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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n 13. 2024

샘, 밤길 조심하세여.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교사들.

 수업 시간에 잠을 깨웠다며 교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한 고등학생이 실형을 선고받았다.(2022-09-01. 연합뉴스)

수업 시간에 잠을 깨웠다고 모교 교사를 찾아가 흉기로 살해하려고 한 18세 고등학생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는 기사이다. 교사를 흉기로 살해하려고 했던 사건은 작년 여름에도 있었다. 대전의 고등학교에서 졸업생(20세)이 방학 중 보충수업을 하고 있던 교사를 찾아가 준비한 흉기로 10여 차례나 찔러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서이초 교사 사건으로 교사들이 모두 힘들어하고 있던 상황에서 일어난 일로 교직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했던 사건이라고 기억한다. 이 사건 이후 내 옆자리 젊은 샘은 며칠 동안이나 호신용품을 검색하더니 배송된 삼단봉을 나에게 보여주며 어떨 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시연까지 해주었다. 나도 소심하게나마  금속탐지기라는 것을 사서 선도실에 오는 애들을 쓱쓱 훑으며 선제적으로 나를 지키는 일에 용을 써 보았다. 기사를 본 일반 사람들은 극히 드물게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현장은 훨씬 더 심각한 일들이 일어나며 교사들은 날로 날로 위기의식을 느낀다. 조회 시간 지각한 학생을 지도하다가 학생에게 맞아 손자국이 선명한 뺨을 가리고 와서 눈물을 흘린 후배 교사도 있었고, 행사 중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쌍욕을 먹고 멱살잡이를 당한 육십이 선배 선생님도 있었다. 나 또한 잠자는 학생을 왜 깨우냐며 교장실에 불려 가 몰상식한 부모의 항의를 듣기도 했다. 감히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그렇게 깨우고도 목숨을 부지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아직 연금도 안 나오는데 왜 이렇게 일찍 명퇴하셨어요?' 하고 묻는 사람들한테 '더 하다가 죽을까 봐서요' 하면 다들 웃음을 터트리며 농담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자주 들었었다. 이러다가 학생 손에 죽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제 명대로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50세가 되던 해에 맡은 학급은 정말 범죄 집단을 보는 것 같았다. 문제 학생들이 우리 반에 몰리면서 하루도 사건 없이 지나는 날이 없었고, 순하고 착한 나머지 애들은 한껏 위축되어 담임인 나만 바라보았다. 그나마 선도실에 있어 방어할 힘이 있던 나는 틈나는 대로 교실을 들락거리며 아이들을 지켰다.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미치지 않은 사람이 모인 곳.  정. 신. 병. 동.'


-상상해 봐. 너무 무섭지 않아? 선생님이 고등학교 때 어디선가 읽은 시인데 아직도 그때의 충격이 선하다. 다 미쳤는데 나만 안 미쳤어. 그럼 누가 비정상으로 보일까?

-저요.

-그래. 그런 세상이 오면 안 되겠지?  세상 모두가 미쳐 가더라도 나는 미치면 안 되는 거지.

 비정상과 타협하지 않고 중심을 지켜내는 나 하나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거야. 우리는 상식이 뭔지 인간다움이 뭔지 배워서 잘 알잖아. 절대 나를 내려놓지 마라. 알겠지?


 쉬지 않고 잔소리하고 격려하며  문제아들 틈에서 착한 아이들이 무너지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그 해 우리 반에서 자퇴하거나 제적을 당한 아이는 1학기에만 무려 다섯 명이나 되었다. 수업 중에 교실 문짝을 차서 부순 녀석도 있고, 밤새 먹은 술이 덜  교실에서 웃통을 벗은 채 잠든 놈도 있었다. 시험 시작종이 울린 그 긴장된 시간에 학생부장이 자기 이름을 기분 나쁘게 불렀다는 이유로 난동을 부리며 학교를 들었다 놨다 했던 놈도 우리 반이었다. 말만 하면 귀를 막고 짜증을 내는 성질 나쁜 여자아이도 있었는데 이 아이는 자신의 재판에 유리하도록 탄원서를 써달라고 당당히 요청했다. 지도를 거부하니 너에 대해 아는 게 없다며 거절을 했다가 몇 날 며칠을 조르고 악담을 해대서 결국은 써주게 되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해줄 거면 순순히 해 줄 것이지 라는 잔소리만 들었다. 성실히 분량의 글 때문에 1년 선고를 받을 것을 6개월만 받게 되었다고 감찰관한테도 원망을 들었다. 좋은 일이 없었다.

