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스빌, 눈이 오고 있다

어느 한 미국물리학자의 은퇴식

by 요기남호

일요일 오후. 현재 눈이 내리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돌아온 후, 첫 눈이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그냥 구름/흐림으로 나오는데, 눈이 내리고 있다. 그리 많이 내리지는 않을 듯하다.


어제 토요일엔 요가가 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예전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차를 몰고 갈데가 있어서. 목적지는 2시간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메릴랜드 대학. 이유는, 아는 물리학자의 은퇴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J라 하자. J의 올해 나이는 대략 79-80세. 내가 이곳 버지니아대학에 오기 전에 9년동안 근무했던 미국표준연구소에서 오랫동안 물리학자로 일을 해왔던 사람이다. 한 팀의 리더로서, 파워가 좀 있었던 인물이다. 성격이 좋지 않아서, 내가 9년 내내 피했던 사람. 다행히, 팀리더들의 보스인 그룹리더와 그위의 센터장 두분이 나를 감싸주어서, J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가끔 나에게 와서 같이 공동연구를 하자고 했었는데.. 나는 웃는 얼굴로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 순간이 지나면, 무시하곤 했었다.


J는 연구에는 진심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었다. 외부에서 (대학 혹은 다른 연구소) 연구테마를 들고 오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절했다.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불같은 성격을 종종 드러냈다. 무언가 일이 풀리지 않으면 밑에 사람들에게 책임전가를 하곤 하던 사람. 추진력은 매우 강해서, 외부에서 오는 과학자들은 서로가 얻을 것이 많았던 사람. 어제 그의 은퇴기념식에 지난 50여년 동안 그와 공동연구를 했던 사람들이 제법 모였다. 나는 그와 공동연구를 한 적이 없어서,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모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의 친구/지인들이어서, 그들을 오랜만에 볼겸, 그리고 심포지움 후, 매릴랜드대학에서 가르치는 선배누나도 오랜만에 잠깜 볼 겸, 참석했다. 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 (C)도 왔었다. 그 또한 J와 공동연구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공동연구를 했던 사람들이 발표를 하고, 덕담을 하고, 그렇게 아침과 낮 시간이 흘렀다. 저녁만찬이 있었고, 그후에, 또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의 J와의 경험담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때, 몇 사람들 (예전에 그의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 ㅋㅋ)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좋지 않았던 성격의 일면을 사람들에게 상기해 주는 에피소드를 말하였다. 그자리에는 J의 아내, 아들, 아들의 아내, 그리고 손자가 있었는데.. 그들 또한 J의 성격을 잘 알기는 하겠지만.. 좀 어색해지는 순간들..


마지막에 J가 일어나, 답례겸 오랜기간동안 자신과 공동연구를 했던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이야기하였다. 유머를 섞어가며. 마지막에 자신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할때는 감정이 북받혔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거의 울먹였다.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젊었을 적 아무리 강하고 권력이 있어도, 결국엔 나이가 들고 몸과 정신은 허약해지고, 은퇴를 하게 된다. 인생무상이다.


항상 겸손해야겠다. 내 학생들에게 잘해야겠다. 반면교사다.


아, 그 시절 J가 나의 전 지도교수 C에게,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나에 대해서 평을 하였다고 C가 나에게 전했던 말이 있었다.

J to C: 'I don't like Seunghun. But I repect him.'

ㅎㅎㅎ


아무쪼록,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추신 1: 그당시 나를 감싸주던, 그룹리더께선 몇년전 암으로 세상을 뜨셨다. 센터장께선 일이년 전부터 치매를 심하게 앓고 계신다는 소식.. ㅠㅠ


추신 2: 나의 지도교수였던 C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한 경력이 있다. 수년전부터 다시 기타를 연습/연주해 오고 있다 (아마, 내가 트럼펫을 배우기 시작한 것에 자극을 받지 않았을까..). 지지난주에 나에게 어제 저녁만찬시간에 같이 연주를 하자고 제안을 해왔었는데.. 나의 트럼펫과 그의 기타의 조합.. 내가 부끄럽고, 내 실력이 아직 그런 모임에서 연주할 수준이 아닌 듯해, 미루자 했다. 2027년 3월에 열리는 미국응집물리학회에서 열릴 작은 모임에서 같이 연주하자고. 자, 일년동안 트럼펫 연습을 꾸준히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