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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세기 소년 Jan 29. 2021

#모두의 4차 산업혁명 : 1교시

거대사를 통괄하는 산업혁명 클래스

지병석

 제 수업에 참여해주신 여러분, 반가워요. 과거를 통해 오늘을 진단하고,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죠. 옛날에는 그게 힘들었어요. 더구나 잘 맞지도 않았고요. 심지어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시대도 있었고, 영원히 살기위해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왕도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죠. 인류가 만들어낸 또 수집하고 분석해낸 엄청난 양의 지식이 데이터라는 전기 신호로 기록되고 저장되고 또 공유되고 있어요. 그것뿐인가요, 이제 그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자동화시키고 더군다나 스스로 학습해 똑똑해지는 기계를 만들어 인간대신 활용하고 있어요. 인공지능이죠. 심지어 그 속도도 계속 빨라지고 실시간으로 주변 사물에 연결되기 시작했어요. 컴퓨팅 파워와 네트워크, 스마트 기기들의 발전 덕분이에요. 


 자, 이제 무기가 어느 정도 갖춰졌어요. 이제 세상을 과거보다 정확하게, 또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되었어요. 인공지능을 비롯해 관련 기술들이 아직 걸음마 단계겠지만 괜찮아요. 금세 걷기 시작할테고 또 뛰기 시작하게 되면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기회가 펼쳐질지 몰라요. 또 인공지능이 다른 기술과 융합되고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간다면 우린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을 마주하게 될런지도 알 수 없어요. 없었는데 무언가 생겨났고 그래서 변화하게 되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이번 시간에 풀어볼까 해요. 


  제 이야기는 사실 조금 방대한 주제를 다루고 또 다양한 시대를 오가게 될 거예요. 심지어 아예 처음, 그러니까 우주 빅뱅의 시작부터요. 지금 현상부터 이해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인류 역사를 넘어 존재의 기원부터 살펴보면 오늘날 세계가 왜 이렇게 설계되었는지, 인류는 무엇을 추구하는지, 앞으로는 어디로 갈지를 가늠하기 좋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굳이 처음부터 순서대로 각 맞춰 따라올 필요는 없어요. 중간 중간 관심 있는 시대나 이슈로 점프해도 좋아요.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다양한 이미지도 준비했어요. 자, 시작해 볼까요? 


#1. 우주 달력                           

                  

 ‘펑!!’ 우주에서 이런 소리가 났을런지 알 수 없지만 무(無)에서 유(有)가 시작되는 시점이에요. 거대한 폭발로부터 우주, 별, 생명의 모든 기원이 시작되었다지요. 그러나 이 신비로운 기원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아직 없습니다. 심지어 빅뱅(Big Bang) 현상이 여러 번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요. 그래서 단일한 우주(Universe)가 아닌 여러 개의 우주(Multiverse)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자, 첫 시작의 폭발이 몇 번이었든 제 이야기는 이 시점부터 시작하려고 해요. 옆 장의 그림은 우주 전체의 시간을 인간 세계의 1년으로 압축해 만들어 놓은 칼 세이건(Carl Sagan)의 ‘우주 달력(Cosmic Calendar)’입니다. 무려 138억 년 전의 빅뱅으로부터 1월 1일 00시 00분 01초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빅뱅이 시작된 후 38만년 후쯤 우리가 배웠던 주기율표의 1번 원자인 수소가 생겨나고 수소구름이 뭉쳐져 별이 되고 별의 중심에서는 핵융합이 시작되었지요. 그 결과 헬륨을 거쳐 리튬과 네온·규소·철 등이 만들어지며, 물질을 이루고 현재 우리 몸을 이루고도 있는 원소들(산소, 탄소, 수소, 질소 등) 또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칼 세이건의 우주달력 / ⓒ wikimedia commons]


 우주 달력의 5월경에는 은하가 생겨나고 9월에 와서는 드디어 우리의 태양계가 만들어지고 태양과 적절한 거리에서 대기를 갖춘 지구도 만들어 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5억 4,000만 년 전쯤이지요. 그 뒤 약 5억년 동안 지구는 용암이 들끓는 불덩어리였고 운석과 소행성으로부터 지속적인 폭격을 받는 등 마치 지옥 같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혼돈기의 와중에 지구의 화학적 환경이 생명체에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마침내 지구 최초의 유기체가 탄생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체코 과학아카데미(Academy of Sciences of the Czech Republic) 화학자인 스바토플루크 치비스가 이끄는 연구진은 다량의 운석들이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내부 행성에 쏟아져 충돌을 일으켰고, 이 충격으로 발생한 에너지가 지구에 존재하던 물질의 화학반응을 촉발해 생명의 기원 물질이 탄생했다는 ‘후기운석대충돌기(Late Heavy Bombardment)'라는 가설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기도 했지요. 


