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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21년째,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을까요?

by 태연콩

안녕하세요. 제 인생 살면서 제 얘기로 무언가를 써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첫 글인 만큼 두서가 조금 없을 거 같습니다. 그래도 한번 열심히 써볼게요.


먼저 저는 2004년, 4월 어느 날에 청주 어딘가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어렵게 태어난 저를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 주셨고, 다행스럽게도 저는 생각보단 잘 자라났던 것 같아요.


남자아이지만 어디 하나 다치지 않고 항상 어머니의 무릎 앞에서 얌전히 자랐어요.


물론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희 집은 저를 빼고는 다사다난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를 외롭게 하였고, 어머니는 혼자 기댈 곳 없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기분으로 지내셨어요.


이러한 상황은 제게 어머니를 뺏어가기엔 충분했고, 멀지 않아 어머니는 가정과, 아버지와, 저를 지키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 저와의 관계를 끊으셨어요.


물론 그때의 저는 고작 8살, 아직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저를 버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책했고, 내가 왜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는지를 되게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였을까요? 저는 남에게 나 자신을 투명하게 비추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했어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도, 저는 누군가에게 저를 솔직하게 비추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항상 남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는 척 가면을 썼어요.


제가 이렇게 가면을 쓰고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14살 때였던 것 같아요.


6학년이라는 나이에, 저는 헤어졌던 어머니와 다시 만났어요. 그것도 저희 집이 아닌 친구네 집에서 말이에요.


어머니는 저를 보기 위해 엄청난 용기를 냈다고 말했어요. 21살인 지금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나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이렇게라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엄마는 정말 기쁘다고.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저는 이 기회조차 믿지 않았었어요. 그냥 무서웠었던 것 같아요. 또다시 버려질까 봐. 또 나를 떠나갈까 봐.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저는 어머니가 임신을 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중학교 1학년, 저에게 있어서 14살은 제 인생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던 분기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감정, 생각, 행동 등등 나에게 나오는 모든 것들을 한번 더 거듭 생각하게 되고, 조심하게 됐어요.


14살이란 나이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어린 나이예요.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리광을 엄청 부릴 수 있는 그런 나이예요. 근데 저한테는 아니었어요.


어머니는 저에게 동생의 아버지, 즉 어머니의 재혼자를 소개해줬어요. 생각보다 좋으신 분이었어요. 돈도 많이 버시고, 안정적인 일자리에 다니시는 그런 분이셨어요.


그때의 저는, 누구도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었어요. 그게 설령 나를 버렸던 사람이어도.


그래서 저는 어머니의 행복을 빌었어요. 그분도 좋으신 분인 거 같으니까, 그냥 다시 출발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었어요. 저에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냥 나를 너무 이른 나이에 두고 나왔으니까.

그 아이라도 키우시며, 저에게 못해줬던 것들을 충분히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그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었어요. 정말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하늘은 그럴 마음이 없었나 봐요.


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고, 어머니의 재혼자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엄마에게 동생이라는 큰 짐을 남겨두고 먼저 이 세상을 떠나셨어요.


정말 그때 저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왜 나는 행복하지 못한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며, 있지도 않은 누군가에게 계속 던지며 그렇게 살았어요.


중학교 3학년, 16살이라는 나이에 저는, 너무나 큰 짐을 들고 있었어요. 너무 많은 과제와 숙제가 저를 둘러쌓았어요.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 않아야 하며, 동생에겐 멋진 오빠와 아빠가 되어야 하고, 또 같이 사는 아버지와 할머니에게도 나의 힘듦을 들키지 않았어야 했어요.


어딜 가든 저는 가면을 썼어요. 그냥 단지 내가 나인걸 남에게 보이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 같아요. 나에게 이런 상처가 있고, 이러한 두려움과 큰 짐이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누가 보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할 거예요. 왜 그 큰 짐을 혼자 짊어지려 할까? 하고 말이에요.


남에게 말하면 또 저를 버릴 것 같았었어요. ”얘는 그냥 짐덩어리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시절은 정신적으로 엄청 성숙해졌었네요. 이때의 나는 내가 하는 행동이 가면을 쓰고 하는 행동인가, 아닌가에 대해 되게 혼란스러워했어요.


친구에게 일상을 건네는 것도, 이게 내가 하는 건지 아니면 가짜로 만들어낸 밝은 내가 하는 건지 조차도 모르겠었거든요.


저는 이때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이때 만든 여자친구가, 저를 엄청 많이 도와줬었어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주는 이정표 같은 존재였었어요.


늘 항상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응원해 줬고, 저는 그녀의 응원에 힘을 얻어 또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남이 됐지만, 아직도 고마움은 남아있네요.


3년이란 시간 동안 나를 밝게 빛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그녀는 정말 저에게 목숨을 하나 더 준 소중한 은인이었어요.


그러다 어느덧, 대학 진학을 결정할 시기가 왔어요. 저는 그녀와 같은 대학을 가고 싶어서 원서도 넣고, 1차 합격까지 했지만 어머니와 동생이 눈에 너무 밟혔어요.


내가 멀리 대학을 가면, 어머니와 동생을 버리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나는 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대전으로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2023년 2월 28일. 아직도 생각나는 날이네요. 본격적으로 학교를 다니기 전, 신입생 환영회 느낌으로 OT를 진행했어요.


그때 만난 친구들은 제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그 친구들에게 제 자신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어요. 내가 힘들면 힘들다, 아프면 아프다, 답답하면 답답하다 말할 수 있게 나를 만들어준 사람이 이 친구들이에요.


많은 슬픔이 있었어요. 하지만 힘들지 않았어요. 그 친구들이 제 옆에 있어줬어요. 정말 저는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해요.


이 글을 볼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런 글에서라도 낯부끄러운 말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항상 나와해주는 사람들 정말 고맙다는 말은 해주지 못하지만, 많이 고맙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대학생활은, 가장 재밌는 클라이맥스 같은 막?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행복해요. 정말로.


쓰다 보니까 두서없이 글을 쓰게 됐네요. 재밌으셨나요?


저는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딱 한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그 끝에는 나를 위한, 내가 변할 수 있는 큰 보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늘 나를 응원해 주는 모든 사람들, 또 내가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 다 행복하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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