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를 지나 '가장자리'를 향해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최근 파커 J. 파머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를 읽으며, 제 내면에 새로운 시선을 가져다주는 떨림을 발견했습니다. 평생 남에게 맞춰 적응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던 제게, 나만의 시선과 취향을 갖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5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 이제는 '나만의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는 풍경을 관찰합니다. 낯설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이 낯선 시도를 기꺼이 받아들여 보려 합니다.
책 속에서 샌드버그가 무명 시인이었던 헤이든에게 보낸 편지 구절이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나는 위대한 커리어를 시작하는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까? 아닙니다. 나는 '시작하는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시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남들에게 잘 말하지 않습니다. 살아보니 시작이 곧 중단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 나이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시작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초심자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일만으로도 큰 변화이며 용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엄청난 커리어를 위한 시작은 별로 엄청나지 않은 소소한 시작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초심은 '처음'의 마음처럼 매 순간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태도,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상 위에 작은 노트를 펼쳐서, 하루에 한 줄 적는 일
지친 일과를 마치고 정말 잠깐이지만 감사한 일을 생각해 보면서 감사한 일을 한 줄 적는 일
추운 이 겨울에 운동을 하기 위해 문밖을 한 발자국 나서는 일
진정으로 '온전해진다'는 것은 어둠과 빛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입니다.
나의 결점, 실패, 상처, 소심함... 이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어둠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립니다.
어둠 속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은 나를 새로운 경험과 경계로 안내하며, 내 안의 진정한 빛으로 이끌어 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경계는 선명해지기보다 오히려 흐릿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흐릿함 속에서 저는 변화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 변화 속에서 '온전함'을 경험합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이 삶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며 살피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함을 배웁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는 내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진실하게 생각해 본 적이 많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해야 할 일, 다른 사람의 필요나 욕구를 살피느라 막상 오직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취향을 살피려고 하니 조금은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다행히. 책 읽기는 제가 분주한 일상에서도 꼭 붙들고 왔던 좋아하면서도 필요했던 행위였습니다. 저의 생존 전략이자 창조 전략이기도 합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내게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서 읽는 것. 나의 취향이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져 '더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조급함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가장 재미있고 즐겁게 느꼈던 순간은 자신의 실패, 결함까지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진실한 글'을 마주할 때였습니다.
이런 경험은 지쳤던 저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주는 순간입니다.
나이가 들었기에 새로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일입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이 가장자리의 시간은 앞으로 제가 오롯이 경험하고 연습해야 하는 귀한 시간임을 느낍니다. 나에 대한 모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시작,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나누는 삶. 그것만으로도 제 인생의 후반전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저만의 속도로, 가장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선으로 저만의 풍경을 느끼고 경험하면서 틈틈이 진실하게 그 시선과 풍경을 글로 적어 내려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