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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n 20. 2024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사랑에 대한  시각차.

  한 여성이 아기를 낳아 비닐봉지에 넣고 버렸다가 지나던 행인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이런 내용의 기사는 10년 전에도 있었고, 20년 전에도 있었다.  

모텔에서 혼자 출산을 하고 낳은 아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간 여성이 체포되었다. 기자가 이 여성의 행적을 추적하여 공개했는데 cctv 속 여성은 출산 직후 모텔을 빠져나와 어디론가 열심히 걸어가는데 그가 힘겹게 걸어 도착한 곳은 모텔 인근의 pc방이었다. 자신이 낳은 아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극단의 상황에서 한다는 짓이 겨우 게임이라니. 우리 학교 인근 pc방에서도 게임을 하던 중 산통이 오자 PC방 화장실에서 배설을 하듯 아기를 낳고는 비누를 담아 두었던 쇼핑백에 아기를 넣고 가버린 일이 있어 한동안 동네가 시끄러웠던 때가 있었다. 이런 짓을 사람이 했다는 게 충격적일 뿐이다. 쥐는 구조적으로 외나무다리를 건너기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다리 맞은편에서 새끼 쥐를 막대로 찌르면 어미 쥐는 새끼의 비명소리를 듣자마자 단숨에 외나무다리를 건너 새끼 쥐를 구하러 온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보았다. 쥐도 가지는 모성애를 인간임에도 가지지 못한 이러한 경우를 보면 참담할 때가 있다. 이래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생겼나 싶다.




 세상이 참 급격하게 변해왔다. 그래서인지 내 또래의 사람들은 여러 분야에서 문화 충격을 많이 받아 왔고, 지금도 적응하기 힘든 상황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혼란스럽고 적응 안 되는 것이 성문화이다.

옛날에.....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남녀 교제에 대해 아주 아주 엄격했었다.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말을 알고 살던 아이들이 많았던 시절이니 남녀 간이 유별함을 얼마나 들으며 자랐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내가 학교 다니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샘, 혹시 조선 시대예요?' 물으며 이해는 고사하고 별나라 이야기인 양 신기해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봤자 50년도 안 된 이야기인데 말이다.ㅎㅎㅎ

금욕적인 문화 속에서 당연하게 여자중학교, 여자고등학교를 다녔고, 행여라도 이성 교제를 하다가 적발이 되면 가차 없이 징계를 받던 시대였다. 실제 내 친구 중에는 남고 학생과 사귀다가 신체 접촉을 했다는 소문이 크게 나면서 퇴학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정숙한 여성'을 표방하며 여성의 몸가짐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야 했던 우리 세대의 교사들이 교내에서 목격하는 이성 교제의 행태는 언제 봐도 놀랍고 적응 안 되는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선도실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이성 교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엄격했다. 학교와 떨어진 곳이라도 손을 잡고 가는 커플을 보면 큰일이라도 난 듯 지도하고 처벌도 했다. 교칙에 '풍기문란'이라는 항목을 두고 상, 중, 하 3단계로 벌점을 주었는데, 가장 센 것이 20점이었다. 이 정도는 교내에서 키스를 하다가 들켰다던가 대중이 보는 앞에서 신체 접촉을 했을 경우가 해당되었다. 요즘 애들이 보면 엉뚱하고 도저히 납득도 안 되는 항목일 것 같기도 하다. '헐, 키스하는 게 뭐라고 20점 이라니....., ' 할 것 같다.  




중간고사라 오전에 시험을 마친 아이들이 모두 귀가하여 세상 조용한 상황에 혼자서 복도를 돌고 있는데 한 교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뒷문 유리로 들여다보니 교실에는 남학생 둘, 여학생 둘. 네 명의 아이들이 책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들은 남자 여자 마주 보고 앉아서는 스킨십을 하고 있었는데 힌팀은 서로 끌어안고 볼을 핥아주고, 한 팀은 입술에 뽀뽀를 하고 있었다. 집단 애정 행각이라고 하기엔 인원이 너무 단출하고 행위도 단순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은 채 한동안 서서 바라만 보았다. 친구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스킨십을 나누다니 이게 인터넷 기사에서나 보았던 일종의 스와핑. 그런 건가? 아, 세상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어린 것들이...., 혼자 미친 듯 중얼거리며 아이들을 선도실로 데려와 진술서를 쓰게 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어떤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도 하여 건전한 학교 생활을 하도록 당부당부하며 벌점 10점을 주고 마무리했다. 이 사건 외에도 사후 피임 처방전을 발견하여 상담을 해보면 동네 친구랑 술을 먹다가 충동적으로 관계를 하고는 임신이 걱정되어 병원을 찾았었다고 말하거나, 모텔을 배경으로 찍은 커플 사진을 적발하여 상담을 해보면 호기심에 남자 친구와 가 본 것이라고 변명을 하기도 했다. 모텔이 스무 살도 안 된 학생이 호기심으로 갈만한 곳인가 말이다. 가방 안에서 쏟아지는 콘돔을 처리한 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산부인과 병원비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고 남자친구를 신고한 여학생도 있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경험치가 쌓여도 나는 아직도 이러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게 아이들이 말하는 쿨한 인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이해하고 적응해야 할 상황인지 되묻고 싶다. 적응도 안 되고 타협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이 근무 중에는 나를 힘들게 했고 여전히 조심스럽기만 한 부분이다.


