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살인 (1)

by 온실라

토요일 오후, 정민은 주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서연과 우섭과의 만남을 잡아줄 수 있는지에 대한 부탁이었다. 잊기 전, 서둘러 메일을 보내기는 했지만 정민은 주환의 빠른 답장은 기대하지 않았다. 적어도 며칠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설사 주환이 흔쾌히 나서준다 해도 서연과 우섭과의 만남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서연과 우섭 입장에선 살인사건 관련해 굳이 기자들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보통은 죄가 없더라도 엮이는 것 자체를 꺼리기 마련이다. 더욱이 두 사람은 미술계쪽 인물들도 아니었고 화랑관과도 별 관계가 없었다. 피해자인 도훈과는 아예 일면식조차 없었다. 정민은 두 사람을 인터뷰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주환에게서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서연과 우섭이 기꺼이 노아와 정민을 만나겠다고 한 것이다. 심지어 시간이 괜찮으면 내일이라도 보자고 했다. 정민은 바로 노아에게 연락했고, 노아도 바로 답장했다. 그렇게 주환까지 포함해 다섯 명이 일요일 오후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서연의 집 근처로 잡았다.


다음날이 됐다. 오늘도 어김 없이 노아가 정민을 픽업하러 왔다. 정민이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된다고 거절 했지만, 어차피 가는 방향이니 본인이 오겠다고 노아가 우겼다. 정민은 결국 못이기는 척 노아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새 익숙해진 것인지 노아의 조수석 자리가 편안하게까지 느껴졌다. 노아를 볼 때마다 치밀어오르던 거부감도 많이 줄었다. 아니, 아예 어느 순간부터 의식하지 않고 노아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정민은 자신의 빠른 변화에 문득 경계심이 들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정민은 이 변화가 현 사건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우선시하다보니 생긴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노아와 함께 이 사건에 뛰어든 본분 자체를 망각하는 것이었지만, 정민은 왠지 그마저도 더 이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먼저 살인범을 잡자. 그리고, 그리고…….


“잘 잤어요, 선배?”


노아는 언제나처럼 다정다감했다. 정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예의상 노아의 안부도 물어보았다. 노아는 조금 피곤해보였다. 어젯밤 조금 늦게 귀가했다고 했다. 정민은 재훈과 노아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뭔가 중요한 게 있었다면 노아가 아마 먼저 꺼낼 것이다.


“어제 재훈 형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요.”


예상대로. 노아가 먼저 재훈을 언급했다.


“은근슬쩍 한 번 물어봤거든요. 형님은 고 윤창섭 사장에 대한 그 소문에 대해 어떻게 들었는지.”


“어떻게 들었대?”


관심이 생긴 정민이 물었다. 기껏해야 미술애호가에 불가한 재훈이 그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게 정민은 확실히 의외였다. 커리어 내내 미술계에서만 활동한 문화부 기자인 자신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는데, 어떻게 재훈이 그런 소문을 접할 수 있었을까? 김준호 관장에 의하면 그 당시에도 잠깐 말이 나왔다 사라졌었다고 했는데 말이다.


“본인이 직접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사건에 대해 알만한 사람에게.”


노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소스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안 알려줬구요.”


“그래? 애간장 좀 태우다 알려주려는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노아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진심으로 얘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못한다고 해야하나?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과의 의리 때문에라도 말이죠.”


“의리?”


이재훈 사장과는 잘 안 어울리는 단어 같은데. 정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정민이 보기에 노아가 은근히 재훈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 생각엔 형님한테 이 이야기를 해준 사람도 그 사건과 뭔가 얽혀있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노아가 말을 계속했다.


“그 사람도 이 이야기가 퍼져서 좋을 게 없다는 거죠. 본인 입으로 퍼뜨렸다면 더더욱 그렇구요. 그래서 아마 그 사람을 보호해주기 위해 형님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형님이 의외로 입이 무거운 것 같아요.”


“정말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소문이 있다는 얘기를 안 하지 않았을까?”


정민이 살짝 빈정댔지만, 노아는 가볍게 웃음으로 넘겼다. 조금 공격적으로 얘기를 한 것을 후회한 정민이 급히 물었다.


“그 외에 이재훈 사장이랑 무슨 이야기했어? 사건 이야기만 했어?”


“사건 이야기 위주로 하긴 했는데…… 다른 이야기도 했어요. 어쩌다보니…….”


