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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n 06. 2024

누구든, 언제든, 외톨이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가 된 은둔형 외톨이들.

히키고모리.

집안에 틀어박혀 사회와의 접촉을 기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본어이다.

오래 전 우연히 수업 자료를 찾다가 히키코모리에 대해 알게 되어,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돼서도 부모한테 의존한 채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단다. 끔찍한 건 자기 부모가 사망을 해도 부모의 연금이 끊기는 게 두려워 사망 신고도 하지 않은 채 부패한 시신과 몇 년을 함께 살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하더라'는 이야기 전하며 아이들과 함께 이웃나라의 낯선 문화에 경악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수업 분위기가 생생하게 생각나는데 불과 몇 년 사이 이것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심각한 우리나라의 사회 문제가 되어 버렸다.

                                                                                         교육청 캠페인 영상


 지난달 미국 CNN 방송이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고 정서적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한국과 일본, 홍콩의 은둔 청년들에 대해 다루었다.  CNN은 '움츠러드는 삶: 일부 아시아 젊은이들이 세상에서 물러나는 이유'(A shrinking life: Why some Asian youth withdraw from the world)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 나라의 은둔 청년을 포함해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봤다. 방송에 의하면 일본이 150만 명 정도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한국, 홍콩 순이었다. 아시아 국가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점점 숫자가 증가하는 것도 매우 심각하게  들여다 볼 문제인 것 같다. 사회 활동을 중단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니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도 그 여파를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았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문제 해결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해결책을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은둔형 외톨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면에 이슈로 오르내리고 있는데 이게 비단 10대들만의 문제가 아닌 30대, 40대로 늘어나는 것이 더 심각한 일이다. 적극적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니 그 여파가 여러 분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2022년 기준 한국의 19∼34세 인구 중 2.4%가 은둔형 외톨이로 파악되었고, 현재 추정하기로는 우리나라에는 35만 명 규모에 해당하는 사람이 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다고 한다. 집안에 틀어 박혀 사람과의 만남을 거부한 채 6개월 이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숫자인 것이다.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약화되고 본능적 삶의 행태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니 큰 일인 것이다.


 나는 32년 동안의 교직 생활에서 이러한 변화를 서서히 느껴왔다. 90년대 학교에는 결석생이 거의 없었다. 아이가 아파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등교를 시켰고, 그런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은 학교는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라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출석을 하였다. 실제 우리 옆 반에는 링거를 들고 등교한 아이도 있었고, 나도 열이 38도에 육박하는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여 등교시키고는 아이의 담임에게 원망의 잔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다. 사람은 배운 대로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 당시는 문화가 그런 문화였다. 그래서, 개근상을 받은 아이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반대로 그러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불성실을 자책하기도 했다. 결석을 하려고 들면 수많은 이유가 생긴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가 강한 아이들은 그러한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위너가 되는 것이다.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보았듯 단 몇 분간이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부와 명예, 권력  등 모든 면에서 더 성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 보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나아지고 자녀수가 줄어들면서 부모들은 무엇이 됐든 내 아이 중심으로만 판단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만큼 아이들은 의지 약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아이들이 약하고 나태해지게 되면서 학교는 무결석 학급을 시상까지 하며 성실한 학교 생활을 독려하고 가르쳤지만 급변하는 시류를 따라가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보니 성실하고 의지 강한 어른으로 만들기 위한 가르침보다는 기죽이지 말고 케어만 잘해 달라는 학부모의 요구에 충실하면서 모든 교육활동은 매뉴얼이라는 이름 안에 갇히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지란 자기 통제 과정 없이는 자라지 않는 자신의 힘이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의지란 마음의 재산이며 그 자산이 풍족한 아이가 훌륭한 어른이 된다고 하였다. 100% 공감하는 바이다.




 

 우리 반에 강준서라는 아이가 있었다.(가명. 지금까지의 모든 이름은 가명이었으나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다는 선배들의 걱정이 있으셔서 가명임을 표기합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민원을 걱정하는 슬픈 직업병ㅜㅜ)

