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살인 (4)

by 온실라

“안녕하세요.”


오늘만 두 번째 인사였다. 영문은 의외라는 듯 싱글벙글 웃고 있는 노아를 바라보았다. 영문은 노아가 누군지 알고 있었고 그가 왜 화랑관에 수시로 드나드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 노아가 안내 데스크 직원에 불과한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것이 어지간히 예상 밖이었는지 영문은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관장님과 약속을 좀 잡을 수 있을까요?


노아가 대뜸 내뱉었다. 노아의 요청에 옆에 서있던 정민이 노아 쪽을 한 번 힐끔 보았다. 영문을 만나러 중앙관 1층 로비로 오기 전, 노아는 이미 정민에게 김준호 관장이 오늘 오전 손님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 노아가 이리 당당히 김준호 관장과의 만남을 요구할 줄은 정민도 예상 못했다.


“죄송합니다, 기자님. 관장님께서는 오늘…….”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압니다. 하지만 그 사건과 관련된 일입니다. 안 될까요?”


영문이 움찔했다. 화랑관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과 관련해 관장에게 할 말이 있다고? 그렇다면 마냥 거부하는 게 좋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영문은 망설였다. 다시 한 번 사무실에 연락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기습적으로 노아가 질문을 날렸다.


“사건이 일어났던 밤, 중앙관 3층을 들렀다고 하셨었죠?”


“예?”


영문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노아의 질문을 놓친 모양이었다. 노아는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마주환 작가님 전시회를 위한 프라이빗 파티가 열렸던 날 말입니다. 7시 50분쯤에 중앙관 3층에 계셨다고 했죠. 참석자들에게 나눠줘야 할 팜플렛 상자 하나가 잘못 가있었다구요.”


“......예. 그랬습니다.”


겨우 이해했다는 듯 영문이 대답했다.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노아가 난데없이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는지 의아한 눈치였다.


“계속 생각해봤는데 뭔가 이상해서 말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노아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전달이 잘못 됐다고 해도 파티 후 나눠줘야 할 새 팜플렛이 비품창고로 보내지다니…… 보통은 그런 일이 잘 없지 않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영문이 얼른 대답했다. 그러다 방금 자신의 대답이 본인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부랴부랴 덧붙였다.


“당시 직원 간에 소통 오류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정확히 누구의 실수였는지 밝혀졌습니까?”


“그러진 않았습니다.”


영문이 설명했다. 노아와의 대화가 이어질 수록 그의 당혹감은 짙어지는 것 같았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굳이 책임 소재를 따질 정도의 실수는 아니었습니다. 제 선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군요.”


겨우 노아가 영문을 놔주는 듯했다. 그러나 바로 또 다른 날카로운 질문이 영문을 푹 찔렀다.


“비품 창고에서 20분 정도 계셨다고 했지요?”


“예?”


“팜플렛이 든 상자를 찾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습니까? 좀 깊숙히 숨겨져 있었나요?”


“아, 아뇨.”


영문이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제 누가봐도 당황해서 허둥대고 있었다.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아직 참석자 분들이 떠나실 시간이 아니다보니 제가 농땡이를 좀 피운 것뿐입니다. 너무 여유를 부렸지요. 안내 데스크를 지키고 있다 보면 핸드폰도 확인 못하니까요. 그저…….”


“그랬군요.”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영문의 변명을 노아가 납득하고 넘어갔다. 영문은 안도하기 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노아를 보았다. 노아는 상관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어쨌든 관장님께 연락을 좀 넣어주시겠습니까? 사건 관련으로 꼭 드릴 말씀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번에 영문은 망설이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노아를 쫓아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내선 전화로 영문이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누군가와 몇 마디 주고 받았다. 정민은 영문의 입술 모양을 통해 그가 살인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가벼운 한숨과 함께 수화기를 얼굴에서 떼고 영문이 말했다.


“사무장님이 관장님께 직접 여쭤보겠다고 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아가 감사를 표하자 영문이 반사적으로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이 사람도 분명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조금 표정이 나아진 영문을 보며 정민은 생각했다. 동기도 있고. 노아 말마따나 의심스러운 타이밍에 의심스러운 장소에 있었지. 하필이면 CCTV 사각지대인. 물론 중앙관 3층을 벗어나고 나서 어떻게 CCTV를 피해 이동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정민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영문이 다시 수화기를 귀에 가지고 갔다. 뭐라 말하는 소리를 듣더니 다시 안색이 바뀌었다.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것도 잠시, 곧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는 것을 정민은 보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노아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영문이 중얼거렸다. 그는 정신없이 안내 데스크의 서랍을 뒤지더니 열쇠 꾸러미 하나를 꺼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돌아오겠습니다.”


