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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y 16. 2024

담배 피운 자의 최후

남자  0.7mm 삭발, 여자 귀 밑 2cm 단발!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업무는 흡연 지도였다.

 흡연 지도는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진행된다.


<제 1단계: 적발 및 확인>


 교사나 선도부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학생들을 선도실로 데리고 오면 가장 먼저 손 냄새를 맡아 흡연 여부를 판단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나쁜 행동은 빠르게 진화한다.

호모 파베르라고 했던가? 학생들이 나무젓가락이나 집게 핀 같은 도구를 활용하게 되면서 손 냄새만으로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할 수 없이 입 냄새를 직접 맡아 흡연자를 적발해야 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하루 열댓 명 아이들의 입에 코를 들이대며 킁킁킁 개처럼 냄새를 맡는 일이란

정말이지 역겨움을 넘어서는 고통이었다.

쌔하고 매캐하면서 들~큰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야리꾸리한 냄새란……,

하지만 한 명이라도 놓치면 안된다는 일념 하나로 나는 유연한 포커페이스를 지켜내며 일을 마무리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까지 열심히 했지?

싶기도 하지만 그 당시 만큼은 매우 비장한 각오로 했던 것 같다.ㅋ)


요즘은 흡연 측정 기계가 있어 음주 운전 측정을 하는 방식과 같이 흡연 여부를 판단 한다.

교육 환경이 선진화 되어서 이러한 기계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있지만 빨간색 ‘말보로’ 정도는 펴줘야 좀 노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졌던 아이들 사이에 언제부턴가 전자 담배가 부의 상징처럼 되면서 전담으로 갈아 탄 아이들이 많아진 탓에 냄새와 연기 같은 단순 정보로는 흡연 여부를 잡아내기가 어려운 현실이 된 이유도 있다.

기계의 성능이 꽤 괜찮아서 흡연 시간 차에 따라 5, 7, 12 등 수치가 달라지는데 보통 7부터 흡연으로 간주를 한다. 현장범이 아닌 이상 7이하는 대부분 훈방 조치로 끝낸다.

학생의 건강과 위생을 고려하여 매년 학기 초에는 한 개당 50원 하는 일회용 종이 대롱도 아낌없이 비축해 두고 최대한 학생들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조사를 진행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와중에도 일부 약은 놈들은 혓바닥으로 구멍을 막고 불기도 하고 나름의 수법들을 사용해보지만 정보력에 있어서는 선도실을 따르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뽀글이는 측정에 앞서 아이들에게 혓바닥을 먼저 내밀게 한 후 대롱을 혓바닥 위에 올려 주는 조치를 먼저 취한다. 그리고 깊숙이 들이 마신 숨을 천천히 불어 내도록 지시한다. 더,더,더, 더더더더……. 뽀글이의 목소리가 커지면 아이들은 높아지는 목소리만큼 세차게 대롱을 불어댄다. 때문에 측정을 끝낸 아이들 얼굴은 하나같이 시뻘개지고 숨을 헐떡거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매일 반복되었다.


<2단계: 취조 및 진술서 작성>


 확인이 끝나면  취조를 통해 자백을 받고 추가 공범자를 찾아낸다.

폈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해진 결론을 알기 때문에 시간을 끌지 않고 자백을 한다.

네"

 "저는 지금 핀 거 아닌데요. 어제 밤에 핀 건데요. 저는 망만 봐 준건데요.”

이런 아이는 대부분 아버지가 선도실보다 더 무섭거나 좀 비겁한 인성을 지닌 경우가 많다.

“얌마! 망 봐주는 것도 흡연으로 간주되는 거 몰라? 그게 바로 흡연 방조죄다.! 방조죄! 알았어?”

윽박질러 보지만 애매한 상황이다.

수치도 애매한데, 치사하게 인정도 안한다.

정황상 같이 피려고 간 게 분명한데......,

그냥 풀어주면 순식간에 소문나서 너도 나도 버티고 볼 텐데.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뒤탈이 없어진다.

재빨리 아래위 스캔을 뜬다. 바지 주머니가 살짝 불룩한 느낌? 그냥 느낌인데 밑져 봤자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질러본다

“미처 못 폈을 뿐이지 안 걸렸으면 폈겠지. 야, 내놔 봐, 오른쪽 주머니. 뭐야? 뒤져서 나오면 가중처벌인거 알지?”

멈칫 했던 녀석이 체념한 표정으로 오른 쪽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놓는다.

어디 고이 껴 놨다 들고 나온 건지 동그란 세이프가 납작해져 있다.

(내 촉이 이 정도라니?….. 나도 내가 무섭다ㅜㅜ.

