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관의 비밀 (10)

by 온실라

“어떻게 동관 3층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강훈이 말을 이었다.


“동관 3층도 메인은 아니지만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곳이라 CCTV가 곳곳에 있거든요. 동관 3층에서도 CCTV에 찍히지 않고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해보입니다.”


“엘리베이터 앞쪽은 없습니까? 브릿지 쪽으로 가는 복도말입니다. 보니까 복도에는 CCTV가 없는 것 같은데요.”


“예. 복도 쪽에는 CCTV가 없지요.”


노아의 질문에 강훈이 바로 인정했다.


“하지만 중앙관 3층에서 동관 3층으로 넘어가자마자 전시관이고 CCTV가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간 중 거기에 찍힌 사람은…… 아. 둘 있습니다. 한서연 씨와 김우섭 씨…… 브릿지 쪽으로 가기 전 잠깐 들리더군요.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강훈은 말을 끝마치는 대신 머리만 긁적였다. 그 제스쳐만 봐도 이 두 사람은 진작 경찰의 용의선상에 벗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노아도 이 두 사람은 사건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두 사람이 혹시 뭐라도 보고 들은 건 없나요?”


무심코 정민이 물었다. 정민도 이 둘이 사건의 범인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둘 다 사건과 너무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도훈이 살해당했을 거라고 추정되는 시간에 동관에서 서관으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뭐라도 보고 들은 게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물어봤습니다. 특별할 건 없다군요.”


강훈이 말했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 덧붙였다.


“한서연 씨의 경우 서관 3층에 있을 때 뭔가 울리는 것 같은 미세한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같이 있던 김우섭 씨는 그런 소리를 전혀 못들었구요. 한서연 씨도 확실하진 않고 본인 착각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하는 강훈에게 동의한다는 듯 노아도 의례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정민은 노아 쪽을 힐끔 보았다. 어디까지나 직감이었지만 방금 강훈이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한 것 같은데, 노아의 반응이 생각보다 시큰둥해서 의외였다. 자신이 과민반응하고 있는 걸까?


“결국 황영문 씨도 범죄를 저지르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정민의 눈빛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노아는 태연히 새로운 주제로 넘어갔다.


“그런데도 경찰이 그에게 주목하는 이유가 있겠죠?”


“예. 있습니다. 동기적인 측면이죠.”


기다렸다는 듯 강훈이 대답했다.


“황영문 씨에게는 동기가 있습니다. 피해자를 살해할만한 아주 강력한 동기요.”


“혹시 작년 말에 화랑관에서 열린 피해자의 전시회에서 실수를 했다는 직원이 황영문 씨인가요?”


살짝 놀랐는지 강훈이 느리게 눈을 한 번 끔뻑했다.


“이미 알고 계셨나요?”


“아뇨.”


노아가 웃었다.


“다만 예측가능했습니다. 황영문 씨는 뭔가 단순 리셉셔니스트로 보이진 않았거든요.”


“예. 맞습니다. 황영문 씨는 본래 전시기획자입니다. 업계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더군요. 5년 전에 화랑관에서 직접 스카웃할 정도로 평판도 아주 좋았구요.”


그런데 그가 공들여 쌓은 커리어가 한순간 무너져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세민의 말마따나 그것은 명백히 영문의 실수였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확대될 일까진 아니었다. 영문은 상대를 잘못 만난 것뿐이었다. 전시회 작가가 현 미술계에서 가장 성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는 도훈이었으니까. 화랑관의 대처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화랑관은 영문을 지켜주기보다는 도훈의 요구조건을 듣고 사건을 무마하는 방식을 택했다. 어떻게 보면 일개 직원인 영문보다는 미래가 창창한 예술가인 도훈을 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도훈은 전시기획자에서 단순 안내직원으로 강등당했다. 아무리 책임을 묻는다지만 파격적인 조치였다. 해고를 안 한 것뿐이지 사실상 자기 발로 나가라고 등 떠민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영문은 화랑관을 떠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떠날 수가 없었다.


“그 사건 때문에 이직이 힘들어진 모양이더군요.”


