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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지부지 May 28. 2021

[시즌1] 우주인 박인우를 만나다♡

2021년 우주인 2호


인터뷰 가는 길


흐지님, 저 지금 떨고 있나요?


왜 그러세요, 부지님.


제가 아끼는 두 분을 서로에게 소개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어요. 게다가 인터뷰를 해야 한다니! 마치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엄마가 된 기분이네요.


저도 떨려요... 잘해봅시다 우리!


(삐그덕 거리며 매장 안으로 들어서는 흐지부지)


<우주인터뷰>는 모든 인터뷰이에게 공통으로 드릴 ‘시그니처 질문’과 인터뷰이마다 달라지는 ‘우쥬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그니처 질문


응답하라, 우주인! 지구인에게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걱정하는 감시자’ 박인우입니다. 저를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요. 이 말처럼 지금의 저를 잘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 같아요. 끊임없이 확인하고, 걱정하고, 또 확인하는 감시자입니다.


오, 굉장히 신선하네요. 일반적으로 ‘걱정’이나 ‘감시자’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잖아요. 이런 두 단어를 조합해 자신을 설명한다는 게 신기해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가요? 


가게를 운영하면서 생긴 저의 모습인데요.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나곤 해요. 예전에 작은 규모의 매장을 운영할 때 일인데요. 그땐 밤낮 안 가리고 손님을 받으려고 매장 한 켠에 쪽방을 만들어 놓고 잠을 청하는 일이 잦았어요. 그날도 그렇게 쪽방에서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엄청난 굉음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죠. 전기 합선으로 콘센트가 폭발한 거였어요. 다행히 불은 나지 않았지만 벽에 제 키 반만 한 그을음이 생겼다니까요.


와, 정말 놀라셨겠어요.


그리고 2년 후, 두 번째 매장으로 이사를 하면서는 수도배관 공사가 문제 되기도 했어요. 왠지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수도 공사를 마친 텅 빈 매장에 찾아갔었는데요. 건물에 들어서는데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새로운 매장은 3층이어서 2층에서 물청소를 하는구나 생각하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2층은 불이 꺼져 있고... 너무 놀라서 3층에 올라가 보니 문틈으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어요. 이미 매장 안은 물바다가 된 상태였죠. 인테리어 업체의 실수였어요. 

이러한 경험들로 인해 저는 매장이나 집을 비우고 나갈 때 불안감을 떨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사실 이런 습관이 스스로를 정말 지치게 하거든요. 근데 놓을 수 없는 제 일부분이 되었어요.


‘그런 습관들이 지치게 만들지만 내 일부분’으로 만들었다는 지점에서 내면이 단단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지치지만 그럼에도 바꾸고 싶은 모습은 아닌 건가요?


네. ‘걱정’과 ‘감시’는 제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더 단단하게 꾸려갈 수 있는 무기요. 가게를 운영해나가는 힘이기도 하고요.



‘현재’ 우주인이 꽂혀 있는 콘텐츠는?


현재 꽂혀 있는 거라면 2017년 작 영화 ‘다키스트 아워’요!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때,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요. 지금 같은 힘든 시기에 힘이 되어주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저도 코로나로 힘든 이 시기를 잘 이겨내야겠다, 꼭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들어요.


네이버 영화 소개에 ‘살아남는 것이 승리였던’이라는 문구를 보고, 말씀하신 대로 영화의 메시지가 지금 시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Darkest Hour, 제목도 그런 느낌이 강하고요. 여러 번 보신 것 같은데, 몇 번 보셨어요?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영화는 세 번 정도 본 것 같아요.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나 장면이 있다면요?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처칠이 자신이 총리가 되고 나서 가족끼리 조촐하게 자축을 하는 장면이요. 전시 중이니까 단촐하게 축하를 하는데, 처칠이 건배사로 “너무 박살 나지 않기를!”이라고 외쳐요. 자기가 총리로서 성공적으로 해내겠다는 말을 한 게 아니라, 너무 처참하게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아, 너무 최악의 실패를 하지 않길 바랐던 거군요. 멋있네요.


네. 그리고 처칠이 의회에서 말하는 장면도 참 좋아요. 항복한 나라는 그걸로 끝인데, 전쟁에서 진 나라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하거든요. 항복은 절대 안 된다는 거죠. 설사 전쟁에서 지더라도 굽히지 않는 마음이 제게 울림을 줬어요. 저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생각했구나. 그래서 어떻게 보면 코로나가 전쟁은 아니지만 저도 항복하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


맞아요. 사실 거의 전쟁이죠.