교사들은 대체적으로 노출에 대해 민감한 편인 것 같다.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나 정도의 나이 든 교사들이 더 그렇다. 브래지어와 속옷의 끈 위치가 어긋난 정도로도 등짝을 맞으며 자란 탓인지 속옷에 대한 개념도 매우 보수적이고 엄격한 편이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빤히 잠옷으로 보이는 수면 바지를 바지라고 우기며 학교까지 입고 오는 애들도 있고, 치마가 너무 짧아 속바지가 훤히 드러나는 것을 보고 기겁하며 주의를 주면 '속옷 아닌데요 바진데요.' 하며 우긴다. 누가 봐도 저건 속옷인데 말이야. 하얀 하복 블라우스 안에 레이스의 디테일까지 훤히 드러나는 브래지어를 하고 와도 혼내는 것은 엄두도 못 낸 채 충고라도 할라치면 시스루도 모르냐며 오히려 따지고 들어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문제는 너무너무 예민한 일이라 이젠 교사가 지도할 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도 중에 행여라도 아이가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거나 기분 상한다고 신고라도 하면 교사의 인생은 고달파지기 때문이다. 이런 건 제발 집에서 부모가 가르치면 좋겠다. 개성도 중요하고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공공 생활에서 서로 다른 시선에 대해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치면 고맙겠다.



  내가 선도실 배정을 받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목격한 광경이라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눈에 선한 사건이 하나 있다. 상황뿐만 아니라 그때 받은 충격과 상처 또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7월 기말고사를 두 주 정도 앞두고 등교지도를 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들어오는 애들 사이에 한 명의 여학생이 가방을 앞으로 메고 걸어오는데 가방 아래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배가 눈에 확 들어왔다. 소쿠리를 엎어 놓은 것처럼 유달리 동그랗고 매끈한 모양인데 불룩했다. 강렬한 충격과 함께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다. 가슴이 마구 뛰고 다리가 후덜거렸지만 아이 곁을 스치듯 지나면서  '뭐야?'  하니 그 아이도 담담하게 ' 아.... 담임선생님도 다 아시는데요.' 한다. 일단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은 막은 것 같다. 재빠르게  '선도실로 가라'라고 속삭이듯 말한 후 명찰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아이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걸음을 옮겼고 나는 아이와 상관없는 사람처럼 멀찍이 뒤 따라 들어갔다. 아이는 임신한 것이 맞았고, 더 놀라운 것은 출산 예정일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체험학습을 쓸 계획이었다고 했다. 집에서는 알고 계시니?" "아는 사람 없어요."

아니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은 내가 봐도 알만한 상황을 가족이 모르다니...... 집안 분위기가 짐작이 되었다.

나는 학생부장에게 상황 보고를 했고, 곧바로 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 아이의 사건은 일사천리 빠르게 진행되어 당일 퇴학처리가 되었다. 외부에 터지기 전 일을 마무리하게 되었다고 교장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지만 어렸던 나는 많은 것들이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학생이 임신을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학교를 나오고 있었다는 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닌지......  얼마 뒤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아이는 며칠 전 체육 시험에서 윗몸일으키기를 50개나 했다고 한다. 만삭의 몸으로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게 열심인 아이를..... 그때 내가 모른 채 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학교의 명예만 결론이었고, 아이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는 부정한 문제아였다. 그 아이도 그 부모도 단 한마디 항의도 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요즘에는 임신한 학생에게도 학습권을 보장하며 위탁교육을 받게 하고, 출산 후 아이를 양육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도 제공한다. 앞 선 상황이나 지금이나 결론은 출산이지만 과정은 너무 상이하다. 아주 어려서부터 성교육을 철저하게 하고 인권에 대해 강조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성인식이 너무 개방된 측면이 있다. 우리 때는 무지한 만큼  은밀하고 신비롭고 소중했지만, 요즘은 아는 만큼 적극적이고 가벼우며 실행 능력도 뛰어난 것 같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고딩엄빠>라는 프로그램이 시즌 5까지 만들어졌다. <고당엄빠>에 출연한 고등학생 출산자만 100명이 넘는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아직 어리고 인생의 비전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고등학생 미혼모를 재미거리로 미화하는 것 같아 이 프로그램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나이지만 한편으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 프로그램을 보며 각자의 상황에서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 사람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수업 시간에 한동안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이다.

숲 속에 거미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 너무 외로워서 힘들어 할 때 이슬이라는 친구가 나타났어. 둘은 친구가 되었고 이내 사랑에 빠졌지. 어느 날 거미가 이슬을 안아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고 조르기 시작했어. 거절을 하며 달래던 이슬이 매일 졸라대는 거미를 향해 체념한 듯 말해. 자신을 안아 봐도 좋다고... 하지만 자신이 이 세상에 없어도 슬퍼하지 말라고. 거미는 이슬을 힘을 다해 안았고, 이슬은 펑하고 사라져 버렸어.

거미는 자신의 욕구가 중요했지만 이슬은 사랑이 소중했어.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고, 죽음을 감수하는 희생을 하면서도  자신이 사라진 후에 슬퍼할 거미의 마음까지 걱정하지.

사랑을 한다면 이슬처럼 하는 거야. 사랑은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

그렇게 사랑을 느끼며 성장하는 것이 건강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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