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지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균형이다. 연애할 때 남녀가 밀당을 잘해야 한다고 하는데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도 그렇다. 밀당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 핵심이다. 선도실에 오래 근무한 덕에 32년 간 교직 생활 중 학생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선도실에 있다는 자체가 바로 힘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선명한 상처로 남은 한 아이가 있다. 한 없이 불쌍하고 딱한 아이지만 한 없이 나의 약한 부분을 가지고 놀았던 아이. 바로 오하은이다.
오하은 일진 중의 일진으로 입학 전부터 학교를 시끄럽게 하였다.
오하은은 이 구역에서는 전설적 인물로 중학교 때부터 보호관찰 대상으로 소년분류심사원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흡연, 음주, 절도는 기본이고, 집단 폭행에 신체 동영상 유포로도 처벌받은 적이 있고,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사건은 놀러 갔던 친구네 집에서 허락 없이 친구의 모자를 쓰고 나오다가 잔소리를 하는 친구의 할머니를 때려 전치 3주의 진단을 받게 되면서 8호 처분을 받았었다고 한다.(이 모든 내용은 본인의 이야기로 알게 된 사실)
이 아이는 말로만 들어도 내가 만난 학생 중 단연 최강이었다. 아니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최상의 악이었다.
선도실에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예의주시하며 오하은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왜냐하면 이 아이 때문에 입학 전부터 전학을 가고 싶다는 신입생이 있을 정도로 공포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에 우리는 책임지고 이 아이의 힘 아래 아이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방어해야 했다.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만난 아이의 모습은 의외로 작은 체구의 예쁘장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왼쪽 뺨에 칼자국 같은 길고 가느다란 흉이 나 있었다. (칼침을 맞았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고양이한테 긁힌 자국인데 레이저 치료기간이 오래 걸려 아직 흉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었고, 눈빛도 거침이 없었으며 늘 들어오던 내용의 욕인데도 이 아이의 입을 거치면 찰싹찰싹 등짝에 와서 붙는 것 같은....., 느낌 자체가 남다른 아이였다. 발목에 장미 문신을 하고, 찍찍 신발을 끌면서 복도를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 수시로 ‘콰악, 콰악’ 소리를 내며 가래침을 뱉는 모습은 한 마리 살쾡이를 연상케 했다. 오하은이 지나가는 곳에는 홍해가 갈라지듯 아이들이 움칠거리며 비켜 갔다. 보란 듯이 집업의 앞 지퍼를 가슴골이 훤히 보이게 내려 입고는 사람을 아래위로 훑으면서 다니는데 이런 생활을 꽤 오래 즐기며 살아온 듯 익숙해 보였다.
입학과 동시에 오하은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선도실로 끌려왔다. 처벌 항목은 대부분 불손한 언행이었다. 선생님이 지도하는데 욕을 했다면 데리고 오면 오하은은 " 아, 씨. 아니라고요, 욕 안 했다니까요?"라며 부정부터 했다. "아, 씨??" "아, 죄송해요. ㅎㅎ 제가 습관이 돼서 ㅎㅎ." 이러면 나는 처벌의 명분이 사라진다. " 말은 자기 감정을 그대로 전하는 거니까 앞으로는 신중하게 말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해. 예민한 상황에서는 특히 오해의 소지가 크니까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고. 알겠어?""네네" 선도실에 오면 온갖 예의를 다 갖추며 성심을 다해 지도에 집중을 하니 지도 교사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 내가 아까 너 지도할 때 욕했잖아. 내가 분명히 들었다고. 아 씨발~ ★나. 했어 안 했어. 그것도 한 번만 한 게 아니라니까?"
"절대 아닌데요. 제 입이 증거거든요."
" 와~ 이렇게 뻔뻔한 애는 첨 보네.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을 해? 분명히 욕을 했다니까. 태도도 얼마나 불손한지, 삐딱하게 서서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한마디도 안 지고 따박 따박 말대꾸를 해요. 혼내는데 웃기까지 했다니까."
오하은.
약한 자에겐 한없이 잔인하고,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한 정말 교활한 아이였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궁여지책으로 성가신 절차를 거쳐가며 교칙에다 불손한 언행(혼잣말인 양 교사에게 욕하는 행위 포함)이라는 구체적인 항목까지 넣게 되었다.
아이를 지도하다 보면 그 아이의 사정이나 환경, 더 나아가 깊은 비밀이라도 공유하게 되면 그 아이가 한없이 이해되는 상황이 생길 때가 있다. 오하은의 경우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고, 오히려 저 정도라도 살아 주는 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쓰였다.
오하은의 가정사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처참한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조폭 조직원인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가출을 했고, 자신은 시설에 맡겨졌다고 한다. 거기서 다섯 살까지 크다가 시골에 있는 먼 친척의 집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는데 그 집 아들한테 오랜 기간 성추행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서울에 자리를 잡으면서 서울로 왔는데 아버지와 둘이 지낸 지는 10년도 안 됐다고 한다. 아버지가 승부욕이 강해 절대 맞고 다니면 안 된다며 덩치가 작은 자신을 위해 다양한 무술을 배우도록 하여 태권도는 기본이고 무에타이까지 배웠다고 한다. 그 덕분에 자신은 지금까지 손해 보고 산 적은 없단다.
