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관의 비밀 (9)

by 온실라




“그런데 그 미팅 관련해서 세민 팀장의 증언은 조금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노아가 신경 쓰지 않고 질문을 계속했다.


“세민 팀장에 의하면 미팅 직후 도훈 작가와 통화 했는데 도훈 작가는 자신이 7월 특별 전시회에 참여하는 게 거의 확정이나 다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관장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당시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랬지요.”


김준호 관장이 느릿느릿 대답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걸까요?”


“글쎄요.”


김준호 관장이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도훈 작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요. 결국 우리가 자신의 요구를 받아줄 거라고 말입니다.”


“어떤 요구말인가요? 7월 특별 전시회 참여에 관해 그가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이 있나요?”


“.......”


김준호 관장이 천천히 노아 쪽을 돌아보았다. 정민은 그의 양 미간에 주름이 잡힌 것을 보았다. 그는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관장님?”


김준호 관장의 답변이 의외로 돌아오지 않자 노아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제야 김준호 관장이 대답했다.


“구체적인 조건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습니다.”


“그래요? 이상하군요.”


노아가 잽싸게 대답했다.


“최소 하윤 작가와 대등한 조건에서 전시하게 해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화랑관의 약점을 이용해 더 무리한 조건을 요구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요? 그런데 구체적인 조건은 없었다구요?”


“그때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조건이라고 할만한 건 없었습니다. 일단 우리쪽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자세였죠. 아마 우리 조건을 들어보고 자신의 조건을 밝힐 생각이었겠지요.”


“화랑관에서는 이미 조건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하윤 작가가 내건 조건 말입니다.”


빙그레 웃으며 노아가 다시 물었다. 김준호 관장은 이에 대답하지 않았다. 정민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김준호 관장은 노아가 맹점을 파고들어 버벅대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뭔가 다른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요.”


마지못해 김준호 관장이 인정했다.


“하지만 우리가 도훈 작가의 속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우리쪽도 몇 번 물어봤지만, 제대로 된 답은 듣지 못했던 것 같군요.”


“그런데 세민 팀장에게는 거의 다 일이 성사된 것처럼 이야기했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죠. 솔직히 말하면, 이 사건에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 이상하지 않은 점이 뭔지 모를 지경입니다.”


김준호 관장이 자조적으로 대답했다. 흐음. 노아는 묘한 미소를 띤 채 그런 김준호 관장을 바라보았다. 정민도 그랬다. 그녀는 뭔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방안의 공기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것은 김준호 관장 때문이었다. 분명 방안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였던 노인은 어느새부턴가 대답을 끌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더 이상 노아와 정민이 캐물어도 제대로 된 답변을 들려줄 것 같지 않았다.


정민의 예상대로였다. 이후에도 노아는 이것저것 물었지만, 김준호 관장은 하나 같이 애매모호한 대답만 돌려주었다.


이 이상의 인터뷰는 헛수고. 굳이 기자의 감이 아니더라도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결국 노아와 정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준호 관장에게 감사를 표하고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건해결을 위한 큰 실마리를 얻었지만, 무언가 찝찝함을 남긴 채로.


김준호 관장과의 미팅이 끝난 노아와 정민은 바로 화랑관을 떠나야했다. 좀 더 남아서 조사를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선약이 있었기 때문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점심 약속이었다. 사건 담당형사인 강훈과 말이다.


강훈과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노아는 강훈과 틈틈 통화하며 소통하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서로 나누지 않았다. 때문에 오늘의 만남은 중요했다. 노아 입장에서는 경찰만이 확인해줄 수 있는 중요한 여러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국과수 감정 결과에 따르면, 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7시 50분에서 10시 사이로 확인되었습니다. 사인은 목 부위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넥타이와 유사한 부드러운 끈 모양의 물체를 이용해 목을 조른 것으로 보입니다. 부검 과정에서 외부 충격에 의한 뇌진탕 소견도 확인되었는데, 피해자의 이마 좌측 상부에 광범위한 타박과 열상이 관찰되었습니다…….”


손님이 거의 없는 어느 한산한 식당에서 만난 강훈은 노아와 정민을 보자마자 형식적인 인사만 주고받은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강훈의 설명을 들은 정민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시 한 번 어둠속 누군가가 뒤에서 도훈을 기습해 그의 얼굴을 화랑관 철문에 박아넣어버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몇 번을 곱씹어도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끔찍한 상상이었다.


“CCTV 관련해서도 결과가 나왔나요?”


반면 노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사실 국과수에서 나온 결과는 이미 노아가 추정하고 있던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에 딱히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나왔습니다.”


강훈이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마 이 CCTV 정밀검사에 꽤 기대했었던 것 같았다.


“사이버수사국에서 조사한 결과, 화랑관의 CCTV가 해킹당했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기록이 지워진 흔적 같은 것도 없구요. 그러니까…….”


“범인은 정말 그 많은 CCTV를 다 피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네요.”


이번엔 노아가 반색했다. 정민은 노아의 들뜬 어투에서 그가 얼마나 이 확인을 바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맞습니다.”


강훈이 내뱉었다. 그는 노아의 반응이 별로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경찰인 그는 노아와 달리 이 살인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을 조금도 원치 않았다.


“저희 수사팀에서는 현재 범인이 화랑관 내부인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부인이 아닌 이상 건물 CCTV 사각지대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요.”


“사각지대가 있던가요?”


