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관의 비밀 (7)

by 온실라

노아와 정민이 김준호 관장의 방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김준호 관장의 방은 처음 들렀을 때와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방의 주인인 김준호 관장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노력했던 저번과는 달리, 김준호 관장은 깊은 수심에 잠긴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아와 정민을 맞이했다. 그는 몹시 침울해보였다.


“앉으시지요.”


김준호 관장이 권하는 대로 노아와 정민은 접객용 소파에 앉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처음 앉았던 그 자리 그대로 앉게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 하나가 들어와 두 사람 앞에 따뜻한 녹차를 한잔씩 두고 갔다. 그동안 김준호 관장은 노아를 물끄러미 쳐다만볼 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수진 이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노아가 서두르는 기미 없이 차만 음미하고 앉아있자 결국 김준호 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사님을 설득했는지 궁금하군요. 기자님의 수완에는 정말 두손두발 다 들었습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닙니다. 다만 약속을 했을 뿐이지요.”


“약속이라면?”


“고 윤창섭 사장님의 명예를 지켜드리겠다.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


김준호 관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번엔 정민 쪽을 쳐다보았다. 노아는 그렇다쳐도 정민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정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는 같은 약속은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약속은 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관장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게 어떤 이야기든지 간에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당연히 기사로도 쓰지 않겠습니다.”


“.......”


김준호 관장은 눈을 감았다. 그는 노아나 정민의 대답에 만족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얘기해야했다. 그것이 수진의 명이었을 것이다. 노아에게 도훈이 화랑관을 협박할 수 있었던 이유, 그 비밀을 밝히라고 말이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느닷없이 김준호 관장이 내뱉었다.


“당시 윤창섭 사장님은 30대 중반, 저보다 3살 형님이셨죠. 전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업계에서 꽤 좋은 평판을 쌓은 아트 딜러였구요. 사장님과 처음 만났던 것은 어느 유명 화가의 전시회였습니다. 우연이었죠. 하지만 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사장님께 접근했죠.”


당시 김준호 관장은 야심과 패기가 넘치던 젊은이었다. 예술적 심미안 뿐 아니라 비즈니스 마인드까지 갖추고 있던 김준호 관장의 눈에 윤창섭 사장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인맥으로 비춰졌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재벌가의 일원이 순수미술에 큰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미술계에 큰 복이었다. 김준호 관장은 단순 본인 커리어를 위해서 뿐 아니라 한국미술계 전체를 위해서라도 윤창섭 사장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려 했다.


“사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립다는 듯 김준호 관장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미술에 큰 열정을 가지신 분이었죠. 저 역시 미술을 사랑해 이 일을 시작한 거지만…… 아마 열정의 크기만 따지면 사장님이 저보다 훨씬 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찍이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아트 딜러의 길을 걸었지만 사장님은 단순 애호가가 아닌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윤창섭 사장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재능.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 윤영민 회장.


“아마추어 수준. 취미활동. 그 정도에 만족할 수 있었다면 사장님도 그렇게 불행하지 않아도 됐겠지요.”


김준호 관장이 씁쓸한 투로 말을 이었다.


“테크닉이야 최고의 화가들에게 배우고, 쉼없이 연습하다보면 어느 정도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흔히 천재라 불리는 부류들, 화가로 살기 위해 태어난 작자들 앞에서 사장님은 좌절할 수밖에 없으셨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을 포기하지 못해 더더욱 괴로워하셔야했구요.”


여기에 더해 윤영민 회장의 반대까지. 윤영민 회장은 윤창섭 사장이 경영에 뜻이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예술가로 사는 것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그늘에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윤창섭 사장에게는 한없이 가혹한 상황이었다.


이때 김준호 관장은 윤창섭 사장에게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건 바로 연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재벌가의 일원을 보며 연민을 느끼는 것은 그때도 지금도 뭔가 모순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준호 관장이 윤창섭이란 인간의 고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 재능과 현실이라는 벽 앞에 가로막혀 예술가의 길을 걷지 못한 범부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창섭 사장과 김준호 관장 사이의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반면 다른 한쪽은 괴로워하면서도 결코 붓을 놓지 않았다는 정도일 것이다.


“처음에는 대체 뭐가 아쉬워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군요. 나중에는 뭔가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일석이조라고 생각했죠. 사장님을 도와서 원하는 예술가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세명 그룹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지속적으로 사장님을 만나 관계를 쌓으며 도울 만한 여러 방법들을 모색했죠.”


그리고 마침내 바라마지 않던 기회가 왔다 .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윤영민 회장이 윤창섭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미술쪽에 집중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심지어 앞으로 윤창섭 사장의 활동을 그룹 차원에서 지원해주겠다는 약속까지. 단, 조건이 붙었다.