네. 특히나 자영업자들에게는 경제적 전쟁이죠. 굶어 죽느냐 마냐 문제니까요. 저는 이제 붙임머리 전문 샵을 연 지 5년 정도 되었는데요.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힘들어하시는 자영업자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저도, 그분들도 굽히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버틴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봐요. 


좋네요. 인생 영화 같은 느낌인가요?


힘들 때 찾게 되는 영화예요.


아, 인생 영화는 아니고요?


인생 영화까지는 아니에요. 인생이 매번 힘들지는 않으니까요. 매번 힘들면 안 되죠 (웃음)



‘현재’의 우주인을 설명할 수 있는 물건은?


매장에 있는 제 컵이요. 매장 이전을 몇 번 했지만 잃어버리지 않고 제 곁을 계속 지키고 있는 컵이에요. 저는 출근을 하면 이 컵부터 집어 드는데요. 공복이라면 물 한 잔, 그게 아니라면 커피나 차를 내려 마셔요. 매장에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이죠. 그리고 퇴근 전에도 커피나 차를 마시며 오늘 매장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해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을 장식하는 물건이에요.



인우님의 일과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네요. 보통 이 질문에는 일상에 관련된 물건이 대답으로 나오기 마련인데, 인우님은 일터에서의 물건을 꼽으셨어요. ‘일’이 중요한 분이신 것 같아요.


그렇죠. 일이 중요하죠. 음, 저는 일과 분리된 일상이란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일이 먼저고, 일을 제외한 부분이 일상이죠. 그래서 집에서는 최대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요. 집에서까지 뭘 하려고 하면 좀 억울해요. 


정말요? 진짜 신기하다. 거꾸로 저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 억울하거든요.


저는 집에서 뭘 하려고 하면 그게 또 결국 일과 연결돼요. 


일과 일상이 분리가 안 되어서 그런 것 아니에요?


맞아요. 집에서는 붙임머리에 대한 블로그 글을 써요.  


아, 결국 일이네요....


맞아요. 그래서 집에서는 그냥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고… 


저는 계획을 짜도 항상 일은 후순위거든요. 일과 일상의 계획을 다른 페이지에 따로 세워요. 완전히 분리하죠. 그래서 인우님이 정말 신기하네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물건으로 일터에서 쓰는 컵을 꼽으셨을 때부터 이 사람 심상치 않다 생각했어요.


사실 저도 일과 일상을 분리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일과 일상이 얽히고설켜 있어요. 제가 자영업을 하면서 좋아하는 일 중 포기한 것이 영화관에 못 가요. 왜냐하면 영화관에서 핸드폰을 꺼낼 수 없어서요. 어두운 극장에서 핸드폰 꺼내서 확인하면 정말 엄청 민폐잖아요. 그러니 손님들 연락이 오면 참 힘들죠.


아, 손님 문의가 오면 빠르게 답변을 해줘야 해서요?


네. 100% 예약제로 손님을 받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대답하고 상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다가도 핸드폰 진동이 오면 집중이 안 돼요. 도대체 어떤 연락일까 하면서요. 그래서 그걸 못 참고 확인하려고 힘들게 굽신굽신 해서 상영관 밖으로 나가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면 이상하게 광고 문자더라고요.


아, 억울해!


그쵸? 그래서 영화관을 잘 안 가게 됐어요. 


안타깝네요. 스스로 좋아했던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렇게 하시는 게 보람이 있으신 거겠죠?


솔직히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사업이 급성장하지는 않아요. 근데 사업이 잘 안 될 때 적어도 후회가 남지는 않죠.


아, 나는 이만큼 할 만큼 했다?


네. 후회를 남기기 싫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지금도 편하게 핸드폰 보셔도 돼요.


연락이 안 오네요. 헉, 전화 왔었네?



악, 얼른 하세요!!


(전화하러 떠난 우주인)



우주인을 기분 좋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 세 가지는?


우선, 기분에 따라 차갑게 혹은 따뜻하게 커피를 내려서 마시는 일! 매장에 커피 머신이 있는데요. 커피를 내렸을 때 생기는 크레마와 그 향은 저를 진정시키는 느낌이 들어요. 커피가 제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건 첫 모금 혹은 두 모금 정도라서 기껏 커피를 내려놓고 남겨서 버리는 일이 잦아요.


