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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실라 Nov 12. 2024

보이지 않는 살인자 (6)

“재미있는 사건이에요.”


정민과 함께 간략하게 강훈이 전해준 사건의 전말을 돌아본 노아가 웃으며 말했다. 


“종합하자면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현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 중 대다수가 범행이 불가능했다. 그나마 의심이 가는 소수의 사람들도 범행은 불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증거는 수많은 CCTV 기록…….”


“그러게.”


정민도 동의했다. 그녀는 손쉽게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기미를 보이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보통은 CCTV에 걸리기 때문에 완전범죄가 불가능한 건데. 이 경우는 오히려 CCTV 때문에 불가능한 범죄가 돼버린 느낌이네.”


“맞아요.”


노아가 맞장구를 쳤다. 


“아이러니컬한 상황이에요. 그리고 굉장히 무서운 상황이기도 하구요. 범인이 누구인지까지는 특정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몇 가지 떠오르는 것들은은 있네요. 어떤 가정하에서요.”


“어떤 가정?”


“예를 들면 초자연적인 힘, 초능력이나 마법, 공상과학급 도구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가정이요.”


노아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정민은 조금 어이가 없어서 노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노아가 말을 계속했다. 


“그렇잖아요? 만약 현실에 투명망토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사건은 한순간에 해결이 가능해요. 범인은 투명망토를 쓰고 CCTV 가득한 화랑관 내를 통과해 피해자를 죽이면 그만인 문제니까.”


“그런 것보단 좀 더 현실적인 방법도 있잖아.”


정민이 핀잔을 주었다. 


“범인이 CCTV를 해킹했다던가. 아니면 화랑관 직원 중 공범이 있는 거야. 범인의 모습이 찍힌 CCTV만 삭제했다던가.”


“강훈 형사님도 분명 그 가능성을 언급하긴 했죠.”


노아는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국과수에서도 조사 중이라고 했구요. 그렇지만 뭔가 예감이 들어요, 선배. 범인이 CCTV는 건들지 않았다는 예감이요.”


“.......”


사실 정민도 그런 느낌이 들긴 했다. 그렇지만 그건 기자의 촉 같은 건 아니었다. 다만 CCTV 조작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는 강훈의 표정이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다른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게 없으니 마지못해 확인인 하는 것 같았다. 일단 현장에서 조사한 바로는 CCTV가 해킹당하거나 조작된 증거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CCTV는 해킹되거나 조작된 게 아니다. 이것도 가정에 넣을게요. 왜냐하면 CCTV가 해킹당하거나 조작된 거라면 사건이 너무 쉽고 간단해지니까요.”


“넌 이 사건이 최대한 복잡하고 어려워지길 원하는 모양이구나.”


정민이 자신도 모르게 빈정댔다. 본인이 말하고도 너무 공격적으로 내뱉은 게 아닌가 순간 뜨끔할 정도였다. 그러나 노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물론이죠.”


노아는 당연한 말을 왜 하냐는 투였다. 


“범죄 사건 전문이랍시고 수많은 사건들을 쫓아다녔지만 이런 류의 범인은 자주 만나지 못하죠. 저의 가정대로 초현실적인 힘이 개입한 게 아니라면면, 일견 불가능해보이는 사건은 어디까지나 불가능해보이도록 속임수를 쓴 것에 불과해요. 마술 같은 거죠. 우리의 역할은 범인이 어떤 속임수를 썼는지 밝혀내는 거구요.”


“추리소설에 나오는 트릭 같이 말이지?”


“맞아요. 솔직히 지금은 어떤 트릭을 썼는지 감도 안 오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이 사건은 철저한 계획살인이에요.” 


노아가 엄숙히 선언했다.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에요. 범인은 피해자를 어젯밤, 화랑관에서 죽일 작정으로 모든 걸 꾸민 겁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된 반항도 못해보고 제압당해 교살당했다는 게 그 증거죠. 따라서 범인은 피해자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가 어젯밤 화랑관에 올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여야 해요.”


“그렇다는 건…….”


