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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y 22. 2024

최면도 배웠습니다.

혹시 직업이 형사??

 경험치가 쌓이면서 문제 행동의 패턴을 알게 되고, 사건의 흐름을 읽는 시선이 생겼다.

그러면서 눈치는 더욱 빨라지고, 판단력은 더욱 명확해졌다.


 내 촉이 얼마나 좋은지 우리 집 아이들은 설거지하고 있는 엄마가 어떻게 자기들이 하는 일을 다 알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하루에만 수십 명의 문제아들을 상담하고 지도하는 내가 빤하고 순진한 꼬맹이들의 행동을 파악하는 일쯤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뒤에도 눈이 있다고 했더니 자고 있는 나에게 살그머니 다가와서는 뒤통수를 들추며 엄마의 숨겨진 눈을 찾기 위해 용을 쓰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적발과 조사가 점점 쉬워지는 한편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이해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다.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은 학부모와의 마찰도 생기고 몇몇 민원도 받다 보니, 나 스스로의 멘털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속 쓰림과 두통으로 약을 달고 살았고, 퇴근 후에도 ‘오늘은 오해될 만한 일을 한 건 없나’ 되짚어 보다가 극도의 긴장감이 몰려와 귓속이 징징 울리는 이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억지성 민원에 대비해서 사소한 사건과 대화조차도 강박적으로 기록하는 습관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최면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어린이들에게 최면을 걸고 굵은 생마늘을 하나씩 주면서 사탕이라며 씹어 먹도록 하자 ‘오도독오도독’ 소리까지 내며 맛있게들 먹는 장면이 이어졌다.  최면사의 말로 사람의 뇌는 무의식과 의식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중 90%를 차지하는 무의식의 영역을 최면으로 다스려 행동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문제 행동의 원인을 찾아 전환한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도 시작점을 찾아 바꿀 수 있다!. ‘담배를 똥처럼 여기게 해 주겠다. 문제 행동의 원인을 찾아 제거해 주겠다. 힘든 트라우마도 다 잊게 해 주겠다.’ 뭐든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부풀어 나는 당장 <레드썬 최면 연구소>에 등록을 했다. 100만 원이라는 싸지 않은 수강료에 아이들을 맡기고 매주 토요일 강남까지 가야 했지만 특단의 해결책이 절실했던 나는 태어나서 가장 비싼 사교육비를 지불하고 열심히 참석했다. 사람의 심리와 감정, 감정을 이완하고 변화시키는 기술, 뇌 구조,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법, 주변 환경이나 도구를 활용한 심리 조정 등 다양한 이론 수업과 최면을 걸어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실험해 주었다. 이론 수업이 끝나고 본격적인 최면 기술을 배우게 되었는데,  20명의 수강생들을 상대로 강사가 멘트를 하였다. “따뜻한 기운이 내려옵니다. 당신의 머리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다리로….. 당신의 온몸으로 따뜻한 기운이 퍼집니다. 이제 당신은 점점 편안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빠져 듭니다.”라는 주문과 함께 우리는 온몸의 힘을 빼고 이완을 극대화한다. 최대한 릴랙스가 되어야 최면 상태로 가는 것인데 넓은 공간에서 단체가 완벽한 최면 상태로 빠져드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레드 ~썬!” 주문과 함께 깨어나면 몸과 정신이 매우 개운해져 기분이 좋아졌다. 잠깐의 이완이지만 긴장을 내려놓는 일이 참 좋았다.


 

 12주의 수업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말로만 들어 본 유체이탈!!

최면을 진행하며 강사가 작은 종이에 단어를 두 개부터 네 개 다섯 개 늘려 가며 수강생들에게 맞춰보도록 했는데 놀랍게도 내가 1등을 하였다. 그러자 강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직업이 형사세요?” 이런 정도의 촉은 대체적으로 그런 직업군이 많다며….. 그렇지, 뭐, 내가 하는 일이 취조하고 조사하고 형사랑 비슷하긴 한 것 같다.ㅋ 

마지막은 전생 체험인데 긴 시간여행을 하기 때문에 계단을 내려가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 간다.

10층, 9층, 8층...... 1층. 땡! 

