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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채환 Aug 28. 2024

[유한계급론] 1/4

함께 책 읽기 ⑬  - 소스타인 베블런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 읽게 된 계기

 "소스타인 베블런이 1899년 출간한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상류층 사람들이 자신을 과시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치를 일삼는 태도를 과시적 소비라고 불렀습니다." [열두 발자국](정재승)을 읽다가 이런 내용을 만났는데, 꼭 상류층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다닐 때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며, 왠지 인자하고 후배들에게 신망받는 사람이라기보다, 어딘가 '만만치 않은', '악착같은', '가차 없이 쥐어짜는' 등의 단어가 좀 더 어울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칼럼도 있었다.

 "... 아름답더라도 비싸지 않은 물건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본래의 가치 이상으로 비싸서 우월한 만족감을 주기만 한다면, 그 상품을 팔기 위해 명품 회사가 무슨 짓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디오르는 여러 차례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광고로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비싼 것을 높이 여기고 싼 것을 경멸하는 사고가 너무나 철저히 각인된 탓인지 ... 이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9969.html, 칼럼 <권력의 과시적 소비>

 이런 심리, 풍조, 현상 등은 왜 그런지 궁금했었는데 역사적 배경도 알게 되고 깊고 넓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 감상 및 추천

▶무엇을, 왜 과시하려고 하는 걸까?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신의 계급을 드러내려 애쓰는 걸까요? ... 과학자 중에서 진화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이 왜 그토록 자신의 계급을 드러내려 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 '나는 이렇게 ...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고, 이런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릴 만큼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형질이 우수해서, 이런 나와 짝짓기를 하면 우리 자식들도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받고 더 풍족한 환경에서 양육될 것이라는 신호를 소비라는 형태로 남들에게 전파한다.'는 겁니다."


 "럭셔리 마케팅이란 잠재적 구매자뿐 아니라 나머지 99%의 구경꾼도 꿈꾸게 만드는 일이라는 거죠. 그래야 1%가 비싼 대가를 지불할 이유가 생기니까요. 이 차를 구매했다는 사실이 구매자의 능력을 보여주고 생존(자연선택)과 짝짓기(성선택)에 유리하도록 해주어야 더 많이 팔리겠죠."

                                                                                                             - [열두 발자국], 정재승 -


▶남과 비교하는 삶

 "과시적 소비와 관련하여, 농촌 인구보다는 도시의 인구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지출하며, 또 도시일수록 그런 지출의 압력이 강하다. 그 결과, 그럴듯한 외양을 유지하기 위하여 도시 주민들은 농촌 주민에 비하여 그달 벌어 그달 먹는 생활을 하고 있다."


 "구경꾼이 없는 곳에서 즐긴 여가에 대하여 증거를 제시하는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은 비록 간접적이지만 어떤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결과물을 내놓음으로써 해결된다."


 "이렇게 하여 사회의 모든 계층(심지어 극빈층을 포함하여)이 통상적인 과시적 소비를 생략하지 못한다. 아주 지독한 궁핍함이 압박하여 오지 않는 한, 이런 부류의 소비 제품은 결코 포기되지 않는다."


 "각 계급은 차상위 계급을 부러워하고 또 모방하려 한다. ... 반면에 각 계급은 차 하위 계급이나 아주 앞서 있는 상위 계급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는 일은 거의 없다"

                                                                                                                         - [유한계급론] -


▶부자(로 보이)면

 "... 신호등이 바뀌었는데도 앞차가 출발하지 않을 때, 뒤차가 얼마 만에 경적을 울리는지 실험해 봤습니다. 먼저, 1억 4천만 원짜리 외제차가 앞에 선 경우, 평균 9.49 초가 지난 뒤에야 뒤차가 경적을 울렸습니다. 반면 1천300만 원짜리 소형차 경우엔 외제차의 절반 가량인 평균 5.2초 만에 경적이 울렸습니다. ..."

                                          - <SBS 8시 뉴스>, '경차에겐 '빵빵', 외제차엔 '조용'…도로위 차별', 2015/11/3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49076


 "범죄행위로 큰 재산을 획득한 도둑이나 사기꾼은 좀도둑에 비해 법의 엄정한 형벌을 모면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의 재산이 늘어났다는 사실과, 그가 부정하게 획득한 재산을 그럴듯한 방식으로 소비했다는 것 때문에 그런 좋은 명성이 생겨난 것이다."