 지구 달력의 10월경에 이르면 지구에서는 식물의 광합성으로 산소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12월에는 다세포 생명체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육상 식물, 곤충들이 나타나고 비로소 파충류가 등장하며 한동안 지구의 주인이었던 공룡 시대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12월의 마지막, 31일이 다가왔습니다. 그간 어떤 연유(소행성 충돌로 인한 기후변화로 빙하기 도래가 유력한 학설)로 공룡은 멸종하게 되고 털을 가진 항온동물, 포유류가 다시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지요. 상당한 시간이 지난 이때는 비로소 원숭이 종에서 나무로 내려온 유인원이 분리되는 때이기도 했습니다. 유인원 중의 일부는 진화를 거듭한 끝에 두발로 서서 걷기 시작했는데 300~350만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를 발견하고 과학자들은 이들을 인류의 조상이라 지목하지요. 또 다른 가설로 몸과 머리가 작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일부가 진화를 거치며 호모속이 되었고 이들은 아프리카 바깥 다른 대륙으로 이동해왔다고 보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있습니다. 이처럼 인류 진화의 역사가 수없이 뒤바뀌고, 되풀이되는 것은 아직 정답이 없기 때문이니 이런 가설이 있다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되겠습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꼽은 인류의 대표적 특징인 큰 두뇌, 작은 치아, 직립보행, 도구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인류는 진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이 중에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불리는 영리한 인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존재해온 20만 년은 우주 달력에서 겨우 8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중 90% 이상은 우리가 무시해 왔던 농업문명 이전의 수렵채집시대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죠. 이 ‘달력’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앞의 조건이 없었으면 뒤의 일들도 없었다는 것, 뒤의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의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왔고,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고 그에 따라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죠.


 자, 이제 12월 31일 11시 59분. 마지막 1분이 남았습니다. 마지막 빙하기를 견뎌낸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지능화되기 시작합니다. 어수룩하지만 언어를 만들어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인지혁명은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는 다음 챕터에서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인류는 또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식량을 찾아 떠돌아다니지 않게 되며 정착을 하게 되고 이른바, 문명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우주 달력 1년의 마지막 1.2초 전(1,492년)이었습니다. 인간이 10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우주 달력으로는 눈 깜빡할 시간, 0.23초에 불과한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1초도 안 되는 시간(약 300여 년 정도)에 소위 과학기술 혁명이 모두 일어났고 현재 그 네 번째 버전까지 겪고 있거나 혹은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거대한 우주의 역사 앞에서 인간의 한 평생이 참 부질없게 느껴집니다. 특히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점(A Pale Blue Dot)’을 보면 더 격하게 공감하게 될 거예요. 그러나 인류는 짧은 생명 지속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지요. 지난 역사에서 그 성과는 미미하고 또 보잘 것 없이 보이겠지만,  지금 인류는 보이지 않는 것을 제어하고, 새로운 세계를 계속 만들어내며 놀라운 경험을 쌓고 있죠. 전기로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컴퓨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만들고 처리하며 또 인공지능은 무섭게 학습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의료 기술과 생명 과학 역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인류의 수명 연장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자, 이 놀랍도록 급격한 과학기술 발전으로 말미암은 사회현상 변화의 시대를 우린 산업혁명이란 말로 표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보면 산업혁명 훨씬 이전에도 놀라운 발전과 진보는 늘 있어왔답니다. 