처음에는 왜 그렇게 당연한 말을 진지하게 하나 싶었던 정민이었지만, 노아의 말을 듣다보니 절로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어제 도훈 작가가 화랑관에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자체가 몇 없었는데…….”


그리고 그중 한명은 바로 자신이었다. 정민은 살짝 속이 메스꺼워지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자신이 다시 용의선상에 오르는 것 같아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맞아요. 그것만으로도 화랑관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 중 용의자가 꽤 좁혀지죠.”


정민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아가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럼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들죠. 범인은 왜 피해자를 살해할 장소로 화랑관을 골랐는가에 대한 의문.”


“그래.”


정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녀도 이해는 가지 않았다. 


범인이 범행에 성공한 것도 맞고 수사가 난항에 부딪힌 것도 맞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화랑관을 왜 범행 무대로 삼았을까? 몇 번을 강조하는지 모르겠지만 화랑관은 CCTV 천국이었다. 범죄, 특히 살인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고 들키지 않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란 의미였다. 단순히 도훈을 죽이고 싶은 것뿐이었다면 다른 곳에서 하는 게 훨씬 위험부담이 적지 않았을까? 범인은 왜 화랑관이라는 리스크를 짊어진 걸까? 그 많은 CCTV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본인의 기발한 트릭을 선보이고 싶기라도 했던 걸까?


“범인이 화랑관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이유가 아마 이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겠죠.”


“범인이 사용한 트릭말이야?”


“트릭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구요. 트릭 외적인 이유들도 있을 수 있겠죠.”


노아가 대답했다. 노아는 정민을 보고 있었지만 마치 그녀의 뒤쪽을 보고 있는 것처럼 초점이 흐렸다. 뭔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 확신이 없네요. 확인을 해봐야할 것 같아요.”


“그래.”


정민은 재촉하지 않았다. 노아는 굉장히 신중한 성격이었고,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본인의 생각을 좀처럼 꺼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예전에 노아는 이에 대해 자신은 직관력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철저히 확인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떠들지 않고 싶다고 설명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민은 벌써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노아의 말대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딱히 떠오르는 무언가가 없었던 것이다. 범인은 왜 굳이 화랑관을 선택했을까?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결국 정민은 노아가 정답을 찾고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또 다른 의문이 있죠, 왜 범인은 어젯밤 범행을 저질렀을까?”


주환의 전시회 개시를 축하하는 프라이빗 파티를 위해 잔뜩 사람들이 모인 어젯밤을 말이다. 범행을 실행에 옮긴 타이밍 역시 굳이 라는 물음표를 떠오르게 했다. 노아도 동감하는 눈치였다. 


“왜 어젯밤이었는가? 물론 피해자가 어제 화랑관에 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피해자가 어제만 화랑관에 오는 것도 아닌데 왜 꼭 어젯밤이었을까? 전 이 의문문에 대한 답이 또 다른 중요한 의문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의문? 어떤 의문?”


“범인이 어젯밤을 살인을 저지를 시간으로 고른 이유가 피해자의 화랑관 방문에 있었다면, 피해자는 어제 왜 화랑관을 방문한 걸까요?”


“그건…….”


주환의 작품들을 보기 위해? 주환의 전시회를 축하하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둘 다 아니다. 정민은 말꼬리를 흐렸다. 하윤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 이 또한 아니다. 어젯밤 도훈이 하윤에게 시비를 건 것은 우연히 하윤도 화랑관에 있었기 때문에 불과했다. 도훈이 어제 화랑관을 방문한 이유는 미팅 때문이었다. 


“김준호 관장님과 미팅을 했다고 했죠. 서관 5층 도서관에서.”


노아가 중얼거렸다. 처음으로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아있었다. 


“거기에 저희 작은아버지도 있었죠. 화랑관 관계자도 아닌 작은아버지가 말이에요. 부관장이란 사람도 있었구요. 강훈 형사님에 의하면 관장님은 피해자와 앞으로의 전시회에 관해 논의했다고 했구요.”


“응. 분명 그렇게 말했지.”