 "어떤 개인에게 자존심을 부여해 주는 기반은 그의 이웃들이 부여해 주는 존경심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으로 일탈적인 기질을 가진 개인만이 동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다. 

                                                                                                                         - [유한계급론] -


▶난 어떻게 보일까?

 '싼티난다', '빈티난다' vs '고급지다', '있어 보인다'. 두루 많이 쓰는 말들이다.

 본인은 진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짝퉁을 들고, 입고, 걸친다.

 외출 전에 옷을 입고, 시계를 차고, 허리띠를 매고 거울을 본다. 뭘 더 살피는 걸까?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과 '빈티나 보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두려운 일일까?


 주행거리 22만 km에 달하는 중소형?소형? SUV를 타고 있다. 짐짓 혼잣말을 가장해 가족들이 들으라고 "아하.. 이거 주행거리가 많이 돼서 차를 바꿔야 할 것 같은데.."라고 무심한 척 말을 한다. 내 속을 귀신같이 꿰뚫어 보는 딸아이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주행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는다. 없다. 정비소에서도 더 운행해도 문제없단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고급 차, 외제 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에 온통 그런 차들 뿐인 것 같다. 나도 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왜 타고 싶은 걸까? 그 차의 효용 때문일까, 그저 나도 저들처럼 번듯한 차를 타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우리는 본질적으로 금전적 차이에 불과한 것을 미학적 혹은 정신적 차이라고 종종 해석한다."

                                                                                                                         - [유한계급론] -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 소득에 관계없이 시민들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무료콘서트를 여는데 누군가는 돈을 주고 대신 줄 서서 표를 받아 주는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 공공건물/학교 건물에 돈을 낸 기업의 이름을 집어넣는 경우 등 다양한 '돈으로 대신하는 경우'에 의해 훼손되는, 저자의 표현으로는 '타락하는' 가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항공기와 야구장의 좌석은, '과시적 소비' 욕구 충족과 자본주의 이익창출을 위해 제한된 재화를 불균등하게 차별적 가격으로 제공되도록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 [유한계급론]이 이러한 소비를 하는 '심리'를 위주로 다루었다면, 이 책은 그런 소비 행위 등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를 건전하게 유지시키는 '공공의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루었다고 볼 수 있겠다.


▶ [인생샷 뒤의 여자들] - 제정임, 곽영신

 : 왜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사진을 (꽤 많이)찍고, 고르고, 보정할까 궁금했었다. 그런 행동의 역사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라 매우 길다는 사실. 현실의 나 vs 가상공간 속 또 다른 나의 자아, 보는 나 vs 

보여지는 나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을 여성학적 관점에서 다루었다.

 [페미니즘의 도전]과 함께 읽고 '여성학적' 관점으로 한번 바라보고, [유한계급론]을 참고해서 '과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후 서로 비교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섹스의 진화] - 제레드 다이아몬드

 : 성선택 확률을 높이기 위한 외형의 과시, 행동의 과시 등에서 공통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 [하윤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 6.기타, ◆보여주기 - 정채환

 : 여기에서 다룬 내용도 결국 그 '경쟁적 / 과시적' 속성에 대한 얘기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 주요 문장 (요약 또는 마음에 드는 문장)

제1장 서장

 유한계급(有閑階級,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산으로 소비만 하는 계층)이라는 제도는 야만적 문화의 후기 단계에 이르러 가장 잘 발달이 되었다. 예를 들어, 중세 유럽이나 일본이 좋은 사례이다. ... 상류 계급은 관례에 의하여 생산 업무로부터 면제되거나 제외되며, 그 대신에 상당한 명예가 따르는 일을 하게 된다. 

 

 상류 계급의 직업은 대체로 말해서 통치(정부 관리), 전쟁(전사), 종교적 예배(사제), 스포츠(사냥) 등이었다.


 육체노동, 생산직, 생계를 위한 일상생활 중의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일 등은 전적으로 하층 계급이 담당하는 것이었다. 이 하층 계급은 노예, 하인, 그리고 모든 여성을 포함했다.


 지속적인 형태의 유한계급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1]그 공동체는 약탈적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약탈적 행위는 전쟁, 커다란 짐승의 사냥 혹은 두 가지 모두를 가리킨다.

 [2]생필품 획득이 비교적 용이해져서 그 공동체의 상당수 구성원들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노동으로부터 면제될 정도가 되어야 한다. 


 가치 있는 일은 약탈로 분류될 수 있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반면에 가치 없는 일은 높이 평가되는 약탈의 요소가 전혀 없는 일상적인 일을 가리켰다.