문득 노아의 머릿속에 어제 재훈과 함께했던 저녁식사 자리가 그림처럼 그려졌다. 맛집으로 소문난 돼지고기집이었다. 보통 만석이라 웨이팅이 한 시간은 되는 곳인데, 기묘하게 재훈은 프리패스였다. 사장이 직접 나와 몇 개 있지도 않은 방으로 재훈과 노아를 안내한 것이다. 재훈은 예약을 했다고 했다. 노아는 그게 신기했다. 노아가 알기로 그 가게는 예약을 받지 않았다.


잘 먹고 잘 마시고 많은 얘기를 하고, 두 사람은 2차를 가기 위해 일어났다. 사장이 돈을 안 받겠다는 걸 재훈이 반드시 내겠다고 우겨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사이 가게 한 구석에 있는 낡은 TV에서는 저녁 뉴스가 한창이었다.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TV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살인사건이 나오고 있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못한 어느 고교생이 가해자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고 했다.


“저런 건 솔직히 무죄 아닌가?”


어느새 옆에 다가온 재훈이 호기롭게 말했다. 그는 꽤 취해있었다. 좀 전까지는 기분이 매우 좋았는데, 뉴스를 보고 조금 성이 난 것 같았다.


“어떻게 생각해, 동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난 저런 뉴스를 보면 속이 후련해. 저런놈들은 죽어도 싸지 않아?”


“하지만 법은 그래도 살인은 유죄라고 판결을 내리겠죠.”


“내 말이!”


재훈이 돌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가게를 가득 채운 손님들 모두 제각기 떠드느라 바빴기 때문에 누구도 재훈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내가 언제나 느끼는 건데, 법은 정의롭지 않아. 결국 언제나 손해보는 건 피해자라고. 그게 참 이상해. 맨날 보면 법은 나쁜놈들 보호하는데는 적극적인데, 그 나쁜놈들한테 당한 피해자들은 나몰라라야. 왜 그런 걸까? 이 나라 사법시스템의 문제인가? 아님 높으신 분들 문제인가? 난 가끔 판사들한테 묻고 싶다니까? 당신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렇게 판결하실 겁니까? 하고.”


2차로 방문한 바에서도 재훈은 대한민국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계속 같은 주제로 떠들었다. 술이 들어가면 갈수록 횡설수설하면서 점점 논점이 흐려지고 있긴 했지만. 노아는 주정에 가까운 그의 연설에 계속 맞장구를 쳐줬다. 예, 형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법은 한계가 있죠…….


“......싱거운 이야기들이었어요.”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는 대신, 노아는 그렇게 넘어갔다. 다행히 정민은 사건 외에 재훈과 나눈 사담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정말 싱거운 얘기였죠.”




약속장소는 서연이 사는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공공장소였지만, 사람이 거의 없어 이야기를 나누기에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공원이 한 가운데는 사람들이 쉬어가라고 만든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다섯 사람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햇살은 따사로운 가운데 바람은 선선했다. 나눌 대화 내용만 아니라면 소풍이라도 나온 기분이었을 것이다.


“저랑 우섭이는 주환이의 초대로 파티에 참가했어요.”


인터뷰를 시작하며 노아가 어떻게 그날 프라이빗 파티에 참석하게 됐는지 묻자 서연이 바로 대답했다. 정민은 그녀가 당당하고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만난 여성들은 어쨌든 살인사건 관련된 질문에 조금씩은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서연은 그런 거리낌이 전혀 없어보였다. 오히려 옆에 앉아있는 덩치 큰 남자 우섭이 더 안절부절하는 것 같았는데, 그는 서연의 그런 모습을 조금 걱정하는 눈치였다.


“저희 셋은 동네친구거든요. 초중고를 같이 나왔죠. 대학 진학 때 뿔뿔이 흩어지긴 했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연락하면서 만났고요. 그런데 주환이가 굉장히 큰 전시회를 열게 됐다고 하니, 안 갈 수가 없었죠.”


“그날 저녁 피아노 연주는 정말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미소와 함께 노아가 살짝 주제를 바꾸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아요. 적어도 주환이 정도는 아니죠.”


“무슨 말씀을. 서연이는 한국을 넘어 유럽과 미국에서도 주목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주환이 끼어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움 같은 것이 묻어났다.


“제 파티에 초대할 수 있어 영광이었지요. 혹시 괜찮으면 연주도 한 번 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구요. 동관 라운지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으니까요.”


“식사가 끝나고 분위기가 살짝 다운된 것 같아서 한 번 해봤어요.”