그렇게 긴장으로 이를 악다물고 지낸 탓인지 턱관절에 문제가 생기면서 툭하면 턱이 빠져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다. 죽을 만큼 힘들고 버거운 한 해였다. 못된 놈들은 그 부모들까지 얼마나 몰상식하고 집요한지......, 수시로 가해지는 그들의 공격에 나는 불안장애와 우울증세로 정신과를 찾았는데  상담하는 의사가 학교 현장의 사정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어 깜짝 놀랐다. 주변 학교 선생님 중에도 자기 환자가 많다며 선생님들의 고충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의사가 그랬다. '남의 자식인데 너무 잘 가르치려 애쓰지 마세요. 그냥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시는 게 선생님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더 좋아질 일은 없겠구나. 희망이 없는 일에 너무 오래 기대하지 말고 딱 5년만 하자. 남은 5년 동안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그동안 새로운 비전을 가져보자고....  5년 동안 하루하루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근무한 덕인지 나의 마지막은 나름 아름답고 흡족했다.



 친구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중식지도를 하던 원로 선생님이 긴 머리를 묶지도 않고 치렁치렁 흩날리는 여학생에게 주의를 주는데(당시는 학교 교칙에 두발에 대한 규정이 있었음.) 짜증 난 여학생이 지도하던 선생님을 밀쳐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다. 비명 소리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몰려오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처참히 쓰러져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고, 이 일은 순식간에 일대에 알려지게 되었다. 다행히 선생님은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패닉 상태에 빠져 정신과 치료를 오랫동안 받아야 했다. 이 사건은 한동안 인터넷에 기사화되어 오르내렸는데 나는 당시 사건보다 댓글에  큰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을 위로하거나 걱정하는 댓글은 찾아볼 수가 없고 -'그니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지적질을 해.  -그럴만했네.--선생이 얼마나 깐족거렸으면 그렇게 했을까' 등등. 그때 나는 교사에 대한 세상의 부정적 시선을 온몸으로 느꼈다.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 학교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상식적인 일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더 심각하고 더 몰상식한 일이 일어난다. 주로 학생들이 교사를 고발하기 위해 동영상을 찍었는데 요즘은 교사도 학생을 찍는다. 왜냐하면 증거 이외에는 나를 보호할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병적으로 모든 것을 기록했고, 이렇게 많은 사건 파일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교권이 추락했다는 기사도 많이 보도되었고, 무너진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기사도 많이 다루어졌지만 현장은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교사는 권리보다 책임 더 많은 직업이다. 사소한 아이들 다툼에도 교사는 대법원 법정보다 더 심각하게 사건을 들여다보아야 하고, 솔로몬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수업 중간중간 카톡으로 보내오는 학부모들의 메시지에도 늘 집중을 해야 한다. -점심 먹고, 약을 먹도록 전해달라. 방과 후에 ** 학원으로 바로 가라고 전해달라.-라는 등의 사소한 요구를 공문을 다루 듯 집중해서 챙겨야 욕을 먹지 않는다.  외부 활동에서도 문제가 터지면 모조리, 전적으로 교사가 책임을 지는 상황이니 굳이 고생하며, 시간 쓰면서 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만 말 안 듣는 아이 한 두 명은 으레 있는 것인데 그러한 예외와 어려움을 이해해 줄 학부모는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선도실에 있으면서 무섭고 위험한 아이들을 경험했다. 두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자기 선생님인데 나를 어떻게 하지는 겠지?군사부일체라는 말도 있잖아'. 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렸었다. 

이런 생각은 혼자만의  낭만적 착각이었을까.  나한테 담배도 걸리고 콘돔도 뺏기고  벌점도 자주 받아 학교를 잘리게 된 아이가 나가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섬뜩하다. 온몸에 용 문신까지 했던 그 아이. 열받는다고 나한테 의자도 던진 그놈.

'선생님 아들 **학교 5학년이죠? 조심하라 하세요. 샘도 발길 조심하시고요.~'

낮은 목소리로 무심히 내뱉고  선도실 문을 나섰지만 나는 그 말이 가슴에 맺혀 퇴근길을 한참이나 둘러 둘러서 집으로 돌아갔다. 어디선가 내 일상을 지켜보고 뒤를 밟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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