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35)

1. 몽골제국과 양자강

by van

궁중 암투


몽골군은 1241년 4월 독일 연합군과 헝가리 군을 잇달아 물리쳤다. 이제 다뉴브 강만 건너면 곧바로 서유럽이었다. 유럽은 4세기 훈족의 침입 이래 900년 만에 다시 극한의 공포를 경험했다. 서유럽은 동쪽에서 몰려드는 피난민들로 가득 찼다.


유럽은 폭풍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다. 온 유럽의 교회가 기도 소리로 넘쳐났다.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쓴 헤럴드 램은 “위기의 유럽을 구한 것은 동쪽에서 온 한 통의 편지였다. 대칸 우구데이의 사망소식이 담겨있었다”며 극적인 반전을 소개했다.


몽골 고원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새 칸 선출을 위한 선거가 공고됐다. 톨루이와 차가다이는 이미 지상에 없었다. 칭기즈칸의 아들들은 모두 죽었다. 이제 손자들의 차례였다. 두 명의 선두주자 바투와 뭉케는 본토와 멀리 떨어진 유럽 원정에 나가 있었다.


큰 인물의 탄생에는 반드시 천시(天時)와 지리(地理)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구데이의 장남 구육은 마침 본토에 있었다. 하지만 구육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그는 우구데이 칸의 여섯 번째 부인의 아들이었다. 정통성에서 다른 후보들에게 뒤졌다. 그런데 그에게는 천시와 지리의 도움이 있었다.


마침 구육의 어머니 투르게네가 섭정을 맡았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투르게네는 아들을 위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었다. 투르게네는 섭정이라는 지위를 최대한 이용했다. 반대파는 숙청하고, 지지자에겐 후한 상을 내렸다. 그런 노력 끝에 마침내 어머니는 소원을 이루었다. 1246년 7월 자신의 아들 구육이 대칸에 즉위했다.


구육 칸의 앞날은 밝지만 않았다. 우선 동유럽의 실력자 바투와 사이가 나빴다. 바투는 유럽 원정에서 서로 의기투합한 뭉케를 지지했다. 더구나 바투의 어머니와 뭉케의 어머니는 친 자매간이었다. 몽골은 특히 모계의 혈통을 중시했다.


바투를 편치 않게 여겨온 구육이 서방원정을 발표했다. 구육의 복잡한 심정이 담겨있었다. 몽골 조정은 술렁거렸다. 장거리 원정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와 예상 노획물이 있어야만 했다. 서방원정에선 큰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한편 바투는 구육의 서방 원정을 자신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했다. 구육의 원정 계획은 이모에 의해 바투에게 전해졌다. 이모란 뭉케의 어머니였다. 바투는 즉시 군대를 동진(東進)시켰다. 바야흐로 몽골군끼리 전투가 벌어질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다행히 실제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구육이 갑작스럽게 죽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구육의 왕비에게 섭정 기회가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야망만 컸지 시어머니 같은 정치력을 갖지 못했다. 대신 뭉케의 어머니가 막후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녀는 친정(케레이트)에서 왕실의 권력 다툼을 보고 자랐다.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멀리 있는 조카 바투 칸의 힘을 최대한 활용했다. 바투에게는 몽골 본토와 맞먹는 군사력이 있었다. 군사력은 곧 발언권을 의미했다. 바투는 텐산산맥 부근(오늘 날 카자흐스탄)에서 쿠릴타이를 소집했다.


정치적 감각이 떨어진 구육의 왕비는 때를 놓쳤다. 칭기즈칸의 노신(老臣)들이 앞 다투어 바투 주최 쿠릴타이에 참석했다. 노회한 그들은 권력의 향방에 민감했다. 쿠릴타이에서 뭉케가 대칸으로 선출됐다. 바투와 뭉케는 칭기즈칸의 고향에서 다시 한 번 쿠릴타이를 개최했다. 이번엔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였다.


구육의 왕비와 그 아들들은 뭉케에 의해 철저하게 숙청당했다. 뭉케는 훌륭한 군주의 자질을 보였다. 할아버지 칭기즈칸을 빼닮은 손자였다. 그는 동서양의 학문에 두루 능통했고 수개국어를 구사했다. 새 칸은 세계정복의 야망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대규모 군사작전을 계획했다. 둘째 동생인 쿠빌라이에게 남송 정벌을 맡겼다. 쿠빌라이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전까지 쿠빌라이의 행적은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깜짝 등장이었다.


셋째 훌라구에게는 중동을 일임했다. 뭉케의 ‘세계정복’ 야심은 착착 진행되었다. 그에겐 야심을 충족시킬만한 군사력과 지도력이 있었다. 지구의 동과 서를 하나의 띠로 연결하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대제국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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