커피가 인우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더 듣고 싶어요. 한두 모금만 마셔도 금방 기분이 나아진다는 뜻인가요?


저는 카페인이 부족해서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마음을 릴렉스 하려고 마시는 것 같아요. 이런 거죠. 나는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지만 커피 한 잔 정도는 내려 먹을 시간이 있다. 뇌에 인식을 시켜주는 거예요. 매장 상황이 안 좋고 손님 일정이 꼬였을 때 커피를 더 찾게 되죠.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릴렉스 하자,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하는 거예요. 


이것도 멘탈 관리법 중 하나시군요. 미리 걱정하고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처럼요. 아까 매장 둘러보다가 컵을 발견했는데, 정말로 커피를 거의 안 드셔서 많이 남아있더라고요. 


이상하게 한두 모금 마시면 손이 잘 안 가요. 낭비하는 습관은 고쳐야겠지만....


인우님의 지인으로서 제 기준에서는 인우님의 행동 중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런 행동들이 모두 인우님이 스스로 멘탈을 관리하려고 했던 방법들이었구나 생각하면 자연스레 이해가 되네요. 정말 멘탈 관리법을 곳곳에 두셨군요. 그래서 멘탈이 강하신가 봐요. 저는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한데, 다시 돌아보니 인우님처럼 멘탈을 보호할 안전장치를 전혀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일까요.


맞아요. 부지님은 멘탈을 보호할 안전장치가 절실히 필요해 보여요. 제가 볼 땐 (웃음)


다음은요? 인우님을 기분 좋게 만드는 방법에는 또 뭐가 있나요?


집에서 영화 한 편 몰입해서 보기. 보통 혼자서 영화를 보면 장면을 슥슥 넘기면서 보게 되는데요. 그런 것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한 편을 집중해서 보고 나면 이상하게 개운한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기. 중요한 건 정말 아무것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해요. 몸으로든, 머릿속으로든 무언가를 한다면 혹은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누워있는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영화를 정말 좋아하시네요. 저는 사실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궁금해요.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영화를 좋아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이어 온 습관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여행을 거의 못 가봤어요. 제주도도 나이 서른에 처음 가 봤다니까요. 아버지가 이런 데에 대한 미안함이 있으셔서 그렇게 하신지 모르겠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비디오를 빌려서 보여주셨어요. 제가 어느 정도 크고 난 다음엔 비디오 대여점에 아버지가 돈을 충전해 주시고 제가 보고 싶은 비디오를 직접 빌려보도록 하셨어요. 그래서 일요일에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집에서 영화를 봤죠. 제가 이렇게라도 간접경험을 하도록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가족의 사랑이 담겨있는 따뜻한 취미네요. 그럼 웬만한 영화는 거의 다 보셨겠네요?


개봉한 지 오래된 영화는 꽤 많이 봤어요. 근데 사실 가게 차리고서는 많이 못 봤죠. 요즘은 현실이 빡빡하고 생각할 게 많으니까 영화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아요. 영화 보다가 손님 전화받고, 상담하고, 몰입이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뭔가 안타깝네요. 오래 지켜오신 루틴과 같은 것이었는데... 아, 그래서 아까 영화를 집중해서 보고 나면 개운한 느낌이 든다고 하신 거군요.


맞아요.


마지막으로 말씀해주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기'는 명상에 가까운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 이게 명상인가요? 저는 제 이런 행동이 명상이라고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네요. 그냥 오래된 습관이거든요.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하기.


사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건 수월한 편인데, 아무런 생각까지 하지 않는 건 쉽지 않잖아요. 명상에서도 잡념을 떨치는 게 가장 어렵다고도 하고요. 인우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저는 소리에 집중해요. 아무리 조용해도 무언가 들리는 소리가 있잖아요. 거기에 집중하면서 생각을 최대한 하지 않아요.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몸을 떠나서 뇌가 쉬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 생각도 안 할 수가 있나요? 저는 그게 잘 안 되던데.


근데 부지님이 이렇게 말을 시켜요. 그럼 명상이 깨지는 거죠.


아, 부지님이 명상에 방해가 되는군요?


앗, 명상한다고 말씀하시면 말 안 걸게요. 저는 쉰다는 게 몸만 편하게 있다면 쉬는 거라고 생각해서, 말은 걸어도 되는 줄 알았죠. 제가 말 걸었을 때 이래서 화를 내셨던 거였네요.


쉰다는 것의 정의가 서로 달랐던 거네요 (웃음)



★우주인 박인우의 인터뷰는 2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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