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바보야.
되게 오랜만이네.
어떤 얘기로 운을 띄워야 할 많이 고민했었어.
결국 늘 우리가 만나면서 습관처럼 해왔던
바보라는 말 밖에는 생각이 안 나는 거 있지?
왜 이제 와서 내가 너에게 이런 걸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근데, 지금 안 하면 평생 후회하고 살 것 같아서 써봐.
음.. 우리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
난 아직도 엄청 생생해.
아직은 코 끝이 살짝 시린 봄 어느 날에 나는 너를 마주쳤어.
너가 처음 와보는 학교에 당황해하며 엄청 긴장하고 있을 때,
그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이 내 눈엔 왜 이렇게
귀여워 보였는지 모르겠어.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 시선 끝엔 항상 너가 있었고, 내 대학생활엔 항상 너가 있었어.
밥을 먹을 때도, 술을 마실 때도, 강의를 들을 때도,
늘 내 곁엔 너가 있었고, 그런 상황이 나는 엄청 행복했던 것 같아.
그렇게 봄이 지나가고, 조금 더운 바람이 불 때쯤,
너에게 내 진심을 말했었어. 나 너 좋아한다고.
정말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내 하루 일과 중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기대되고 설렌다고.
그래서 내 마음을 전달해서, 앞으로 이런 하루하루를 너와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이야.
그 서투른 고백에 너는 좋다고 대답해 줬고, 우리는 그날부터 점점 더 가까워졌어.
뭘 하던 늘 함께였고, 함께였던 시간들이 늘 행복했어.
한 해가 지나 다시 여름을 맞이한 우리는,
오래되어 녹이 낀 로봇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삐걱거렸던 것 같아.
그쯤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을 거야.
난 세상 모든 것이 밉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었어.
너뿐만 아니라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나한테 위로를 해줘도, 위로가 되지 않았었어.
그래서 나는 너에게 미워 보이지 않고 싶어서 너와 하는 대화를 회피했고,
너는 그런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줬어.
너는 나만 바라보고, 기다려주는데. 너가 나에게 쓰는 시간조차 너무 미안했어.
너같이 좋은 사람이 왜 나 같은 사람을 만나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간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더욱 가두고, 탓했던 것 같아.
그런데도 넌 끝까지 나를 믿고 기다려줬어.
그렇게 너 덕분에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도 잘 지나갔던 것 같아
그리고 넌 이때쯤 날 바보라고 늘 불렀어.
내가 왜 바본지 물어봐도, 늘 그냥 바보니까 바보라고 한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었지?
근데 나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그게 너가 할 수 있는 나를 향한 최고의 원망이 아니었을까 싶어.
내가 하는 행동이 바보 같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꼭 그 의미만 있는 건 아닌 거 같았거든.
늘 너만 바라보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 했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내 모습도
그리고 무너진 내 모습을 너한테 보여주기 싫어했던 것도,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얘기하지 못하고 혼자 이겨내려 했던 것도,
모두 너한테는 바보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
항상 너는 고민이 있으면 말하면서 살라고, 남들은 너를 전혀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얘기해 줬는데,
정작 나는 모든 걸 부정하려 했으니까.
그렇게 잘 이겨내나 싶었다가도 더욱 다투는 횟수가 늘어났고,
우린 그렇게 헤어졌어.
엄청 긴 글이었는데, 다 읽어보긴 했어?
지금도 너한테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고도 얘기 못하는 바보일까?
나 이제 다 이겨냈다고,
누구보다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게 참 아쉬워.
우리 만날 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돌아보니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기 때문에 이제 와서 너가 많이 생각나나 봐.
너의 소중함을 그 당시에 느끼지 못해서 미안해.
나를 누구보다 사랑해 줬는데, 그 사랑에 답해주지 못해 미안해.
너의 모든 걸 내려놓고도 나 하나만 바라봐줬는데, 나는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끝까지 못난 바보였어서, 정말 미안해.
어디에서 잘 지내는지 찾아보기엔 내가 너한테 못해준 게 너무 많아서 그러지 못하겠다.
늘 누구보다 남을 행복하게 해 줄 너니까,
어디에서나 밝은 너니까,
잘 지내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