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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y 05. 2024

억울한 이유로 마녀가 되었다.

눈꼬리 땜에 선도실로 가라구요?

  나의 별명은 마녀다. 아니 마녀였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도실 마녀’였다.

학교를 제대로 다닌 사람이라면 선도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26살 아주 혈기 왕성한 나이에 남녀공학고등학교에 임용이 되었고, 이내 선도실로 스카우트되었다. 내가 선도실로 끌려간 이유는 단지 눈꼬리가 올라가고 나이가 어리다는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경찰서 강력반 형사로 발령이 난 줄 착각할 정도로 적응이 안됐다. 

탐문수사. 취조. 진술서, 공범, 민증위조. 절도. 증거물 취합. 현장보존. 등등 하루 종일 오가는 말까지도 교사의 언어가 아니었다. 조금 까불기는 했지만 아주 평범한 모범생으로 학교를 졸업한 나는 난생처음 부딪히는 선도실의 살벌한 일상에 관자놀이 욱신거리고 명치끝이 아플 정도로 긴장된 하루하루를 보냈다. 종일 센놈들한테 기가 빨려서 그런지 퇴근하면 너무 배가 고파서 고봉밥을 퍼먹고는 기절하듯 잠들곤 했다. 



  1년 중 선도실의 대목은 3월이다. 3월 초 선도실은 격투기장을 방불케한다. 얼마나 빨리 기선을 제압하는가에 따라 한해 농사가 결정되기 때문에 한치라도 빨리 고지를 선점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허투로 지나갈 수 없으며 누구 하나 봐주고 넘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3교시 종이 울리기도 전에 정년을 앞둔 국사선생님이 한 남학생의 뒷덜미를 잡아 끌며 들어오셨다. 수업 중에 자는 걸 깨웠을 뿐인데 성질대로 난동을 부리다가 막판엔 선생님을 갈아 마시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손까지 부들부들 떨며 사건을 전달하는 국사선생님에게서 학생을 인계받은 학생부장이 남학생에게 낮은 말투로 물었다. “네가 선생님을 갈아마신다고 한 게 사실이냐?” 했더니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답했다.

“아니요…..,

으깨 버린다 했는데요.”

 선도실은 이런 곳이었다. 일말의 기대가 쉼없이 무산되는 곳. 




  그래도 30년 전에는 꽤나 인간적인 온정이 있었다.  진정으로 반성하는 기색이 보이면 잘 타일러서 엉덩이 한두 대 때려서 돌려 보냈고, 한 대 맞고 인생의 위기를 벗어나게 된 아이는 그만하게 끝난 것에 진심 기뻐하며 자기에게 자비를 베푼 선생님을 보면 멀리서도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지도를 계기로 아이를 알게 된 교사들은 아이를 보게 될 때면 근황도 묻고 격려도 하면서 관심을 표현해 주었고, 이러한 선생님의 소소한 칭찬과 응원에도 아이들은 큰 용기와 희망을 가지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의 선도실은 그런 인간적인 교감을 기대하기는 힘들어졌다.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지도하다가는 말 꼬리나 잡히고 민원을 받기가 십상이다. 

신체 노출이 너무 심한 옷을 입은 여학생을 지도했던 새내기 기간제교사가 그 여학생의 아버지로부터

   “부모도 뭐라고 안하는 걸 선생이 뭔데 지적질이야? 우리 딸이 너무 수치스러워 울었다는데 

    내가 뚜껑이 열리더라고…..,내가 당장 교육청에 신고해서 당신 인생 쫑내줄테니 각오해라”

는 항의 전화를 받고 멘탈이 나가버렸다. 곤경에 처했던 새내기 교사는 학생의 담임과 교감의 중재로 여학생에게 정중히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그 일 이후 억울함과 두려움에 힘들어하던 새내기 교사는 사표를 내고 교직을 떠나 버렸다. 이러한 일들 때문인지 요즘 교사들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만연해지는 것 같다. 애착을 가지고 지도하다 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사실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애써 거리두기를 하는 교사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유난히 학생들과 부딪힘이 많은 선도실 근무도 기피 업무가 되어 버렸다 


  나는 선도실의 사건들을 조사하고 처리하면서 학교의 생리와 교사의 사명감을 배워 나갔다. 학교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거쳐야 하는 작은 국가나 다름없다. 학교에서의 생활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법, 일 처리의 융통성, 이타심과 배려심 그리고 법질서를 지키는 양심.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얼떨결에 선도실에 발령 받고 헤매던 나 또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가면서 서서히 강력한 아이템을 가진 마녀로 성장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다른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선도실에서 나는 인생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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