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가능한.
마당 있는 집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나와 남편은 햇살을 맞으며 앉아 소설책을 읽는 그런 미래를 꿈꾸었던 때가 있었다. 가능할 것 같았던 그 상상이 드림스컴트루는 못될 것이라는 걸 느낀 건 어느 한 시점이라기보다는 점점 체득한 것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렇게 이미 되어있었다.
그렇게 되어있었다는 말에서 느껴지듯 이 깨달음은 한동안 매우 절망적인 것이었다. 내 주변 모두가 이룬 것을 나는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실망감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반려와 같이 집에 있을 때, 통화를 할 때, 카톡을 할 때에는 우리 삶은 지극히 다른 이들의 삶과 비슷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가끔 같이 외출할 때, 같이 여행을 할 때는 우리가 소수자라는 것을 너무나 잘 느낀다. 손을 꼭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허리를 감싸 안고 걸어가는 커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우리도 못지않게 다정한데 말이야!라는 생각이 든다. 이성애자 친구들은 오히려 쉽게 '아무도 신경 안 써, 편하게 행동해도 돼~ 그리고 동성연애가 뭐 어때, 요즘 같은 세상에!'라고 말한다. 응원과 호의에 고마우면서도 '그게 말같이 쉬운 게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든다.
기념일에 좋은 식당에 가면서도, air bnb 숙소에서도 우리는 우리를 향한 사람들의 갸우뚱한 시선을 느낀다. 일말의 pause라던가. 그런 것들. 근데 당연히 갸우뚱하지. 불편해하지만 않으면 나는 상관없다. 그런데 불편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건만 나 스스로 의식하는 것도 참 병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밖에서 내 반려의 손을 잡는 것도 길에서 애정표현을 하는 것도 식당에 기념일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도 꽃다발이나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자연스레 할 수가 없다. 어찌나 불편한 삶인지. 항상 생각한다. 내가 완전히 커밍아웃을 하고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어도 이렇게 밖에서 불편하게 행동할까? 대답은 불행하게도 '네'이다. 길거리에서 안전함을 아직 느낄 수 없기에 그렇다.
며칠 전 백화점을 갔더니 선남선녀 커플들이 참 많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서 백화점은 예뻤고 거기에 자연스레 융화되어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내가 그 장소에서 분리되면서 어떤 영화 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약간의 슬픔을 느꼈다. 난 여기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인가. 패배의식은 아니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가끔 사람들, 커플들이 많이들 놀러 가는 장소에 가면 느끼는 느낌이다. 뭔가 저들과 분리된 느낌, 그리고 약간의 슬픔.
그리고서 그날 저녁 집에서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다가 나에게 걸어오는 반려를 보며 '내가 어쩌다가 자기랑 이렇게 여기서 애들이랑 살고 있는 건가, 하는 비현실감이 또 드네.'라고 말했다. 비현실감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그리던 반려를 만나 행복하게 된 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내가 가끔 반려에게 하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어쩌다가'에서 느껴지듯 '뭔가 부정적인 일이 내게 발생해버렸네'라는 뉘앙스였다. 다행히 그녀가 그걸 캐치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나는 백화점에서의 그 기묘한 느낌이 그날 내 기분을 언짢게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꽤 되다 보니 결혼도 대다수가 하고 아이가 있는 친구들도 많고 아이가 벌써 중학생인 친구도 있다. 점점 대화 주제는 나와 동떨어진 것들이고, 아이 때문에 자주 모이지도 못하고 그래서 흐지부지된 모임도 몇 개 있다. 다들 그렇게 나이에 걸맞게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 내가 어릴 때 나도 당연히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삶을. 남들과 비교해서 우울해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성격은 아니건만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는 여태 뭘 한 거지? 왜 좀 더 빨리 무어라도 하지 못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얼마큼 시간이 지나면 비현실감도 사라지고 사람 많은 곳에서 떨어져 나오는 느낌도 슬픔도 안 느끼게 되려나. 그래도 지금 나는 예전의 절망감과 실망감에서 벗어나 반려와 마당 있는 집에서 따스한 햇볕 아래 소설책을 읽는 상상을 한다. 그게 매우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만 같다는 게 나를 웃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