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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세기 소년 Jan 29. 2021

#모두의 4차 산업혁명 : 오리엔테이션

미래 변화에 대한 담론


 세상은 이제 작은 변화에도 무수히 많은 분석과 진단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온다. 말 그대로 데이터 범람 시대다. 또 여기로 가라, 저기로 가라는 듯 저마다의 전문가, 전문 기관, 심지어 국가 간의 예측 시나리오도 제각각이다. 그런 와중에 나 역시 이전 저서에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라며 독자에게 협박에 가까운 메시지를 던지며 ‘그 다음은 알아서 하세요’라는 식의 공장 복제품 마냥 시중에 깔려있는 대부분의 책과 같이 구체적인 마일스톤 없이 끝을 맺었으니 얼마나 무책임하고 가당찮은 지식의 자화자찬이었을까. 심지어 지극히 평범한 내가 있어봤자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졌겠으며, 또 얼마나 깊은 통찰을 가졌겠는가 말이다. 백화점 마냥 열거식 지식의 나열은 데이터로 가치는 있겠지만 정보는 되지 못하리라. 읽고, 보는 사람이나 설명하는 사람이나 피곤하긴 매한가지다. 그래서 요즘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과학, 테크 관련 보도를 부러 좇지 않는 이유다.


 물론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도 급격히 진행 중이다. 올바르게 또 조속히 새 판에 대비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 후세대를 위해서도 응당 맞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또 어디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까를 묻는다면 지금으로서는 선뜻 대답하기가 조심스러워 진다.


 왜일까. 대한민국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 트렌드의 시작을 운 좋게 지켜본 사람으로서, 또 직간접적으로 미약하게나마 관여했던 관계자로서 지금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 한때는 조급했다. 어서 우리도 기술 발전의 과실을 함께 따먹고 국가 부흥과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더 좋아진 삶의 질을 꿈 꿔보길 바랬다. 그러나 뭔지 모를 순리처럼 집단지성은 때에 따라 우리 사회에 신묘한 제동을 걸어왔다.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 화폐에서 번진 블록체인에 대한 사회적 명과 암이 그랬고, 위치기반 카풀 서비스에서 빚어져 최근 ‘타다’ 사태까지, 새로운 모빌리티 사업자와 택시 조합과의 갈등이 또 그랬다. 학교와 학부모, 학생들은 정작 준비가 안됐는데 산업 활성화 논리에 치우쳐 에듀테크를 억지로 학교에 넣으려고도 했다. 의료 산업은 또 어땠나. 무작정 빨리 가는데 편승해 지금 안가면 ‘뭔지 모르지만’ 뒤쳐질 것 같다는 조급증만 함께 키운 꼴이다.


 이 과정에서 기술발전의 성과를 고스란히 국민 개개인의 삶에 전달하고 성급히 활용케 유도하는 것도 어찌 보면 지금으로서 전적으로 옳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신종 전염병 사태를 전 세계가 겪으면서 달라진 일상을 대체해 메워야 할 과학기술이 막상 ‘언박싱’을 해보니 수준 이하였거나, 검증이 덜 되어 사용할 수 없다거나, 사용자 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설계였다던가 하는 식의 민낯을 드러내놓고 고스란히 평가받는 중이다. 세상을 다 구할 것만 같았던 인공지능,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원격 의료 등등 막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기는 지금 어디 있단 말인가.


 답 없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쯤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러던 차 우연히 현재의 현상 매몰에서 벗어나 더 오래전의 시간, 시대적 연유와 논리를 다시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빅뱅으로 우주가 생기고 인류가 태어났다. 인류는 언어를 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도시를 만들었다. 지식을 저장하고 전파할 수 있게 되었고 도구와 물건을 만들었다. 일이란 개념을 만들고 국가와 정부, 회사, 심지어 종교란 개념도 만들었다. 사유재산이 생기고 거래가 생기고 문화를 만들었다. 인류는 더 편하고, 효율적인 방향을 추구해 왔다. 설사 그것이 가끔 파괴적 면모를 보였을지라도 인류는 전자의 방법을 택했다. 네 번에 걸친 산업혁명의 버전 모두 분명한 전조와 그만한 논리가 있었고, 필연적 아이러니가 있었다.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어버린 노동자의 그만한 불안과 억울함이 있었을 테고, 대량생산 체제를 통해 우수한 가성비로 등장한 당시 미국의 포드 자동차를 비웃던 페라리를 비롯한 유럽의 명품 자동차사도 그만한 우월 의식이 내재화된 동기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인도의 후추와 면직물이 유럽인들에게 막상 별로였다면 대항해시대가 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해상교역과 상공업 발전은 훨씬 덜 했을 것이고 제국주의는 없었을지도 모르고, 근대화의 주체도 달라져 오늘날 동양 중심의 세계로 변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렇듯 요소요소의 시대적 퍼즐을 맞춰가다 보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가 차츰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그때 시대가 내린 결론과 이유가 적어도 후대의 객관적 평가를 통해 뭔가 교훈을 가져다주고 지금도 역시 비슷하게 반복되는 복잡하고 다양한 갈등과 문제에 대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연유라면 다시금 세상에 내 이야기를 풀어볼 가치가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오래도록 미적거려온 집필을 다시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간 스스로 실험하고 체득한 흥미로운 사례와 기행도 현장 강의로는 시간이 부족해 어떻게 전달할지 방도를 찾고 있던 참이었고, 여러 기관의 다양한 분들과 만나며 교류하는 과정에 재구성된 새로운 이야깃거리도 충분하던 참이었다.


 이번엔 집필을 조금 색다르게 해보기로 했다. 내가 강의했던 그대로를 최대한 살리면서 현장에서 대화하는 형태로 내용을 전달하면 조금이라도 더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해서 문체부터 소위 ‘현장체’ 그대로 기술했다. 목적대로 읽힐지는 미지수지만 중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대한 풀어쓰려 노력했고 부러 강의 중 사용하는 슬라이드도 최대한 활용해 현실감을 더해보고자 노력했다. 따분한 역사적 기술을 재미있거나 의미 있는 사례로 치환해보고자 했고, 내가 직접 실험하고 겪은 좌충우돌 경험담을 토대로 독자들 또한 직접 접하고 느껴볼 수 있도록 신경 썼다.


 글이란 것은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말이 더욱 실감나는 요즘이다. 자기검열의 족쇄에 걸려 지지부진한 진도에 지치고 머릿속은 온갖 시대상이 섞여 뒤죽박죽될 무렵, 역치 값을 넘은 탄성체마냥 번민을 그만 덮고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모쪼록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함께 더 많이 이 세상의 변화와 문제 해결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그런 재료로 이 집필의 결과가 활용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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