#2. 사피엔스       

                                      

 이제 우주 달력의 12월 31일 마지막 하루를 살펴봅시다.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해 직립 보행을 했을 것으로 알려진 선행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500만 년 전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학자들은 이후 호모 하빌리스(손쓴 사람) - 호모 에렉투스(곧선 사람 : 대표적으로 베이징 원인) - 호모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사람 : 대표적으로 –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대표적으로 크로마뇽인이 있음)}이 갈라져 나오게 됨으로서 현재의 인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류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진화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니라, 한 종에서 다양한 종으로 나뉘고, 서로 경쟁 끝에 남은 종(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주목할 것은 20만 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보이는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이라고 불리는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현생 인류 진화의 마지막을 장식할 만큼 여러 가지 면에서 뛰어난 영리함을 보여줍니다. 중기 구석기 시대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도구를 잘 다룰 줄 알았는데요, 이전까지 돌을 깨뜨려 도구로 사용했던 뗀석기류에서 돌칼, 돌도끼 등 간석기로 다듬는 '가공'을 시작하며 신석기 시대를 열게 됩니다. 또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상호간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데요. 이는 야수와 자연의 위험에 대해 알릴 수 있었고, 또한 부족을 통치할 수 있었지요. 그만큼 결속을 강하게 엮는 수단으로 언어만큼 커다란 힘을 발휘한 수단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의 혁명적인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만큼 이를 인류의 첫 번째 혁명, ‘인지혁명’ 또는 ‘언어혁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저서 ‘사피엔스(Sapiens)’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시켰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지혁명을 거치며 호모 사피엔스가 다수의 타인들과 함께 융통성 있게 협업할 수 있었기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또한 이렇게 협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언어를 통해 비로소 창조된 신, 국가, 화폐, 인권 등과 같이 인류의 상상 속에 순수하게 내재된 가치와 존재를 굳건히 믿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인지혁명의 최고 정점은 단순한 정보 전달, 의사 표현 외에 가상의 것을 생각해낼 줄 아는 능력이었죠. 즉 신화나 전설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통해 더 많은 수의 질서 있는 집단생활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인간 종과 호모 사피엔스가 1 대 1로 붙었다면 졌을지도 모르지만 집단 대 집단으로 붙으면 상대가 안 되었던 것이죠. 실제로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이 신체적으로 훨씬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멸종당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도 굳건히 결속해 있는 이 체제와 시스템, 즉 국가나 정부, 회사와 종교, 심지어 저작권, 특허권 같은 무형의 권리 같은 것들은 모두 인간 스스로 만들어 실체화시켜 낸 가상의 개념인 것이죠. 


 여기에 과학적인 근거도 있는데요, 일본 나오미치 오기하라 게이오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네안데르탈인과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뇌 구조를 비교한 결과, 호모 사피엔스의 소뇌가 8배가량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해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ce report)’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소뇌는 언어 능력이나 집중력 등과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죠. 소뇌가 클수록 언어 처리 능력, 집중력, 자신의 상황에 맞게 지식을 재구성할 수 있는 인지유연성 등이 뛰어남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왼쪽은 호모 사피엔스, 오른쪽은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모형이다. 뇌 용량은 네안데르탈인이 조금 더 크지만, 소뇌는 호모 사피엔스가 8배가량 더 크다. ⓒ Wikipedia Comm


 오기하라 교수는 “소뇌의 해부학적인 차이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사회적 능력에 중요한 차이를 가져왔다”고 말했는데 이는 뇌 구조의 차이가 네안데르탈인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까지 생존해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3. 인지혁명에서 농업혁명으로                                             


[구석기 시대 생활 모습 / 경기도 박물관에서]

 구석기 시대에는 채집과 수렵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한 지역의 열매를 모두 먹었거나 사냥을 마쳤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식량을 찾아다니던 시기였지요. 그러나 구석기 시대의 이런 채집과 수렵 문화는 신석기 시대로 접어들며 직접 식량을 생산하게 되는 인류 역사상 또 하나의 전기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러한 전환을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진화한 영리한 호모 사피엔스는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가축을 길들여 키우면서 농사로 경작되지 않는 식량을 조달하거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식량의 총량이 늘어났고 삶의 방식도 이전과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수렵채집을 하며 떠돌던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을 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바로 인류사의 두 번째 커다란 변화, ‘농업혁명’이라고 부르게 되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농업 문명의 불편한 진실을 기술한 ‘판도라의 씨앗(Pandora’s seed)’의 저자 스펜서 웰스(Spencer Wells)는 이 순간을 “전 시대의 수렵 채집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을 불가능하도록 만든 비가역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 5만년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큰 혁명”이라고 말했습니다. 