강준서는 오리엔테이션에 오지 않아 애를 태우던 아이인데 입학식에는 아주 밝은 얼굴로 등교를 하였다. 가나다 순으로 출석 번호를 정하니 준서는 우리 반 1번이 되어 임시 반장을 맡게 되었다. 반장을 하는 일주일 동안 준서밝고 적극적으로 학급 일에 솔선수범하였다. 상담을 하면서 알게 사실은 지병이 있던 아버지가 작년 봄, 집에서 돌아가셨는데 그날 자신은 자기 방에 있었지만 방에서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뒤늦게 아버지를 발견하고 119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지만 아버지는 결국 사망했다고 한다. 아무도 자신에게 직접 탓을 하지는 않았지만 경찰 조사도 받고, 집안 어른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자기 잘못이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운명은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라 네가 바꿀 수 있던 것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집에만 있던 엄마가 경제활동을 하려고는 하는데 쉽지가 않고, 동생도 남자 애만 둘이 더 있어 엄마도 자신도 매우 힘들다고 하며 지금은 구청에서 지원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말해 주었다.( 이 날 준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나의 말에 매우 기쁜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 죄책감에 짓눌린 서에게 얼마나 자주 듣고 싶었던 말일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잘 적응하고 있구나 안심을 즈음 갑자기 준서는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상담 카드에 기록된 모든 가족의 번호로 연락을 했지만 단 한대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우선 신변의 안전이 너무 걱정이 되어 출신 중학교로 연락을 했더니 중학교 때에도 결석이 잦아 힘든 아이였다며 오늘 동생이 출석한 것을 확인했으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하여 일단은 안심을 했다. 7일 동안 무단결석을 하게 되면 아동학대를 대비하여 보고를 하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이었지만 나는 마냥 기다리기가 답답해 우선 준서가 사는 지역의 주민센터 복지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상담 내용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데다 한부모지원 대상자라고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니 차비가 없어서 학교를 못 오는 형편이지는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전화가 연결된 공무원은 직접 담당자도 아닌데 준서네 가정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준서네 집은 그 지역에서 유명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 엄마가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회복지사에게 들은 준서의 일상은 아주 간결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게임만 한다고 하였다. 그런 생활을 한 지가 꽤 되었는데 고등학교 진학 후 마음을 고쳐 먹고 잘 사는 줄 알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아이들을 방치해서 그렇지 먹는 것은 스스로가 잘 챙겨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고 하였다. 복지사 한 사람이 52세대를 관리하는데, 일반적인 업무만도 힘든 상황에서 준서 엄마의 행동으로 자신들도 너무 힘들고 괴롭다며 하소연까지 했다. 복지사와 통화한 지 이틀 만에 준서가 컵라면을 먹기 위해 물을 끓이다가 허벅지에 화상을 입어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복지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가정방문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구청에서 복지사선생님을 만나 함께 준서네 집으로 향했다.

   사회복지사와 함께 방문한 준서의 집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상태였다.

동네는 재개발이 진행 중인지 온통 붉은색으로 X 친 곳이 많았고, 이미 이주가 끝난 빈집들은 흉물스러운 꼴을 하고 있었다. 서울 안에 이런 곳이 있다니....., 골목 중간쯤에 위치한 준서네 집은 턱이 높은 집이었다. 대문을 열자 당시는 보기 드물게  실외 화장실이 있고, 두 걸음 정도 들어간 위치에 현관문이 있었다. 요란하게 노크를 하자 쿠웅 발소리가 나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준서는 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서 있는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복지사가 웃으며 '담임 샘 같이 오시는 거 몰랐어?  네가 다쳤다고 하니 걱정 돼서 오셨단다. 들어가도 되지?' 하며 익숙하게 발을 옮긴다. 나는 엉거주춤 서 있다가 뒤따라 들어갔는데 집안 꼴이 가히 엽기적이었다. 두 명이 앉으면 여유 공간이 없어 보이는 작은 거실에 강아지가 세 마리나 돌아다닌다.  게다가 거실 여기저기 치우지 않은 강아지 배설물이 널브러져 있었다. 앉아야 하는데......, 마땅히 엉덩이를 붙일 공간이 없어 잠시 고민까지 했지만 준서의 민망해하는 눈빛이 더 민망해서 무심한 척 털썩 앉았다. '어머니는?'

물으니 '엄마' 하고 큰소리로 부르지만 답이 없다. '엄마, 엄마' 여러 차례 부르니 문짝이 떨어져 나간 컴컴한 방 안에서 '왜~~~~'하며 엄마가 고개를 내민다. '선생님 오셨어.'

준서의 엄마는 놀라지도 않고 '아, 네.' 잠꼬대 같은 답만 하고는  '야, 물 좀 줘. 목이 너무 마르네' 하자 준서가 물을 가져다준다. '술을 얼마나 마신건지......, ' 마구 번진 색조 화장에 수세미처럼 엉키고 부푼 노랗고 긴 머리카락. 자식의 담임을 보고도 상황 판단이 안 되는 의식 상태.

허벅지에 커다랗게 거즈를 붙이고 예의 바르게 서 있는 준서가 너무 불쌍했다.

3월에 벌써 결석이 보름이 넘었다. 63일, 결석이 지속되면 제적 처리된다는 상황을 알려주며 꼭 학교에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 후 돌아왔다.