전생의 나는 어린아이였는데 원시 부족의 장자로 절대 권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이 드라마처럼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ㅎㅎ


 시험까지 무사히 통과한 후 <최면사 자격증>을 딴 나는 가족들을 상대로 연습을 했지만 최면을 거는 일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격증을 책상 서랍 제일 위 칸에 잘 보이도록 넣어 두고 아이들을  지도를 할 때면 한 번씩 서랍을 쓱~ 열었다. 아이는 빨간 컬러에 독특한 글씨체의  자격증을 무심결에 들여다보다가 내용을 알고는 움찔 긴장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선생님~ 3문 여자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나요” 신고를 받고 달려갔더니, 화장실 두 칸에서 연기가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 “ 야, 문 열어!”  “뭔데?”  “샘이야. 이미 끝났어. 빨리 나와라” 하니 문이 열리는데 너구리 열 마리쯤 잡은 냥 두 칸 다 연기로 자욱하다. 한 칸에 두 명씩 총 네 명이었다. 아이들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따라! 하고 앞장서서 가는데 뭔가 쎄~한 기분이 들어 돌아보니 아이들이 다 도망가고 없었다. 구경하던 애들이 수군거리는데 구질하게 “너네 아는 애 없었어?" 라고 물어볼 수도 없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고 있었기에  '나는 전혀 개념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당찬 모습을 연출하며 뚜벅뚜벅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오자마자 급히 사진첩을 꺼내 들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한 명 한 명 전교생 얼굴을 관찰했다. 아는 애 같기는 한데....... 알쏭달쏭.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해결해야 돼. 못 찾으면 끝이야...... 중얼거리며 사진첩을 사전 찾듯이 뒤졌다.

퍼뜩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 중 한 명이 막 쌍꺼풀 수술을 한 것처럼 자국이 찐했다는 것이었다.

되풀이해서 찾다보니 그런 눈이 있었다. 

2학년 12반! 김솔희!

담임한테 확인하니 겨울방학 때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아직도 자리를 못 잡고 부어 있다고 했다. 흡연자인 것도 맞고......,

(아, 제발~~~~~~~~~)

5교시 예비 종이 울리고 나는 2학년 12반 교실 앞문으로 가서 가만히 아이들을 째려보며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두 명의 아이가 쭈볏쭈볏 나오더니 ‘죄송해요’ 한다. (나는 속으로 ‘살았어’ 하며 쾌재를 불렀다.) 단호한 표정으로 “나머지 둘 데리고 선도실로 와!” 하며 자리로 돌아왔고, 네 명의 여학생을 모두 검거(?)할 수 있게 되었다.

휴대폰도 없던 시기인데도 5교시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영웅이 되어 있었다. ㅋㅋㅋ


(교육 활동 중에 최면을 직접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최먼을 한다는 소문 덕분에  분위기를 압도하는데는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최면 공부 중에 흥미를 갖게 된 심리와 뇌과학 분야의 책을 자주 으면 전문적 지식도 향상되었고, 나 또한 의식적인 릴랙스를 습관화 하며 나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라면 무엇이든 배우겠다는 각오와 열정이 있었다.

퇴근 후에도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곳이면 달려갔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가 그랬다. 가출한 학급 아이를 찾기 위해 돌도 안 된 자신의 아기를 업고 동네 곳곳을 찾아다닌 선배도 있었고, 새벽 2시에 경찰서 호출을 받고 달려가 학생의 보호자 역할을 대신한 후 집에 데려와 재우고 먹이기까지 했던 선배도 있었다.

좋은 의도는 좋은 의미로 받아주는 그런 시절이었다.




 <득천하 영재 이교육지(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의 즐거움과 사명감은 사회적 시선이 변화하면서 무기력과 자괴감으로 이어졌고, 이제 교단은 “아무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만연해지는 절망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는 말이  당연한 말임에도 오로지 학생에만 올인하는 사회적 인식과 시선이 하루빨리 전환되길 간절히 바란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교육 관련 사건 사고에서 늘 교사는 갑의 취급을 받으며 책임과 비난을 떠안게 되지만 정작 교사들은 스스로를 "을 중에 을"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환경 탓에 교사들은 더욱 위축되고 교육적 소신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게 된다.

 교사들조차  '적당한 힘 조절 안전거리 유지'가 현명한 교직생활의 기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같지 않은 세상이라고 한탄들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생님들은 이 순간에도 한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찾고, 배우며,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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