 농업 혁명이 다가온 인류는 비옥한 토지에 경쟁적으로 자리 잡고 식량을 보관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들이 만들어집니다. 또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은 체제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죠.


[신석기 시대 생활 모습 / 경기도 박물관에서]

 잉여생산물이 축적되면서 사회적 분업이 발전되기 시작합니다. 부족이 확대되며 씨족과 종족의 발전 등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초래하며 복잡한 사회 체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놀라운 농업 혁명을 비관적인 순간의 탄생이기도 하지요. 농업의 발명이 야생 동물의 가축화, 도시와 계급의 탄생, 불평등, 변질된 종교 원리, 환경 오염, 비만·당뇨 같은 질병, 불안·우울 등 정신질환, 군대와 전쟁의 진화 등 현대 사회까지 이어져 오는 인류의 비극적 요소들의 기원이 된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류의 거대한 진보로 배워왔던 이 순간을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를 통해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History’s Biggest Fraud)'라는 다소 충격적인 견해를 밝힙니다. 농업혁명으로 인류는 몇 개의 덫에 걸려들었다고 분석하는데요, 먼저 사치라는 덫에 스스로 걸려들었다고 합니다. 위험하고 가혹한 수렵채집인의 삶을 포기한 농업인은 보다 안락한 미래를 기대했지만 그것은 농업인이 소망한 사치일 뿐이었다는 것이죠. 아래 벽화를 보면 채찍질 하는 농부의 등은 우연일지 모르지만 심하게 굽어 있죠. 그들이 꿈꾼 사치는 대규모 공동체의 출현과 함께 탄생한 지배자의 차지가 되어버렸다고 해석합니다. 기실 농부는 수렵채집인 보다 고달픈 생활에 시달렸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약 3,200년 전 벽화, 땅을 경작하는 농부를 묘사하고 있다. / ⓒ wikimedia commons]

 둘째, 호모 사피엔스는 야생의 밀을 작물화하면서, 빵을 먹거리로 만들고 자신에 이익에 맞도록 가공하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었는데 이로 인해 작물화라는 야생 식물의 덫에도 빨려들었다고 분석합니다. 경작지가 늘어나면서 농부는 하루 종일 더 많은 밀을 위해 잡초를 뽑고, 제때에 물을 길러다 바쳐야 했다고 합니다. 작물화 된 밀은 성질이 고약하여 온갖 영양소를 안겨주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하죠. 농부는 밀밭 옆에 주거를 마련하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힘든 자세로 밀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이로써 이들의 삶은 영구히 바뀌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셋째, 양, 소, 돼지와 같은 동물의 입장에서 헤아려본 농업혁명은 실로 재앙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야생의 동물을 끌어와 마음에 들도록 거세 등으로 그들의 야성을 조작했다고 합니다. 쟁기질하는 일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가 지닌 본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것이 하라리가 본 농업혁명의 가려진 실상입니다. 왕과 귀족의 입장에서 본 농업혁명은 거대한 힘을 안겨주었지만 대부분의 농민, 가축화된 동물, 작물화 된 밀 등 개별 종의 관점에서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고통이었다고 합니다. 작물이 인간을 가축화한 것이지, 인간이 작물을 가축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흥미로운 다른 시각도 존재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농부의 심리를 헤아리며 동물과 식물의 입장에서 농업혁명을 통찰했다면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저서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서 유럽 사람들의 발전 속도가 달랐던 것은, 인종적⸱민족적 차이가 아니라 대륙마다 차이가 나는 환경에 기인한다는 생물지리학적 관점을 전개합니다. 토양과 기후가 적당한 대륙과 지역에는 인간이 작물화, 또는 가축화에 용이한 야생 동·식물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죠.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Why the West rules for now)’를 쓴 이언 모리스(Ian Morris)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에 있던 서양의 우연한 운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작물화·가축화에 따라, 식량생산이 수렵채집이었을 때보다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도 증대하게 되는데요, 이는 한편으로 식량생산에 전념하지 않는 군인, 사제, 엘리트 등 지배계층을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계급과 중앙집권적 정치조직의 출현 등으로 기록 가능한 문자가 생겨났고. 이윽고 제국이 생기고 대형 건축물 건설 등을 위한 다양한 기술과 철기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관점으로 농업혁명을 바라보고 있답니다.


#지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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