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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지부지 Jun 02. 2021

[시즌1] 우주인 호호의 두 번째 시간♡

2021년 우주인 4호

우쥬(Would-you) 질문은 자유로운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인터뷰보다 대화에 가깝습니다. "혹시, 이 질문에 답변해 주실 수 있나요…?"


우쥬 질문



몇 년 전 회사를 그만두셨을 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셨다고요. 어떤 걸 시도하셨어요?


처음에 시도한 게 목공이에요. 당시에 이사할 계획이 있어서, 기존의 가구를 못쓸 것 같으니 직접 만들어 보려고 목공을 시작했어요. 나무로 뭔가를 만드는 게 좋아 보이기도 했고요. 잘 맞으면 전문적으로 해볼 생각도 있었는데, 살짝 고민하다가 접었어요.


왜 접으셨어요?


제가 3D 작업이 안 되더라고요. 가구는 평면이 아니라 입체잖아요. 선생님이 도면을 보고 설명해줘도 가구의 모습이 상상이 잘 안 됐어요. 게다가 수학도 해야 해요. 목재의 여분을 생각해서 수치가 바로바로 나와야 하는데, 저는 계산기를 사용해도 계속 틀려요. 그래서 접었죠. 그다음에는 아코디언을 배웠어요. 이건 이상한 할머니가 되기 위한 저만의 회심작이죠.


아코디언이요?! 이상한 할머니랑 잘 어울려요! 그런데 어쩌다 배우기 시작했어요? 상상도 못 해 본 악기예요.


아코디언, 멋있잖아요. 사실은 지인 중에 이상한 할머니의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신기한 언니가 있어요. 그 언니와는 직장에서 만났는데, 자기는 회사 생활 못 할 것 같다고 때려치우더니 아코디언을 배웠어요. 언니가 3년 정도 배우고는 전문 연주자는 아니더라도 이걸 평생 연주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개인 작업실을 구해서 아코디언 수업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언니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아코디언을 배우겠다고 한 거예요. 1주일에 한 번씩, 1년 정도 배웠어요. 그런데 뭐든 잘하려면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데, 매일 30분씩 연습하는 것도 잘 안 되더라고요. 당연히 실력이 안 늘고 맨날 그 자리라서 돈을 버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코디언을 샀어요.


네?! 이야기 흐름이 그게 아니었는데요? (당황)


그렇게 안 하면 조금 배우다 말 것 같아서요. 악기를 사면 집에서도 연습할 수 있고요. 그런데 가지고 있어도 연습하는 건 다른 문제더라고요. 그래서 1년 정도 배우고 그만뒀어요. 그래도 그때 샀던 아코디언은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그렇군요. 아는 언니를 응원하기 위해 배웠다고는 해도, 특별한 악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 아코디언을 선택하신 건가요?


아코디언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제가 스페인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스페인에 가서 플라멩코 공연을 봤을 때의 감동도 오래 남아 있고요. 그래서 아코디언 소리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사실 아코디언은 지금 회사 생활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예요. 아코디언 레슨비를 모아 두는 거죠. 연습을 꾸준히 병행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아코디언도 안 팔았어요.


언젠가 아코디언 연주하는 걸 보고 싶어요! 그런 다음 회사 생활을 다시 시작하신 건가요?


아뇨. 대학원을 다녔어요. 정말 이것저것 많이 했죠? 


네. 저희는 지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목공을 하시다가 아코디언을 배우고 대학원도 다니고 테니스도 하신 건가요?


그렇죠. 회사를 그만두고 자아를 찾으려고 이것저것 시도한 거죠. 대학원에 가게 된 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채록단의 멘토링 역할을 한 게 계기가 됐어요.


채록단이라는 건 구술 생애사 같은 건가요?


맞아요. 어르신들을 인터뷰해서 마을 관련 이야기들을 모아 책을 만드는 일을 했어요. 1년 정도 하니 아카이빙에 관심이 생겨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정보문헌학과 대학원에 들어가서 한 학기 정도 공부했어요. 여길 졸업하면 자격증이 나와서 도서관 사서나 기록관리사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티오가 많이 나지 않고, 제가 나이도 있으니 들어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럼 필드에서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해 남기며 연구원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사실 이건 생업으로 삼기에 힘들 것 같았어요. 이런 현실을 알게 되자 학비를 투자하면서 계속 공부를 하는 게 이후에 업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또 제가 연구자로서 헌신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어요. 그러던 차에 아는 동료에게 제안을 받아 원래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40대 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출판계로 돌아온 셈이죠. 지금은 대학원을 그만둔 상태예요.


아쉽지 않으세요?


안 해봤으면 아쉬웠을 텐데, 조금이라도 경험을 해봤더니 미련이 없어졌어요. 오히려 계속했으면 후회했을 거예요. 특히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가 되니까, 아이에게 들일 학비를 제가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호호님이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저희가 호호님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맞아요! 혹시 다시 출판계로 돌아오시면서 직업적인 고민은 없으셨나요? 요새는 편집자이자 작가인 사람도 많잖아요. 자기 글에 대한 욕심은 없으신지 궁금해요.