“회장님은 철두철미한 분이셨습니다. 완벽주의자셨고, 흐트러짐이 없었죠. 또 결과를 무엇보다 중요시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회장님의 조건은 하나였습니다. 평생을 화가로 살 요량이라면, 결코 무명의 화가로 남아서는 안 된다. 화가로서 대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라.”


“그게 설마…….”


정민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안색은 많이 창백하게 변해있었다.


“대회에서 수상을 해오라…… 그런 조건이었던 건가요?”


“.......”


김준호 관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민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윤창섭 사장에게는 화가로서 재능이 없었다. 그의 실력만으로 수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장님은 제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전 많은 생각을 했죠. 둘이 함께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다…… 어느 순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죠.”


당시 김준호 관장이 잘 아는 젊은 화가가 한명 있었다. 매우 유망한 젊은이였지만, 집안 사정으로 국내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유학을 가고 싶어했고, 실제로 해외 유명 미대에도 합격했지만 유학 자금이 없어 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의 젊은이와 답이 없는 난제 앞에서 끙끙대는 윤창섭 사장을 보며, 김준호 관장은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조금만 타협한다면, 이 둘이 서로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타협한다면.


예술가로서의 양심을 조금만 타협한다면 말이다.


“그 유망한 젊은 화가가 누구인지 짐작이 갑니까?”


김준호 관장이 노아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노아가 미소지었다. 답지 않게 일그러진 미소였다.


“저희 작은 아버지셨군요.”


“맞습니다.”


김준호 관장은 즉답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사장님과 서정훈 교수님은 내 제의를 내켜하지 않았습니다. 내켜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질색팔색을 했죠. 처음에는 화도 내고, 나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난 두 사람을 기어코 설득시켰습니다. 서정훈 교수의 도움 없이 회장님이 내거신 조건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명 그룹의 도움 없이 서정훈 교수는 유학 길에 오를 수 없었죠. 두 사람을 꾀어낸 사람은 납니다. 이 일의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그들을 평생의 족쇄로 얽매어버린 사람이, 바로 나라는 말입니다.”


정훈이 윤창섭 사장의 작품을 대작한 것은 아니었다. 합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림의 대부분은 실제로 윤창섭 사장이 그렸다. 다만 정훈은 윤창섭 사장의 그림에 피드백을 주었고, 부족한 부분을 완성했다. 윤창섭 사장이 결코 채울 수 없는 부분들을 정훈만의 번뜩임으로 채워나갔다. “새벽의 정적”이라는 작품의 탄생이었다.


“사장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사장님께는 없었던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정말이지 멋진 작품이었죠. 전 확신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수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윤창섭 사장은 수상에 성공했다. “새벽의 정적”은 윤창섭 사장의 이름으로 출품됐고, 어디에도 정훈의 흔적은 남지 않았다. 윤창섭 사장이 상을 타자 윤영민 회장도 더 이상 반대하지 않고 윤창섭 사장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해피엔딩이었다.


겉으로는. 최소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두 예술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기고 말았다.


“서정훈 교수님은 그토록 원하던 유학길에 올라 원하던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이라도 화가로서 양심을 저버린 행위를 끝내 떨쳐내지 못했죠. 정말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공부를 끝내고 귀국한 그에게는 탄탄대로가 펼쳐져 있었지만, 그는 결국 화가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아예 붓을 놓으려는 것을 제가 말렸죠. 외국에서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가르쳐 공헌하는 것이 그래도 속죄의 길이 아니겠냐며…….”


김준호 관장이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쉰 다음 말을 이었다.


“사장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품 활동을 멈춘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대외적으로 화가로 활동하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술계에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돈이 필요하다고만 하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죠. 세명문화재단을 설립하시고, 나아가 이 화랑관까지 세우시고. 그토록 포기하지 못해 괴로워하던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길을 가기 위해 범한 부정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 역시…….”


김준호 관장이 말을 멈췄다. 감정이 조금 북받쳐오른 듯했다. 정민은 안타까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작은 체구가 어느 때보다도 위태롭게 느껴졌다.


“......제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요. 두 사람에게도, 한국미술계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니까요.”


김준호 관장이 쓸쓸히 중얼거렸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국미술계의 부흥을 위해 말입니다.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것이 유일한 속죄의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말을 마친 김준호 관장은 다시 눈을 감았다. 긴 정적이 방안을 채웠다. 정민은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이미 노아로부터 들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김준호 관장 잎에서 모든 진실을 확인하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결국 한국미술계의 일원이 아닌가. 갑자기 이 아름다운 화랑관이 거짓 위에 쌓여진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느껴졌다.


만약 이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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