열쇠 꾸러미를 들고 영문은 허겁지겁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달려갔다. 정민은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노아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따라가죠, 선배.”


“알았어.”


뭔가 심상치 않다. 노아의 뒤를 바짝 따르며 정민은 생각했다. 영문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내선 전화를 통해 대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일까. 영문은 노아를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재훈과 지현도 뒤따라왔다. 영문은 벌써 엘리베이터를 잡아 들어가던 참이었다. 노아는 냉큼 뒤따라들어갔고, 정민 뿐 아니라 재훈과 지현도 들어왔다. 의외로 영문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5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무섭게 영문은 바로 동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보라도 하는 듯한 바쁜 걸음걸이였다. 노아는 계속해서 그 뒤를 바짝 쫓았고, 세 사람도 뒤쳐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아를 따라갔다.


영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동관 5층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50대에 안경을 쓴 깐깐하게 생긴 여성이 문밖에서 영문을 맞이했다. 정민은 그녀를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관장실 앞에 위치한 데스크에서 일하는 여직원이었다. 김준호 관장을 만나러 사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그녀가 관장실 앞에 앉아있던 기억이 있었다.


영문은 여자에게 열쇠 꾸러미를 건네주었고,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냉큼 받았다. 그리고 냉정하게 느껴질 만큼 홱 돌아서더니 말없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영문은 저 열쇠를 주기 위해 여자의 부름을 받은 듯했다. 그런데 영문은 심부름을 마친 후에도 데스크로 돌아가지 않고 여자의 뒤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노아 역시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정민은 살짝 주저했지만, 재훈과 지현이 과감히 노아의 뒤를 따르는 것을 보고 엉겁결에 같이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이상했다. 마치 폭풍전야 같았다. 모든 직원들이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덕분에 외부인인 네 사람의 침입을 막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깐깐하게 생긴 여직원조차 그들에게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다.


영문과 여직원은 관장실을 향했다. 두 사람은 거의 뛰고 있었다. 노아 일행도 열심히 쫓았다. 관장실 앞에는 다른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부관장 우현과 기획실장 세민도 있었다. 두 남자 모두 심각한 얼굴이었다.


“열쇠는요?”


우현이 물었고 여자는 바로 열쇠 꾸러미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우현은 거의 낚아채듯이 여자에게서 열쇠를 받은 후, 빠르게 열쇠 꾸러미를 뒤적이더니 어두운 금빛으로 번쩍이는 한 열쇠를 골랐다. 그 열쇠를 굳게 닫혀있는 관장실 열쇠구멍이 밀어넣고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철컥. 작은 금속음이 울렸다. 정민은 그 작은 소리가 기묘할 정도로 불길하게 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우현이 관장실의 문을 열었다.


방의 끝에는 큰 창이 있었고, 그 창을 뒤로 하고 고풍스러운 고동색의 큰 책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책상에 놓여진 것 중에는 “화랑관 관장 김준호” 라고 쓰여진 큼지막한 명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은 검은색의 더블 모니터가 눈에 띄었다. 그 외에도 책상 위에는 서류더미와 책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는데 기묘하게 잘 정리가 돼있어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책상 뒤에는 검은 중역의자가 있었다. 김준호 관장의 의자였다. 김준호 관장은 그 의자에 앉아있었다. 두 눈을 감은 채 의자에 파묻힌 것 마냥 등을 깊숙이 기대고 있는 게 얼핏 보면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에 들어선 모두 김준호 관장의 상태가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노인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뭔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관장님!”


우현과 세민이 거의 동시에 김준호 관장을 향해 달려갔다. 여직원은 자리에 주저앉았고, 영문은 우두커니 선 채 벌벌 떨고만 있었다. 정민도 서있던 자리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김준호 관장이 죽었다. 지금 그녀가 목도한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시체인 것이다.


“......누가 경찰 좀 불러주시겠어요?”


노아가 마침내 한마디 했다. 정민은 반응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멍하니 우현과 세민이 김준호 관장의 주위를 맴도는 것을 바라보았다. 애써 가까이 다가갔지만, 두 사람은 김준호 관장에게 손도 대지 않았다. 아니, 아마 못하는 것일 것이다.


김준호 관장은 명백히 죽어있었다.


그러니 굳이 만져서 확인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구급차를 부를 이유도 없고. 벌써 두 번째다. 이 화랑관에서 벌써 두 번째 살인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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