미약한 나에게 이런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인정하면 다음 단계는 진술서 작성

“자, 여기 진술서, 위에 조그만 글씨로 뭐라고 써 있냐?”

“6하 원칙에 입각해서 병렬식으로 쓸 것.”

“그렇지. 6하 원칙이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누가, 왜.  알지? 말 맞추다 걸리면 가중 처벌이다.

 지도실로 들어가서 곧바로 쓴다 실시!"


<3단계: 신고식 >


 3단계는 신고식인데 우선 맞고 시작한다.

사랑하는 만큼(?) 격하게 빳다 5대를 때리고 이어 삭발식을 진행한다.

(90년 대니까 가능한 일이지 요즘 세상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규정에 따라 남자는 0.7mm 삭발, 여자는 귀밑 2cm 단발이다.

처음에는 집에서 자르고 오도록 했는데, 한 번 시도해 봤던 키다리의 커트 솜씨가 예상 외의 반응을 얻으면서 선도실에 커트 도구를 구비해서 잘라주게 되었다. 키다리의 커트 실력은 일취월장하면서 퇴직하면 미용 봉사를 하겠다는 목표도 가지게 되었다.

삭발은 바리깡으로 힘 조절만 잘 해서 밀면 되는데, 일자 단발은 좌우 대칭 낮추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닌지라 키다리는 단발한 명을 마무리하고 나면 진이 빠져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쉬어야 했다.

 (언제는 완벽한 대칭에 너무 욕심을 내다가

 완전 뚜껑 머리가 되는 바람에                                    통곡을 하며 돌아간 여학생도 있었다.)


정신없이 밀다 보면 미는 도중에 바리깡이 방전되는 바람에 머리카락의 반은 밀고, 반은 수북한 채로 돌아간 남학생도 있고, 옆 동네 중학교에서는 학주가 문제아 머리를 자르다가 귀까지 잘랐다는 소문도 떠돌기도 하는 등 별의별 일들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학교에서 머리를 자른다는 그 자체가 큰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남학생이 있다.

그 해 겨울은 혹독한 한파로 연일 최저기온을 경신하던 때였다.

한 선생이 담배 소지로 걸린 자기 반 아이의 머리를 직접 밀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체구가 작고 얌전하게 생긴 남학생은 말없이 대형 거울 앞에 앉은 후 눈을 감았다.

커트 보를 두른 후에도 담임은 연신 잔소리 비슷한 훈화를 쏟아냈다.

이어 바리깡 돌아가는 소리가 나나 싶더니 담임의 난감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이쿠’ 소리 나는 쪽을 확인한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바리깡은 주둥이 쪽을 돌려서 길이를 세팅한 후 잘라야 하는데, 이 담임이 0.2로 맞춰져 있는 기계를 확인도 안한 채 미는 바람에 아이의 머리카락 반 정도가 날라가 버려 앞두상에 바리깡 폭 만큼의 새하얀 길이 나버렸다. 머리를 다시 붙일 수도 없고 이 추위에 어쩌자고 저런 실수를……,

눈을 떠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아이는 망연자실하여 눈물만 줄줄  흘렸다.

사고를 친 담임이 소심하게 “어쩌지?” 하자 남학생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그냥 다 밀게요” 했다.

나는 파르라니 깎인 그 남학생의 머리가 너무 가여워서 이례적으로 확인증을 발부해 주었다.

                    

< 확인증 : 상기 학생은 특별한 사유로 인해 한 달 동안 비니 착용을 허용함 >





에필로그:

학생 A:  “마녀 졸라 무섭지 않냐?  나도 주머니에 담배 있는 거 깜빡하고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아 짱난다.”

학생B:  “ 야, 엊그제 준호도 마녀한테 걸렸잖아. 지하철에서 메트로신문 갖고 오면서 거기 사이에 담배 두 까치를 숨겼대. 근데 교문에서 마녀가 자기가 넣는걸 본 것 같이 신문만 쏙 빼서 뒤졌다잖아.   쩔지?”

학생 A: : “대박. 그래서?”

학생 B:  준호 지금 봉사 살고 있잖아.    쫙~~

 째려보는데 뭔가 알고 보는 것 같은  

 그냥 눈빛이 재수없어.

 넥타이 한 번 걸린 것도 절대 안 까먹는대.

 선배들이 그러는데 최면 자격증도 있다던데.       무당 딸 아니야?

학생 A: 그럴 수도......,


  두 놈은 작은 소리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주억주억 진술서를 써내려 간다.

마녀는 아이들 대화가 너무 귀여워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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