라떼는 말이야~(웃음) 글 쓰는 사람은 문인이었어요. 편집자는 계속 그 일을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둘 중 하나였고요. 그런데 요새는 글 쓰는 사람이 많아졌죠. 누구나 책을 내는 시대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있긴 해요. 제가 글을 보는 기준이 높아서, 제 글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점점 바뀌고는 있어요. 제 경험을 글로 남기는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이 내주지 않더라도 제가 낼 수도 있고, 사업이 아니라 독립출판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요. 언젠가 제 글을 쓸 수는 있겠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인생에서 나오는 농익은 글도 있으니,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와! 호호님의 글,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사실 제 고민이 뭐였냐면 요즘… 잠깐 제가 지금 고민이라고 했나요?!


네,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웃음)


이럴 것 같아서 인터뷰 오기 전에 이번에는 절대로 저희 고민 얘기 안 하고 호호님 얘기만 듣기로 다짐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네요.


괜찮아요. 그래서 고민이 뭐예요? 얘기해 주세요.


요즘은 발산하는 시대잖아요. 결과물만 내보이는 게 아니라, 계획부터 과정까지 그리고 자기가 하는 소소한 일이라도 모두 발산하죠. 그래서 그러지 않는 제가 뒤쳐지는 느낌이 나서 불안할 때가 있어요.


그쵸, 표현하는 시대다 보니까 그렇게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뭐든지 무르익어야 한다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발산해야 한다는 강박,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나오는 글은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보니까 피로감이 느껴져서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것 같아요. 남들은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있고요.


글에 대한 무게감이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건 맞아요. 그래도 강박 때문에 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주변의 친구들을 봐도, 자신의 것을 쌓아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게 밖으로 분출이 되더라고요. 먼저 양을 쌓는 것도 방법이라고 봐요. 지금처럼 차근차근 자신의 것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네, 고맙습니다. 조바심 내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질문 뽑기 타임☆



[살아 보고 싶은 나라나 도시는?]


재밌는 질문이네요. 전 스페인에서 살아 보고 싶어요.


설마 플라멩코 때문인가요?


하하, 그런 이유도 있어요. 앞으로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인에서 플라멩코를 배워보고 싶기도 해요. 또 살고 싶은 곳이라면, 새로운 도시를 가기보다 가봤던 도시에 다시 가고 싶어서요. 예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 여행을 했거든요. 그때 꽤 오래 여행을 했어서 다시 가서 볼 게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정말 좋았어요.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날씨도 좋고 볼 것도 많고요. 그런데 관광객들한테 위험하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여행에서 별일은 없으셨어요?


딸이 구엘공원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어요. 그래서 딸은 스페인을 싫어해요.


어쩌다가 소매치기를 당했어요?!


본인이 넋 놓고 다녔어요 (웃음) 제 생각엔 선물가게에서 기념품 구경하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 같아요. 그때 딸이 크로스백을 뒤로 메고 있었으니, 소매치기 당하기 좋았죠. 스페인에서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을 못해서 방심한 것도 있어요. 로마에서는 미리 얘기를 많이 들어서 소매치기 당하지 않도록 주의했거든요.


따님에게는 스페인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겠어요. 스페인에 다녀온 사람들은 다들 정말 좋다고 말하던데, 스페인에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요?


스페인은 날씨가 좋아서 여행하기 좋죠. 오렌지나 무화과 등 과일도 당도가 높아서 정말 맛있고요.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들이 여행하기 좋은 곳, 아름다운 곳으로 캐나다나 스위스 같은 나라를 꼽잖아요. 캐나다나 스위스는 이상적으로 날씨가 좋고 자연도 아름다워요. 특히 스위스는 풍경이 그림 같고 너무 정갈해요. 그래서 저는 도리어 그 풍경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스스로 이방인 같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그런데 스페인은 그렇지 않거든요. 여러 가지 문화와 분위기가 공존하고 있어요. 오래된 유적을 가면 아직도 집시들이 나올 것 같고요. 저는 그런 분위기가 정갈한 도시보다 더 좋았어요. 게다가 제가 스페인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여행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동경하는 마음이요?


네. 우리 가족이 차를 렌트해서 캠핑장에 텐트를 쳐서 먹고 자며 유럽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요.


유럽에서 캠핑을 하신 거예요? 멋있어요!


돈이 없어서 이렇게 다닌 거예요. 그때 한 달 정도 다녔는데, 동선을 짜다 보니 아쉽게도 스페인을 못 갔어요. 그게 굉장히 아쉬워서 스페인에 미련이 남아 있었죠. 그러다 몇 년 만에 스페인 여행을 가게 된 거라,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기대했던 것만큼 좋으셨나 봐요! 얘기를 들어보니 여행을 많이 다니신 것 같아요.