노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옥상을 제외하면 사각지대라고 할만한 곳은 없던데요.”


“그렇죠.”


강훈이 인정했다.


“옥상. 아니면 4층 정도죠. 4층은 현재 인테리어 공사중이라 CCTV를 다 제거해놓은 상태니까요.”


문제는 화랑관 4층 동관과 서관은 분리돼 있기 때문에 범인은 4층을 통해 동관과 서관을 이동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옥상 뿐인데, 노아도 경찰도 이미 옥상에 사람이 이동한 흔적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옥상조차 아니라면, 화랑관 내 CCTV 사각지대는, 적어도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없다.


“누군가 동관으로 가지 않고 계속 4층 서관에 머물러 있었다면…….”


불현듯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 정민이 말했다.


“누군가 파티 내내 서관 4층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와 범행을 저지르고…… 사람들 틈에 섞여 빠져나갔다면? 그럴 가능성은 없나요?”


“저희와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정민 기자님.”


강훈이 조금 대견하다는 듯한 미소로 정민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동관에서 서관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계속 서관에 머물러 있었을 수 있다…… 솔직히 지금으로선 거의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조사 중입니다. 화랑관 직원 중 혹시 동관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지 않은 인원이 있는지 말입니다.”


“직원들만 조사하시는 건가요?”


“파티에 초청받았던 분들, 케이터링 업체 직원들 모두 조사중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내부자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지만 말입니다. 강훈이 덧붙였다. 이에 정민은 공감을 표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하지만 정민이 내놓은 추리에는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아가 별 의견을 내놓지 않자 참다못한 강훈이 결국 직접적으로 물었다.


“범인이 서관에 숨어있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추리…… 동의하십니까?”


“글쎄요.”


노아가 애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분명 가능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겠지만…… 만약 범인이 이 방법을 썼다면 결국 확인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분명 눈에 띄었을 겁니다.”


정민은 노아가 의미하는 바를 바로 알아들었다. 확실히 그날 화랑관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망추정시간 동안 동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지 않았던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도훈과 대면했던 김준호 관장과 정훈, 우현 정도다. 굳이 한 사람 더 꼽자면 하윤인데 하윤은 2층 서관 뿐 아니라 중앙관과 동관도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정민은 강훈의 눈치를 한 번 쓱 살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윤이 유력 용의자로 떠오를 법 한데, 강훈은 하윤에 대해 크게 생각하는 기색은 없었다. 화랑관 내부자가 범인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2층의 CCTV들이 하윤의 동선을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모양이었다. 하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괜시리 겁을 집어먹고 노아에게 도훈과의 관계를 사실대로 털어놓은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사실 화랑관 직원 중 저희가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강훈이 살짝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그러고는 괜시리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지만, 식당 안에서 셋의 대화에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영문이란 직원입니다. 혹시 이미 만나셨나요?”


“아. 그 안내데스크에서 일하시는 분 말이죠?”


노아가 바로 아는 척을 했다. 강훈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는 조금 의기양양해보였다.


“사건 당일에도 안내를 맡았지요. 피해자가 사라진 직후, 공교롭게도 자리를 비우기도 했구요.”


“맞습니다. 팜플렛을 가지러 갔었다고 했습니다. 중앙관 3층으로 갔었다고 했는데…….”


“그렇습니다. 고작 팜플렛 한 상자 가지러 가서 20분이나 자리를 비웠죠.”


“설마 그의 행적이 확인이 안 된 건가요?”


“아뇨. 확인은 됐습니다. 중앙관 3층을 들어갔다 나온 것은요.”


강훈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렇지만 고작 팜플렛 상자 하나 찾는데 20분이나 소요됐다는 것이 이상해서 저희가 중앙관 3층을 조사해봤습니다. 그런데 여기 구조가 좀 재미있습니다. CCTV 사각지대가 존재하더군요.”


“사각지대라뇨?”


“그러니까 말입니다.”


정민의 반응을 즐기는 것인지 강훈이 일부러 뜸을 한 번 들였다.


“아마 이미 확인하셨겠지만, 중앙관 3층은 대형 강당입니다. 강당 출입구와 내부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무대 측면 백스테이지에는 조명과 음향을 제어하는 공간과 대기실이 있고, 그 끝에는 비품실이 있습니다. 이 구역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백스테이지 한쪽, 비품실 인근에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표시가 붙은 문이 있으며, 이 문은 강당 외부 화장실 앞까지 이어지는 좁은 통로로 연결됩니다. 중앙관 3층 화장실 앞 역시 CCTV가 설치돼 있지 않구요.”


“그렇다면 CCTV에 찍히지 않고 중앙관 3층을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한 거군요?”


정민이 경악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선해 보였던 영문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이 남자가 이번 살인사건을 일으킨 보이지 않는 살인자였던걸까?


“저희도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CCTV에 찍히지 않고 중앙관 3층을 빠져나오는 건 가능하다는 거니까요.”


강훈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것을 보고 정민도 뒤늦게 떠올렸다. 어떻게 중앙관 3층은 CCTV에 걸리지 않고 빠져나온다 해도, 이후 범행현장인 서관 1층 비상계단 내부까지 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일단 중앙관 3층 역시 서관과는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에 동관으로 가서 브릿지를 건너야 하는데, 강훈은 이미 사망추정시간 당시 이 브릿지에 설치된 CCTV에 찍힌 것은 우현과 서연 우섭 커플 뿐이었다고 확인해준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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