㅋ 6070대로 보이는 남자가 날 서너번 밀고, 여자는 내 얼굴에 바로 대고 지랄발광을 했다. 요가로 단련된 내가 한두번 몸을 움직이면, 바닥에 다 쓰러질 작자들이었는데.. 난 그냥 소리만 쳤다. 병신같은 작자들.. 백낙청선생님은 신년칼럼에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하셨는데.. 난 사람이 아직 덜되어서, 그 순간엔 그 남녀한쌍에 대한 적개심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60대 남성 한 사람이 다가와 우리의 말싸움에 끼어들어 남녀한쌍을 나에게서 떼어 놓고 그들에게 그만했으면 되었으니, 가라고 종용을 했다. 그 남성은 나에게 다른 사람들은 그냥 견디고 있다며 나에게도 진정을 하라고 했다. 그들은 한강진 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연설을 하던 허름한 복장의 사내는 그 혼란의 와중에 그 칸의 반대편으로 가 있었다. 그 사내는 별 소란은 피지 않고 한강진 역에서 내렸다. 혹시 그 사내는 남녀한쌍에게 돈을 받고 연설을 마지못해 하고 있었나.. 딱하다.
한강진역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내렸는데, 그중에 한 2030 여성이 나의 팔을 쓰다듬으며, 괜찮으시냐고 물어왔다. 연대인가.
태극기 부대의 6070이 지하철에서 웃기지도 않은 연설을 하면, 어떻게 대응을 해야하나.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대응을 하기에는, 동방예의지국에선 좀 꺼림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는 60대가 나서야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광주세대의 마지막 의무가 아닐까..
다시, 영화.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너는 안중근의 모습.. 그 기나긴 고난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세운 민주주의인데.. 감히 허접스런 작자들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