조금 딱하다는 투로 강훈이 설명을 이어갔다.


“이쪽 업계가 가뜩이나 자리가 많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황영문 씨가 저지른 실수가 소문이 나면서 평판이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화랑관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 거죠.”


“그렇다면 황영문 씨가 피해자에게 가진 원한이 크겠군요?”


“예. 아마 화랑관 내에서 가장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인 커리어를 망친 주범이니까요.”


그건 아닐 수도 있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물론 영문의 동기도 강해보였지만, 김준호 관장 같은 경우도 동기만 따지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김준호 관장 본인 뿐 아니라 화랑관의 치부를 가지고 협박하는 도훈을 마주할 때 그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노아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정훈은 또 어떤가. 그 역시 예술가로서의 명예와 커리어가 도훈에게 위협받는 처지였다. 수진은 어떨까? 그녀 역시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는 강렬한 동기가 있었다. 동기만 따지자면 영문 못지 않은 사람들이 벌써 여럿 있는 것이다.


우현은 어떨까?


정민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부관장인 우현은 어떤 입장이었을까? 관장직을 물려받을 그에게는 도훈의 협박이 남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에게 화랑관이 단순 직장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면 어떨까? 그 역시 도훈을 보며 살심을 품을만한 이유가 있을까?


“어쨌든 황영문 씨 관련해서 여러가지로 의심스러운 점이 있어서 주시 중입니다. 애초에 중앙관 3층으로 가게 된 이유도 뭔가 미심쩍구요. 팜플렛 상자 하나가 거기로 잘못 갔다는데 로비로 왔어야 할 물건이 왜 그런 엉뚱한 곳으로 전달된 걸까요?”


“중간에 빠져나오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곳으로 보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바로 그겁니다.”


노아의 말에 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목할만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옥상 열쇠. 옥상 열쇠가 안내데스크에도 보관돼 있습니다. 마스터키를 가진 정우현 씨만 옥상에 접근가능했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물론…….”


사건이 일어난 밤, 누군가 옥상에서 이동한 흔적은 전혀 없었지만. 강훈은 또 말을 끝마치지 않고 짧게 혀를 찼다. 어쨌든 정황상 영문이 가장 수상하다. 강훈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았다.


계속해서 영문에 대한 의문점들을 강조하는 강훈을 보며 정민은 노아의 말을 떠올렸다.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한 이상 경찰은 결국 그나마 범죄가 가능한, 그중에서도 가장 수상쩍은 부분이 많은 사람을 타겟 삼아 집중수사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CCTV에 찍히지 않고 도훈만 죽이고 빠져나간 범인을 잡을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동기가 있고, 범죄가 가능했고 (아직 증명하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영문을 집중공략하기로 결정한 듯했다. 만약 영문이 범인이라면 제대로 찍은 것이지만, 아니라면 영문에게는 앞으로 상당한 고생길이 펼쳐질 것이 훤했다.


만약 이번 사건의 수수께끼가 끝내 풀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정민은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수많은 미제사건 중 하나로 남을까? 아니면 억울한 누군가가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는 건 아닐까? 후자는 아니길 정민은 바랐다. 도훈 같은 인간의 살인누명을 쓰고 인생을 망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정우현 씨 증언은 확인하셨나요?”


노아가 다시 화제를 전환했다.


“딸과 영상통화를 했다고 했죠. 확인해 보셨습니까?”


“예. 어렵지 않았습니다. 정우현 씨 부인이 아주 적극적으로 협조했죠. 만에 하나라도 남편에게 혐의가 갈까 아주 걱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강훈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덕분에 그 아이도 만나 직접 얘기를 했습니다. 야근하는 아빠가 보고 싶어서 엄마에게 떼를 써서 영상통화를 했다고 하더군요. 정우현 씨가 자기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도 확인해줬습니다.”


“아빠가 전화를 받은 장소가 사무실이란 걸 아이가 어떻게 알았나요?”


“예전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강훈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빠방 이라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아는 건 아닌데 벽 색깔이나 가구, 이런 걸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뭐 아동심리전문가 이런 건 아니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너무 어려서 정우현 씨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건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구요.”


