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 사이 어딘가의 애매모호함 속 일지라도
우리는 둘 다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얘기할수록 잘 맞았고 새로운 점을 알수록 서로와 비슷함에 놀랐다. 지금도 가끔 서로 잘 맞아서 놀랄 때가 있다.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비슷했고 취향이 비슷했고 생각하는 게 비슷했다. 어제도 나란히 앉아 각자의 컴퓨터를 가지고 인터넷으로 옷을 고르다가 '이거 괜찮지 않아?'하고 옆을 보니 그녀도 같은 옷을 클릭하려던 참인 거다. 그럴 때면 우리는 신기하다며 웃곤 한다.
웃는 일이 많다. 내가 집에서 강아지들과 까불며 놀고 있으면 깔깔 웃는다.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야 되는데 올릴 유튜브가 없다며. 나도 많이 웃는다. 같이 있으면 웃는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
나는 가끔 예민할 때가 있다. 피곤할 때,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을 때 등등. 그러면 그녀는 '피곤하구나', '스트레스받고 있구나'하고는 말없이 내 대신 집안일을 좀 더 해주거나 먹을 것을 챙겨준다. 당연히 그녀도 피곤하고 힘들 때가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집안일을 챙기고 맛있는 요리를 해준다.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맛있는 걸 먹으며 맥주 한 잔 하고 나면 쌓여있던 고민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마음이 풀린다.
밤에는 서로 꼭 안고 자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래야 잠도 잘 오고 안정감이 든다. 한 명이 일이 밀려서 늦게 자는 날은 둘 다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연애 중인 걸까 결혼을 한 걸까.
가끔 '우리 연애할 때는 그랬지.'라는 말이 튀어나오곤 하는데 그러고 나면 꼭 '그럼 지금은 뭐야?'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남는다.
많은 동성커플이 동거를 한다. 그들 중 결혼식을 한 커플은 많지 않다. 지인들과 결혼에 대해 얘기를 하면 찬반이 갈리는데,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서로 견고하면 되지. 법적으로 효력도 없는데.'라는 사람과 '서로 간의 약속을 공표하는 거지, 우리야말로 헤어지면 그냥 끝인 사이니까.'라는 거다. 커플 내에서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오해나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결혼을 의미 없는 허례허식이라고 한 사람이 생각하면 다른 한 사람은 이 사람이 나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불안해하는 식이다.
요즘 아무리 이혼이 많다고 해도 이성 커플은 어쨌든 결혼이란 걸 하고 나면 그에 대한 책임으로 서로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고 가족이라는 틀로 묶이면서 한 단계 나아가는 느낌도 있다. 그래서 결혼은 연애와는 확실히 다른 하나의 시작점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동성커플이 연애하다가 동거를 시작하는 것은 그저 연애의 연장선의 느낌이 강하다. 심지어 나처럼 연애 자체를 주변에 숨기는 경우도 많고, 그러니 헤어지고 나면 인생에서 서로의 흔적은 아예 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의 마음에는 엄청난 흔적이 남겠지. 주변으로부터 제대로 위로받지 못할 흔적.
우리는 결혼을 하려고 한다. 사실 이래저래 하니까 우리도 결혼이라는 걸 하자.라는 대화를 한 적은 없다. 그냥 우리는 처음 만나기 시작할 때부터 (순전히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우러난) 같이 살자, 결혼하자는 말을 계속해왔고 그래서 당연한 듯이 느껴졌다.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은 있다. 우리 둘 중 만약 누가 죽었을 때 아무도 남은 한 사람의 존재를 몰라서 장례식에서 숨어있어야 한다면, 심지어 장례식장에 오지도 못한다면 그건 너무 슬플 것 같다는 대화. (이 대화는 이 기사 내용에서 시작되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6569760?sid=102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320)
나는 가족과 직장에는 커밍아웃을 못했지만 친한 친구들에게는 이미 커밍아웃을 마친 상태이다. 그래서 다행히도 친구들에게 내가 인생의 큰 변화를 겪으면서 오는 스트레스와 가족과 직장에 숨기고 있는 것들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를 말할 수 있고 조언과 응원을 받고 힘을 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슬픈 얘기만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고민이야 많지,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건 고민의 연속이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고민을 자꾸 적어 내려 가는 것은 그런 나를 우울하게 만들 뿐이다.
앞으로 결혼도 할 것이고, 아마도 더 많은 주변인에게 커밍아웃을 하게 될 것이다. 힘들겠지만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행복을 찾는 것. 그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