한 번은 자기소개서를 쓰며 '인생에서 가장 기억나는 일화'를 쓰라고 했더니 '6학년 때 나한테 욕한 친구가 조회대 아래에 서 있는 걸 보고 숨어서 돌을 던졌는데 돌에 맞은 친구의 머리가 깨져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을 보고 도망쳐 왔다. 완전범죄라 생각했는데 2층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신고를 해서 합의금과 병원비를 꽤 물어 주었다. 재수가 없었다.' 라며 범죄를 영웅담처럼 써 놓은 것을 혼자 읽으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교사에게 대드는 것 외에도 중식시간에 좌석 문제로 사소한 시비가 붙자 식판을 상대 학생의 머리에 부어 그 아이의 온몸이 음식으로 뒤덮이는 엽기적인 일을 벌이는 등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 오하은의 벌점은 순식간에 60점이 되었다. 교칙에 따라 사회봉사 처분을 받게 되면서 처음으로 아이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오하은처럼 작고 깡마른 데다 얼굴이 병자처럼 까만 위인이어서 조폭이 맞나 하는 의심이 생겼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와의 상담 결과 오하은이 말한 이야기들은 반은 맞고, 반은 거짓말이었지만 반만 맞는 그 이야기라도 너무 가여운 과거를 가진 그 아이에게 나는 마음이 많이 쓰였다. 오하은은 내가 관심을 가지니 틈만 나면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이거 실화야?" 하며 아이를 위로해 주고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늘 마무리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더 길다. 절대 희망을 잃지 말고 비전을 가져라. 선생님이 끝까지 힘이 되어 줄게."라는 무모한 책임 의식과 끝없는 지지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실제로 교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그 아이에게 베풀어 주었다. 손수 만든 도시락부터 출출할 때면 찾아와 챙겨가는 간식, 다양한 경로의 외부 장학금 등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잘잘한 잘못에 있어서는 요샛말로 적극적 쉴드도 쳐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아이의 보호자로 자리매김해 갔다.
<이보다 더 불쌍할 순 없다.>
당시는 이 아이를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리 잡게 돕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나의 사명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실망스러운 일이 생겨도 작은 밀알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위반 속도는 나의 대응 속도보다 빨라 6월이 지나기 전 벌점이 100점이 넘었고, 흡연 적발도 6차에 이르게 되어 어디로 접근하든 학교를 잘릴 상황이 되었다. 내 마음은 많이 힘들었는데 이 아이는 전혀 위축되지도 않고 일상을 누렸다.
선도위원회를 앞두고 3교시 중간에 돌아다니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 하은아. 뭐야. 곧 선도위원회에 회부되는데 이러고 다니면 어떡하니. 학생의 태도는 판단에 있어 엄청 중요한 부분이야. 위원들 눈에 네가 반성하고 있고 변화하기 위해 애쓴다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해야지." 하니 "샘, 지금 상담해 주면 안 돼요?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한다. 나는 교과 선생님께 상담 확인서를 제출하고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하은은 내가 내어 준 과자를 냠냠 먹으면서 "샘, 저 짤려요? 100 퍼 짤리는 거예요?" 한다.
"선도위원회에 가면 100% 잘린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결과는 나와 봐야지. 99% 잘린다고 해도 1%는 희망이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많은 애들이 1%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야. 그니까 너도 이 시간 이후 성실하게 생활하도록 해." 하며 희망을 놓지 않기를 신신당부하였다.
다음 날 나는
- 교사가 학생한테 100% 잘린다고 협박을 했다. 학생의 희망을 꺾는 교사가 진정한 교육자냐-는
내용의 민원이 교육청에 접수되었다는 통보와 함께 답변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는 A4용지 2장에 걸친 답변서를 구구절절 작성하면서 그 민원인이 누구인지 알기에 정말 처참한 마음이 들었다. 교육청의 결과 통보보다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회의가 들어 더 괴로웠다.
내가 미숙했다. 거리를 지키지 못하고 인정에 몰입되어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아이에게 상처를 받고 교사가 쓰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너무 평범하게 살아왔고 그런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주변 선배들이 이따금 충고도 했었던 것 같은데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순진했다.
오하은은 선도위원회에서 제적 판결이 났지만 한 학생에게 집중해서 징계를 주었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결과 판결 이행까지 시간을 벌게 되면서 계속 학교를 드나들었다. 나는 오하은의 이름조차 듣기가 싫었다. 감정 컨트롤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밉고 원망스럽고 괴로웠다.
버티던 오하은은 어이없는 사건으로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체육대회 때 자발적으로 참가한 계주 경기에서 허리춤에 숨겨 두었던 담배가 스타킹 안으로 흘러내리게 되면서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담배 적발이 이루어졌고, 벌점 102점에 흡연 7차 적발이라는 퍼펙트한 결과를 채우게 되면서 스스로 자퇴원을 제출하였다.
오하은이 떠나면서 긴장과 스트레스는 줄게 되었지만 그 아이가 남긴 수많은 상처와 악담은 아직도 가슴을 콕콕 찌른다.
-선생님 같은 사람한테 뭘 배워요. -배우고 싶지 않다구요. 나한테 가르치려 하지 말라니까요. -녹취한 거 공개해 줄까요? 세상이 누구 편드는지. -내가 자살하면 선생님 때문이라고 뉴스에 날거예요.
가장 마음을 때리는 말은 이것이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그래요?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는것 같은데, 그 때는 뭐가 그렇게 불편하고 불안했는지.....,
그냥 내가 한 행위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나든 그 아이는 약자이고, 나는 강자 편에 있으니 세상이 나만 공격할 것 같아서 무서웠던 것 같다. 교사에게 편견을 가진 현실을 알기에 상상만으로도 두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2의 오하은, 제3의 오하은이 생겨나고 있지만 교사를 보는 시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교사끼리 얘기하다 보면 초등은 초등대로 중등은 중등대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교사들도 놀라게 되는 사건과 민원. 그래서 교사들은 더 힘들어지고, 마음을 닫아가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