어머니가 워낙에 술을 좋아하는데 최근 알코올 의존도가 높아지고 중독 증세로 상담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일을 해서 소득이 생기면 지원이 줄어들기 때문에 정식으로 취직을 한 건 아니지만 밤에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중1, 중3, 고1. 세 아이들을 방치하고 가정을 관리하지 않아 사회복지사들이 제도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는 있는데 정작 엄마라는 사람은 밤낮없이 요구만 해대고, 만들어 주는 반찬 도시락조차도 찾아가지 않아서 어떨 때는 괘씸한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지..... 복지사도 좋은 세상을 위한 사명감과 나름의 생각이 있어 일하는 것인데 감사도 모르고 자생 노력도 안 한다면 그런 사람들까지 굳이 챙겨야 하냐는 허탈감이 절로 생길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준서의 어머니는 새벽이면 주변 사람들을 게임에 초대하는지 나에게도 '함께 달려요. 런~런~'이라는 제목으로 링크를 보내와 잠에서 깬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내 상식으로 볼 때 정상적인 엄마는 아니었다.

준서는 그 이후로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게임에 들어가면 가끔 준서를 만난다고 하였다. 밤낮으로 방에서 게임만 하던 그 아이는 여름 방학을 앞두고 자퇴원을 제출하고는 학교와도 단절하였다. 강준서는 1년 사이 서서히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갔고, 또래의 사회에서 사라져 버렸다.


 전태양이라는 아이는 조금 다른 유형이다. 이 아이는 너무나 밝고 건강한 아이였는데 아버지의 지난 친 개입과 간섭으로  친구를 모두 잃고 고립되어 버린 아이였다. 태양이에게는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던 민성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유치원과 초등에 이어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와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이. 일명 베프였다. 그러던 것이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태양이보다 왜소했던 민성이의 키가 10센티미터나 자라면서 체격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게다가 민성이가 1학년 때부터 주짓수를 배우면서 체격도 힘도 태양이 보다 우위의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둘은 수시로 투닥투닥 장난을 잘 쳤는데 장난으로 보기엔 과할 때도 있어 볼 때마다 '야 장난이 폭력 된다. 조심해라' 며 입버릇처럼 주의를 주었었다.

그날도 점심을 먹고 평소 하듯 툭툭치고 다리를 거는 등 장난을 치고 놀던 중 갑자기 태양이가 민성이의 뺨을 때리면서 장난이 장난이 아닌 듯 묘한 상황이 되었다. 이에 민성이가 웃으면서 태양이의 다리를 걸고 강한 동작으로 꺾고 눌렀고 태양이는 고통을 호소하며 보건실까지 다녀갔다. 상황 확인도 하고, 면담까지 해서 잘 마무리됐나 했는데 귀가 후 태양이의 아버지는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하여 학폭 신고를 했다. 처음에는 집안끼리 다 아는 사이에 무슨 학폭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던 민성이 아버지도 태양이 아버지의 태도에 화가 나면서 충돌이 커지게 되었다. 형편이 넉넉했던 태양이 아버지는 변호사까지 선임하며  일방적으로 질주하다가 먼저 선빵을 날린 것이 태양이라는 사실로 불리한 상황이 되자 돈으로 이 사태를 무마하겠다고 나섰다. 결국은 민성이 아버지의 양보로 서면 사과로 마무리되었지만 과정 중에 퍼진 소문 때문에 태양이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면서 친구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다. 태양이는 이러한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며 학교나오지 않다가 전학을 갔고 종국엔 학교를 떠나 버렸다.


준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할 때, 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할 때 사람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희망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현실의 상황에서 준서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포기라는 아주 달콤한 해결책을 찾은 것 같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실제 은둔형 외톨이들은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이 많아서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며 심리적 은둔 상태로 빠져든다고 한다. 은둔형 외톨이들은 부모의 유형과도 매우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방임하는 부모와 과잉 보호하는 부모 이 모두가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최근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다양한 사회적 해결 방법과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어떤 것보다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가정에서의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관심과 태도인 것이다. 자녀와의 공감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객관적인 판단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일매우 중요한 것이다.

 부모의 지혜로운 힘 조절과 올바른 가치관. 이것이 앞으로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처방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pilogue>

교사들이 수업 중에 샛길로 새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나는 웬만해서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 어떤 이야기든 잘 끌어들이고 잘 엮어나가는 재주가 있는 편이다. 한참 무아지경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좀 길어졌다 싶으면 '알지? 샘이 하는 이야기는 농담에도 주제가 있다는 거? 잘 새겨듣고, 되새김질하며 살아라.' 억지 같기도 하고 농담 같기도 한데, 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신뢰해 주었다. 졸업생들이 찾아와서 20년도 더 된 이야기를 실감 나게 전달할 때면 뿌듯해지기도 한다. 나의 작은 한 소절 이야기가 인생의 포인트가 되었다고 하면 더없이 기쁘다.

 오늘 이야기는 좀 샛길로 샌 것 같다. 나답지 않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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