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한디.
의사로 일하다 보면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죽음을 목격하고 나면 누군가의 의식 있는 마지막 모습을 내가 목격하였다는 생각에 며칠이고 기분이 이상하다. 그 순간을 계속 되뇌며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있었는지를 곱씹고 또 곱씹는다.
초보 의사일 때는 손이 후들후들 떨리고 집에 돌아와도 계속 생각이 나고 며칠씩 속이 상해 있곤 했다.
그러나 이것도 십수 년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 무뎌졌다.
그럼에도 무뎌지지 않는 것은 젊은 사람의 죽음이다.
젊은 사람의 죽음을 겪고 나면 그 후유증은 꽤 오래간다.
혹여라도 그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반드시 울컥 눈물이 난다. 내 죽음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내 가족들이 겹쳐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럴 때면 매번 동료들과 같은 말을 나눈다.
"우리,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아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말만 저렇게 할 뿐 대부분의 대학병원 의사들은 몸을 갈아 넣으면서 여유 없이 살기 마련이다. 사람 살리는 일이 어찌 보람되지 않을 수 있겠냐만은, 그리고 그 일이 좋아서 대학병원에 남아 일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힘들다고 푸념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하루 살다 보니 여기저기 아프기도 하는데, 병원에 있으면서도 막상 내가 아프면 진료를 보러 갈 짬도 잘 안나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한 번 씩 젊은 사람의 죽음을 겪고 나면 머리를 한 대 맞는 기분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한 대 씩 맞는 일을 꽤 오랜 시간 하다가 보니 뭣이 중한지 알게 되는 것 같다.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정신적으로는 한참이나 미숙했던 내가 나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나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둘 줄 알았다는 점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러니 어쩌면 늦게 알게 되어 운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린 나이에 내 정체성에 대해 알았다면 꽤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우울해하였을지도 모르니.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기. 그게 인간이라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 인류에게 가당치 않은 일임은 물론 알고 있지만 나는 이제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려는 노력을 계속하려 한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너무나 궁금하다. 나는 과연 직장에 커밍아웃을 할 수 있을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고 이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엔 어떻게 내 인생이 바뀌어 있을지 궁금하다. 성소수자가 살기에 너무나도 열악하고 지독한 대한민국에서 과연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죽기 전에 혼인신고는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