서연이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해보였다. 노아가 질문을 계속했다.


“연주하셨을 때 시간을 기억하시나요?”


“잘 모르겠는데…… 8시 반 정도였나요?


“8시 20분과 30분 사이였습니다. 저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30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하. 그랬나요?”


“예. 그러고보니 연주하시기 직전에는 서관 3층에 계셨었죠?”


“제가 가자고 했습니다.”


우섭이 끼어들었다. 그는 노아의 질문이 서연에게 집중되자 조금 초조해보였다.


“서연이는 그날 화랑관이 처음이었거든요. 화랑관 브릿지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는데,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제가 데리고 갔습니다.”


“예. 들었습니다. 동관 3층에서 브릿지를 건너 서관 3층으로 가셨다구요.”


“예. 그랬어요. 미술관 구조가 복잡하더라구요?”


“그리고 서관 3층에서 어떤 소리를 들으셨구요?”


처음으로 서연이 멈칫했다. 그녀의 표정에 망설임이 떠올랐다. 정민은 그 망설임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것은 불확실함이었다. 서연은 지금 본인의 기억에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같이 계셨던 우섭 씨는 어떤 소리도 못들으셨구요?”


노아가 이번에 우섭을 바라보았다. 우섭은 떨떠름해보였지만, 그래도 정직한 투로 대답했다.


“예, 저는 아무 소리도 못들었습니다. 다만,”


우섭이 급히 덧붙였다.


“서연이는 저와 다릅니다. 음악을 하다보니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각이 예민합니다. 서연이라면 어떤 소리를 충분히 들었을 수 있죠. 특히 그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쥐 죽은듯이 조용해서 저와 서연이 말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습니다.”


“예. 그랬어요.”


우섭의 뒤를 이어 서연이 말했다. 그녀는 표정이 살짝 굳어있었는데, 노아가 어떻게 반응하든 일단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경찰은 그녀의 증언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것을 정민은 떠올렸다. 그 사실이 그녀를 더 자신없게 만들었던 건지도 몰랐다.


“우섭이와 이야기 중, 어떤 소리를 들었어요.”


서연이 말했다.


“처음엔 잘못 들었나 라고 생각했어요. 아주 짧게 들렸으니까요. 매우 미세하면서도 둔탁한 소리였어요. 쿵쿵쿵…… 하고 울리는 소리요.”


“그렇군요.”


노아는 사뭇 진지하게 서연의 말을 경청했다.


“혹시 소리에 어떤 규칙성 같은 게 있었나요?”


“아뇨. 그렇진 않았어요.”


서연이 바로 대답했다.


“그냥 굉장히 빠르게 지나가는…… 그런 소리였어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서연 씨는 어디 있었나요?”


노아가 질문을 바꾸었다.


“서관 3층 정확히 어디였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기억은 해요. 그런데 거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잘…… 제가 미술관 구조를 잘 모르니까요.”


서연이 난감한 기색을 띠며 답했다. 그렇지만 노아는 실망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


“혹시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 거기에 가까운 위치는 아니었나요?”


“아. 그 근처는 맞아요.”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가까운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가 서있는 곳에서 출구 쪽을 보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가 보였으니까…… 전 그 공간에서 가운데쯤 있었던 것 같아요. 그곳도 전시관이었는데…….”


“대충 알겠군요.”


노아가 미소지었다.


“브릿지를 건너신 다음 그 복도를 지나 서관 3층 메인 전시관으로 진입하신 것 같은데요.”


“맞아요. 그랬어요.”


서연이 열심히 호응했다.


“오래 있진 않았어요. 저희 외엔 사람이 없으니까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거기다가 저 혼자 이상한 소리까지 들어서…….”


“조금 있다 브릿지를 건너 다시 동관으로 건너오신 거군요. 3층에서 1층 라운지로 돌아오셨고…….”


알만하다는 듯 노아가 중얼거렸다. 정민은 그의 눈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뭔가 깨달은 것일까? 하지만 직후, 노아의 눈빛이 흐려졌다. 노아는 살짝 인상을 쓰고 있었다. 찌푸린 그의 얼굴은 왜? 라고 묻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 묻는 것일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분.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흔들린 것도 잠시, 다시 냉정을 찾은 노아는 예의바른 미소와 함께 서연과 우섭에게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연과 우섭은 정자에 남았다. 하지만 주환은 노아와 정민을 따라왔다. 둘에게 따로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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