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인데.

내가 아니기도 해야 한다.

by kimsoodahl

나는 회식이나 모임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꺼려진다.

연기를 하고 앉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쓰러운 노처녀 연기.

그리고 술을 먹고 마음이 해이해지면 내가 실수라도 할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다.


거짓말은 한 번 시작하면 꼬리의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고 하질 않는가. 지금 내가 딱 그렇다.

항상 주변 사람들과 친화적이고 대화를 많이 하고 주도하는 편이었던 나는 내 사생활도 많이 오픈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 정체성을 숨기고 나의 연애를 숨기면서부터는 많은 것이 숨겨야 하는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매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들조차 내가 연애도 안 하고 예전처럼 부모님과 살고 있는 줄 알기 때문이다.


독립하면서 친구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그 친구는 누구냐 왜 혼자 살지 않고 친구랑 사느냐 등의 질문들이 나올게 뻔해서 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시작된 거짓말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거짓말이 아니고 말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하루 종일 붙어서 일하다 보니, 게다가 각자 자리에 앉아 사무직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현장직처럼 함께 실무를 하다 보니 잡담을 하게 되고 계속 거짓말을 할 일이 생긴다.


왜 직장동료들과 사적인 얘기를 해서 피곤하게 사느냐.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대학시절부터 이어져온 관계들이라 동료들이라기보다는 스승과 제자, 오랜 친구, 친한 선후배와 같은 사이였고, 이미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들과 거리를 두면서 일만 하는 사이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회식이 끝나고 돌아갈 때 집 방향을 얘기하면서도 거짓말을 해야 하고 실제 사는 집은 원래 살던 집의 정반대 편이다 보니 예전처럼 동료를 차로 지하철역에 내려줄 때에도 나는 의도치 않게 돌아가야 하게 되었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동석한 자리에서는 더욱 불편했다. 결혼 여부에 관한 질문은 한국사회 모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주제였고, 그러면 거의 항상 혼자 미혼인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된다. 게다가 나는 동성연애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대외적으로 연애도 안 하는 싱글로 나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기로 정했기 때문에 더더욱 큰 걱정거리 또는 안쓰러움의 대상이 된다. 원래 알던 사람들은 그냥 쟤는 그러려니 하기 때문에 연애해라 결혼해라 더 시간 지나기 전에 애도 낳아야 한다 등의 얘기는 잘하지 않는 편인데 잘 모르는 사람들의 간섭이 더 심하다. 그러면 나는 그저 옅은 미소를 입에 지으며 걱정해줘서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연기를 하고 앉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회 후 뒤풀이 같은 것은 잽싸게 튀어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남편도 가정도 애도 없는 사람은 학회 뒤풀이에 끝까지 있어야만 한다는 불문율을 살포시 깨 주고 있다.


예전의 나는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되었었는데.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 하루하루가 잔잔하지만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차 있다.

예전에는 몰랐던 어려움이다.

왜 나로 살지 못하는가 하고 분노가 차오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처럼 나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족들에게조차 나이지 못하는 슬픔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한다. 언젠가 이 문제가 해결이 되면 나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은 그러나 그저 숨어있는 한 명으로서 내 개인의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중이다. 해결이 되긴 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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