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삼청동 김치찌개
* 표지사진: (왼쪽부터) 윤원, 상영, 나, 원덕. 숙정문 앞.
어제 토요일 새벽에 요가를 하고, 9시에 집을 나섰다. 군대에서 만난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다. 몇주전에 상영의 제안으로 서촌에서 시작하여 인왕산 둘레길을 걸은 후, 어제는 북촌에 살고 있는 원덕의 제안으로 북촌에서 시작하여 북악산 둘레길을 걷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 9시반에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만났다. 지난 겨울부터 한동안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의 한 곳이었던 헌법재판소 앞이다. 그곳에서 북촌길을 걷기 시작하여, 삼청공원 정문으로 들어가 북악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원덕의 매일 아침 산책길이라는 코스다. 북촌길-삼청공원-숙정문-삼청공원 둘레길. 지난 인왕산 둘레길때 보고 놀랐던 원덕의 탄탄한 종아리가 지난 2년동안의 아침 산책으로 만들어졌으니.. 원덕의 '아침 산책길이야. 쉬워~' 말은 믿지 않았다. ㅋㅋ 지난 2년간 단련된 친구에겐 쉬운 산책길이겠지만, 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에겐 그럴까..란 의문이 들었었다.
뜨거운 한낮을 피해, 아침 9:30분에 시작하면 11시에 끝낼 수 있다는 원덕의 제안대로, 9:30분에 걷기 시작했다. 한옥마을을 통과하는 북촌길은 예뻤다. 아침 10시까지 주민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길이다. 길목마다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들인 주민들?) 관광객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우린, 이곳 주민인 원덕이를 앞세우고, 들어갔다.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 북촌길은 원덕이를 제외하곤 초행이다. 아담한 한옥들 사이의 좁은 언덕길은 참 아름다웠다. 왜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사진을 찍어대는지 이해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조시대 조정관리들이 살았을 북촌. 그 주위에 널려있는 관공서들, 지척에 내려다 보이는 청와대, 총리공관등에 대한 원덕의 상세한 설명을 듣다보니, 삼청공원 정문에 도착했다. 공원에 들어서 우거진 숲길을 걸어 올라가니, 숨이 차기 시작했다. 내가 좀 엄살을 부리자, '요가하고 산행은 달라'라고 농을 걸어오는 친구들. ㅋㅋ '요가는 모든 근육을 단련해. 내 단단한 허벅지 보여줄까?'라고 농으로 답하며 따라 올라갔다. 원덕이는 펄펄 날고, 산행을 자주 한다는 윤원이도 가뿐하게 올라가는데.. 나는 좀 엄살을 부리며 가고, 상영이가 좀 헉헉 거렸다. 자신은 주로 평지만 걷는다는 변명. ㅎ 그래도 별무리없이 성벽을 따라 걸었다. 가끔 멀리 보이는 풍경에 대한 원덕이와 상영이의 설명을 들으며 걷다보니, 숙정문에 도달했다. 경복궁 주위로 4대문이 있었는데, 그문들이 바로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인데, 북대문이란 문은 없다. 이 숙정문이 바로 북대문이라는 원덕이와 상영이의 설명. 역시 아는게 많은 친구들과 같이 와야 이런 지식도 얻게 되고, 그저 지나쳤을 곳들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후, 원덕이를 따라 계속 걷다보니, 인촌 김성수가 설립한 중앙고등학교가 나왔다. 참 예쁜 교정이다. 놀랍게도 창덕궁 비원과 담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 교정을 지나 나오니, 다시 북촌. 시간은 11:15분. 친구들과 올라가 가끔 쉬며 대화를 하여 시간이 약간 더 걸렸으니, 원덕의 예상과 맞았다. 원덕이의 단골집인 '삼청동 김치찌개'집에 가 점심식사를 했다.
이곳은 맛집이다. 외진 곳에 위치해있어, 관광객들이 아닌, 아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란다. 우리가 들어가니, 주인 아주머니가 단골인 원덕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원덕이가 알아서 김치찌개, 홍어무침, 해물폭탄(해물파전)을 시켰다. 남도음식이다. 다 참 맛있었다. 특히 홍어무침이 별미였다. 흰밥을 선호하지 않는 나도 김치찌개에 말아 제법 많이 먹었다. ㅋ 가격도 참 착하다. 북촌/삼청동에서 이런 음식점은 찾기가 쉽지 않은데.. 가격도 착하고 맛도 있는.. 북촌에 오면 자주 들러야겠다.
식사후, 원덕의 한옥집에 갔다. 우리의 출발지 안국역과 헌재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그 집에서 원덕이가 빗은 술을 맛보았다. 조선시대에 정승들이 만들어 마셨다는 술이다. 원덕이 그 비법을 어떤 사람 (이름을 까먹었다)에게 받았단다. 몇단계의 과정이 있는데, 그 일들을 1월부터 매월 특정한 날들에만 해야되고, 온도는 섭씨 18도 정도에 맞추어야한단다. 대문옆에 있는 손님방(?)에 술단지를 놓고 5월부터는 에어컨으로 온도조절을 해서 술을 빗는단다. 어제, 우리를 위해 한병을 개봉했다. 맛은 매우 독특했다. 요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술들에는 대부분 단맛이 있는데.. 이 술은 단맛이 없고 독특한 향이 있었다. 술이 입에 들어간 후, 여러 향이 차례로 느껴지는 술. 단맛이 없으니, 담백한데, 여러 독특한 향이 차례로 입안을 가득 채우는 술. 이런 맛에 익숙하지 않아서 아주 맛있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선비들이 선호했을 맛이랄까. 마시면 마실수록 음미할 수 있는 술이랄까..
아뭏든, 원덕이 덕에 참 잘 놀았다. 북촌, 북악산 둘레길, 맛있는 점심, 그리고 독특한 술. 무엇보다 맘이 통하는 친구들과 반나절을 즐겁게 보냈다.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ㅎ 윤원이와 상영이에게 서촌이나 북촌으로 이사오라고 내가 꼬시고 있다. 특히 은퇴하면 시골에 가고 싶다는 윤원이에게 그러지 말고, 이렇게 바로 뒤에 여러 산이 지척에 있는 동네로 오라고 꼬시는 중이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와 샤워를 하니, 잠이 쏟아졌다. 1시간 반가량의 산행 탓인가. 달콤한 낮잠이 몰려왔다.
화창한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