 노동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 들어간 에너지를 가리키는데, 그 제작자가 수동적인 "비활성 물질"로부터 뭔가를 만들어서 그 물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반면에 약탈은 그 행위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이며, 을이라는 행위자가 전에 다른 목적으로 쏟아부었던 에너지를 갑(약탈자)의 목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전리품, 사냥과 습격의 기념품 등은 뛰어난 힘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로 높이 평가되었다. 공격성은 널리 인정받는 것이 되었고 전리품은 성공적 공격 행위를 보여주는 객관적 증거물이 되었다. 


 약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얻은 물품은 전성기의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졌다. 생산적인 일 혹은 어떤 개인에게 봉사하는 일 등은 같은 이유로 인해 혐오의 대상이었다.


 원시 야만인들의 사회에서 "명예로운"이라는 개념은 우월적인 힘의 과시를 의미했다. ... 왕가나 귀족가문의 문장에 사나운 맹수나 맹금을 즐겨 그려 넣은 것은 이런 공격성 주장을 뒷받침한다. 


 생산 방법이 잘 발달되어 잉여물(이것이 전투의 목표가 된다)이 생겨나고 또 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생산물이 생겨날 때, 비로소 약탈은 어떤 집단 혹은 계급의 습관적/관습적 획득 수단이 된다. 


제2장 금전적 경쟁

 문화 발전의 여러 단계에서 유한계급의 출현은 시기적으로 소유권의 시작과 일치한다.


 유한계급과 노동 계급의 초창기적 구분 형태는 낮은 단계의 야만 사회에서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을 구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유권의 가장 이른 형태는 공동체의 유능한 남자들이 여자를 소유한 것이다.


 적들로부터 그들의 여자를 강제로 트로피 삼아 강탈해 온 습관은 소유-결혼의 형태를 만들어 냈고, 그 결과 남자를 우두머리로 하는 가정이 생겨났다.


 두 제도(유한계급과 소유권)는 유능한 남자가 자신의 약탈 결과를 대중 앞에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용맹성을 널리 과시하고 싶은 욕망에서 생겨났다.  ... 일단 여자를 소유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 여자가 노동하여 만들어 낸 물품에 대하여 소유권이 확대되고, 그리하여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에 대해서도 소유권이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소유권의 뿌리에 놓여있는 동기는 곧 경쟁의 동기이다. 이 경쟁 동기는 소유권 제도를 더욱 발전시킬 뿐만 아니라, 소유권과 관련되는 사회 구조의 주된 특징을 발전시키는 힘이다. 부의 소유는 명예를 가져오는데 이것이 부의 소유자에게 남들과 구분되는 지위를 안겨준다.


 생계유지와 신체적 안락의 증진은, 주로 육체노동을 하거나, 생계가 불안정한 수준에 있거나, 소유한 것도 적고 축적한 것도 적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재화 획득의 주요 동기이다. 


 재산은 성공적인 약탈의 기념물인 전리품의 형태로 출발했다.


 공동체의 일상생활과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산업 활동이 서서히 약탈 활동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축적된 재산이 약탈의 전리품을 대신하게 되었고, 또 능력과 성공을 알려주는 관습적 표시로 인식되었다. 


 본인의 노력에 의하여 공격적으로 획득한 것이든 상속에 의하여 수동적으로 얻은 것이든 재화의 소유는 명성의 일반적 근거로 정착된다.  


 어떤 개인에게 자존심을 부여해 주는 기반은 그의 이웃들이 부여해 주는 존경심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으로 일탈적인 기질을 가진 개인만이 동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다. 


 재산의 소유가 대중적 존경심의 바탕이 되자마자, 그것(재산)은 우리가 자존심이라고 부르는 심리상태의 필수조건이 되었다. 재산을 각자 소유하는 공동체에서, 개인은 자신의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그 자신이 속한 계급의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상당한 재화를 소유해야 한다. 

 

 이러한 부의 차별적 구분은, 어떤 개인의 금전적 명성과 관련하여 경쟁자들보다 훨씬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느긋하게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개인은 늘 불편한 마음으로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심리에 시달리게 된다.


 설사 어떤 사회의 부가 아무리 폭넓게 동등하고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고 또 그 사회의 부가 전반적으로 증가한다 할지라도, 개인의 이런 금전적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욕망의 근본적이 바탕은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업적을 좋아하고 실적 없는 무익함을 싫어하는 경향은 가장 결정적인 경제적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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