“그렇겠죠.”


노아가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이러면 우현도 용의선상에 완전히 벗어나는 건가?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우현은.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예정에 없었던 딸아이와의 통화가 그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주지 않았는가. 게다가 빗나간 비예보 덕에 옥상을 활용해 범행을 저질렀을 거란 가능성도 제외됐고. 만약 예보대로 비가 와서 옥상의 먼지들이 다 쓸려갔다면 딸과의 통화고 뭐고 간에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던 우현이 최우선 용의자로 부각됐을 것이다.


아. 정민은 그제야 깨달았다. 노아가 옥상을 조사하며 운이 좋다고 한 사람은 바로 우현이었다. 노아는 이미 연이은 우연이 겹쳐 우현을 보호해주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게 정말 다 순수한 우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정민은 혼란스러워졌다. 마치 의심병에 걸린 것 같았다. 확실한 게 무엇 하나 없다보니, 모든 것이, 그리고 모두가 다 의심스러웠다. 도훈과 기묘한 공생관계였다는 하윤도, 말 할 수 없는 비밀을 감추고 있던 김준호 관장과 정훈도, 화랑관을 물려받기로 돼 있던 우현도, 그 경쟁에 패배한 세민도, 그리고 도훈 때문에 커리어를 통째로 잃은 영문도. 재훈은 어떨까? 그날 밤, 전화 한통 받더니 안색이 변해서 사라지고선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 그가 정말 계속 라운지 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까?


강훈과는 점심을 마친 후 바로 헤어졌다. 강훈은 바빠보였다. 아마 풀리지 않는 사건 때문에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날 노아와 정민은 하윤의 진술이나 김준호 관장의 진술에 대해선 강훈에게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강훈에게 제공할 만한 정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강훈은 별로 실망한 기색을 띠지 않았다. 애초에 노아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가 좀 더 장기적인 시점에서 사건을 보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강훈은 프로페셔널하고 좋은 형사라는 인상을 정민은 받았다. 필요한 정보는 잔뜩 받았는데 정작 알아낸 정보는 공유하는 것이 없어 강훈에게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 정도였다.


“다시 서울로 돌아갈 거죠, 선배?”


강훈이 떠난 후, 노아가 정민에게 물었다.


“저도 돌아가려고 하는데, 데려다 드릴게요.”


“응. 좋아. 고마워.”


“어디로 갈까요?”


“집이면 돼. 특별히 다른 일정은 없으니까.”


“그래요?”


노아가 잘 됐다는 듯 반색했다.


“그럼 저랑 재훈 형님이나 만나러 갈래요?”


“이재훈 사장?”


정민이 되물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싫은 기색을 비치고 말았다.


“오늘 만나기로 했어?”


“예. 저녁 약속을 잡았어요.”


“왜? 사건 때문에?”


“글쎄요? 모르겠어요.”


“네가 보자고 한 게 아니야?”


“예. 형님이 보자고 한 거예요.”


그 관심종자가 아무래도 노아가 단단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니면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이 있거나. 어느 쪽이든 정민은 별로였다.


“미안한데 난 오늘 그냥 쉴게. 나중에 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알려만 줘.”


“예, 그럴게요.”


실망하지 않고 노아가 시원스레 대답했다.


“아. 저도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선배?”


“부탁? 어떤 거?”


“마주환 작가님에게 연락해서 한서연 씨, 그리고 김우섭 씨 좀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줄 수 있어요?”


빙그레 웃으며 노아가 말을 이었다.


“사실 두 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한서연 씨가 들었다는 의문의 소리에 관심이 좀 가서요. 주환 작가님께 물어 좀 봐줄 수 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연락할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


“나도 사적으로 친한 건 아니야. 하지만 물어볼게.”


역시. 강훈의 말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은 정민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정민은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와 노아의 생각이 일치한데서 오는 만족감이었다. 근거 없는 기대감이었지만, 서연이 들었다는 이 ‘소리’에서부터 이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이른 토요일 오후. 나름의 소득을 얻은 노아와 정민은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서울로 돌아갔다.


다가올 두 번째 비극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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