20대에 다른 친구들처럼 어학연수 같은 것도 안 갔고 여행 다녀본 경험이 없어서 뭔가 허기진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30대에는 돈이 모이는 족족 여행을 다녔어요. 그래서 지금은 여행에 미련이 없는 상태예요. 흐지님과 부지님은 한창 여행을 다닐 때인데, 시국이 이래서 아쉽겠네요.


맞아요. 3년에서 5년 정도는 해외여행이 힘들겠죠? 저희도 너무 아쉬워요.



[물건을 잘 버리는 타입이신가요?]


아뇨, 잘 못 버려요.


저도요! 와, 비슷한 사람 오랜만에 만나요!


그래요? 요새는 그런 사람이 많이 없나요? 흐지님이랑 제가 비슷한 점이 많네요.


요새는 미니멀리즘이 유행해서 예전보다 더 잘 버리는 사람이 많아진 게 아닐까 싶어요.


잘 못 버린다고 했지만 사실 얼마 전에 죽 그릇 모아둔 거를 다 버렸어요. 죽 포장해 와서 먹고 나면 그릇이 남잖아요. 그걸 씻어서 모아뒀는데 남편이 발견한 거죠. 뭐라 해서 버리고 말았어요. 그거 말고 빵 끈도 모아놓고, 선물 리본도 말아서 모아놔요.


예? 빵 끈을 왜 모아놔요?


부지님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저는 이해해요. 저도 선물 리본을 모아놓은 박스가 있어요. 저는 최근에 타협한 게, 빵 끈은 버리기로 했어요. 물론 고민하고 버려요. 일단 하루 정도는 뒀다가 다음날 버리는 걸로 저 자신과 합의를 봤어요.


흐지님도요?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빵 끈이나 선물 리본을 모아두면 쓰긴 쓰나요?


그럼요. 따로 포장 없이 선물에 리본만 묶어도 분위기가 확 살거든요. 저는 아이패드 박스 같은 것도 다 모아둬요.


저도요! 노트북, 태블릿 박스 다 가지고 있어요!


두 분에 비해 저는 진짜 잘 버리는 사람이었네요. 저도 예전에 모아 두고 그랬는데, 이사할 때 결국 버려야 되더라고요. 그걸 깨닫고 나서는 더 잘 버리게 됐어요.


맞아요. 이사하면서 한 번씩 짐을 정리하는 거죠.


혹시 호호님에게 ‘설마 내가 이것까지 모을 줄은 몰랐지?’ 하는 거 있나요?


편지? 편지 모아놓은 상자도 따로 있어요. 아, 혹시 종이접기로 박스 안에 박스 만드는 거 알아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가 만들어서 준 종이접기 박스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종이를 1㎜씩 차이 나게 재단해서 박스를 만들면, 박스 안에 박스가 들어가도록 만들 수 있대요. 그렇게 박스가 20~30개 정도 들어가게 만들어서 준 거예요.



20~30개나요? 대단한데요?! 그 친구와는 계속 연락하세요?


지금은 연락이 끊겼죠. 그 친구가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제가 절친이 아니었는데도 만들어 준 거예요. 실제로 보면 예쁘게 잘 만들었어요. 그래서 딸이 자기도 갖고 싶다고 이걸 되게 노리고 있어요. 그럼 저는 네 친구한테 만들어 달라고 하라고, 이건 내 친구가 만들어 준 거라고 놀려요.


하하, 말씀대로 선물은 버리기 힘든 것 같아요. 저도 학창 시절에 받은 선물 많이 가지고 있거든요.


예전에 제가 흐지님한테 듣고 놀랐던 게, 중학교 때 시험지를 가지고 계시대요.


그냥 발견됐어요. 일부러 보관하려고 한 건 아니고요.


저도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 성적표를 남편한테 들켰어요. 남편이 “이 성적으로 그 대학을 갈 수 있었어?”라며 놀려요. 모아놓으면 이렇게 안 좋을 때도 있어요.


너무 웃겨요. 저는 초등학교 때 썼던 시도 모아놨어요.


저도요. 일기장도 다 가지고 있고요.


네?! 두 분 다요?


부지님은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저희한테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사실 저는 8년 전에 모아둔 거 다 버릴 뻔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 번아웃이 온 채로 직장을 그만뒀고 이사를 앞두고 있었어요. 뭔가 모든 게 귀찮아져서 다 버리려고 했는데, 남편이 자기가 이걸로 평생 놀릴 거라면서 안 버렸거든요. 그때는 왜 안 버리냐고 성질냈는데, 지금은 고맙게 생각해요.


으아, 추억을 지켜주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호호의 소행성 Y187 발견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도전은 계속된다

이상하지만 자유로운 할머니를 꿈꾸는 우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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