“선배.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노아가 불쑥 정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피해자가 미술계에서 그 정도 거물인가요?”


“응? 무슨 뜻이야?”


“이상하잖아요.”


노아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어제 파티는 주환 작가님을 위한 이벤트였어요. 원래대로라면 관장님과 화랑관 직원들은 거기에 집중하는 게 옳았어요. 심지어 미술관 오너 가문의 일원까지 참석 중이었는데…… 하지만 관장님은 어느 순간부터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죠.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서요. 심지어 피해자와 짧은 미팅 후에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다고 했죠?”


“맞아.”


정민도 노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미팅을 했던 도서관에 나중에 윤수진 씨까지 왔다고 했지. 도훈 작가와의 미팅 관련일까?”


“아마 거의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노아가 신중히 대답했다. 


“피해자의 미래 전시회를 위해 화랑관 관장가 오너 가문의 일원까지 뭔가 고민하는 그림이죠. 피해자가 그 정도로 대단한 화가인가요, 선배?”


“아니.”


정민이 즉답했다. 그러고는 부랴부랴 설명을 덧붙였다. 


“도훈 작가가 대단한 화가였던 건 맞아. 가장 촉망받는 젊은 화가 중 하나였고. 국내 미술관 대다수가 도훈 작가 전시회를 열 기회를 마다하지 않을 거야. 화랑관을 포함해서 말이야. 하지만…….”


“하지만요?”


“화랑관 정도의 미술관이 도훈 작가한테 끌려다니는 건 솔직히 현실적이지 않아.”


정민이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라가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사실이었다. 


“윤수진 씨 정도의 위치의 사람이 일개 화가의 전시회를 열지 말지 정도의 문제에 직접 관여한다는 것도 뭔가 이상하고. 도훈 작가가 안 좋은 이야기가 많았던 사람이긴 하지만…… 윤수진 씨에게 영향이 갈 정도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기는…….”


정민은 말을 다 끝내지 않았지만 노아는 충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즉, 어젯밤 피해자가 김준호 관장님과 가졌던 미팅은 뭔가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운 점이 많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


“그리고 피해자는 이 미팅 후 사라졌다가 시체로 발견됐구요.”


“그래. 그렇지만,”


정민은 뭔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납득이 되지 않아 노아의 말을 멈췄다. 


“윤수진 씨는 범행이 불가능해보인다고 했잖아? 김준호 관장님은 도서관을 떠나지 않았고.”


“두 사람이 살인자는 아닐 수 있죠.”


그 말은 살인자는 아니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번 사건에 관여했을 수 있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정민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화랑관 관계자도 아니면서 미팅에 참석한 정훈도 수상쩍기는는 매한가지였다. 정민은 문득 노아가 자신의 작은아버지마저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전 김준호 관장님이 이 미팅에 관해 뭔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노아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심지어 경찰에게조차 솔직하게 다 털어놓지 않았어요. 그럴듯한 변명으로 넘어갔죠. 물론 경찰도 바보는 아니니까 더 파고들겠지만. 궁금한 건 과연 관장님이 계속 비밀을 지킬지, 아니면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을지에요. 경찰에 솔직히 다 밝힌다면 우리 입장에서도 편해지겠지만, 반드시 그럴 거란 보장은 없죠.”


노아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래서 전 내일 화랑관에 가볼 생각이에요.”


“현장을 보려고?”


“현장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서 이야기도 들어보고.”


크흠. 노아가 갑자기 헛기침을 한후. 지나가는 듯한 투로 툭 내뱉었다. 


“선배도 혹시 내일 괜찮아요? 같이 갈래요?”


정민은 잠시 내일의 스케쥴을 생각해보았다. 부장에게 어떻게든 핑계를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괜찮아. 같이 가자.”


“좋아요. 제가 픽업해드릴게요.”


노아가 사람 좋게 웃었다. 어쩌면 또 거절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안도한 걸지도 모른다. 정민은 모른척했다. 참아야 했다. 일단 당장의 수수께끼가 전부 풀릴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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