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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Aug 08. 2024

흑역사지만 괜찮아.

샘~ 울었어요?

 "샘~~~ 안녕하세요?"

등 뒤에서 굵은 남자 목소리와 함께 진한 향수 냄새가 확 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신재범이다.

"어! 그래그래.  어쩐 일이야? 잘 지내지?"

"네. 저 지방에 취직해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서울 온 김에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가려구 들렀습니다."

하며 커피를 내민다.

"여기 아이스라떼. 샘 라떼만 드시잖아요.ㅎㅎ"

"어머나, 고마워라. 그걸 기억해?"

"그럼요. 샘이 담배 냄새 싫어하셔서 향수도 뿌렸슴다."

"어이구....., 끊으면 좋을텐데....뭐 좋은 거라고 아직도 피고 있냐? 근데 향수 너무 뿌렸다. ㅋㅋ"

"아. 네 저도 좀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하 하하~~~

주변 선생님들도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아이. 정말 나를 힘들게 한 아이였다.

머리가 뛰어나고 말발도 좋아서 따박따박 한마디도 지지 않고 잘 받아치는 아이라 지도할 때마다 힘에 부치는 아이였다.

엄마 아빠 모두 반듯한 교사였는데 애 하나 때문에 오랜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현재 엄마는 유방암에 걸려 휴직 중이고, 아버지도 갑상선 질환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공부 안 하고 밤새 놀러 다니는 것만으로도 못 봐주겠는데 분노가 치밀면  13층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다리 한쪽을 올리고 뛰어내린다는 난동을 부려  경찰이 출동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그런  아이를 말릴 때마다 자칫 실수로 눈앞에서 아이를 잃을까 봐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기를 수차례....., 아이의 행패에 지친 엄마는 이젠 같이 죽는 것 밖엔 방법이 없겠다며  눈을 꾹 감고  외면해 버렸더니 몇 분도 안되어 슬그머니 다리를 내린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엄마는 자신의 이 결단이 가족들을 지옥에서 건져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후로 뛰어내리겠다는 협박은 멈췄고 엄마도 '그래 살아만 있어 주라.' 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살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대안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았기에 정규학교에 등교하는 것만으로도 서울대 다니는 것보다 기쁘다고 하는데 마음이 아팠다.

얘기를 들어보니 신재범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아이였다.

초등 때는 올림피아드도 나가고, 미술영재로 뽑혀서 TV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는 잘난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저렇게 됐나요?"




 재범이 엄마는 처음 대면한 순간 '선생님'이라는 느낌이 확 오는 전형적인 교사의 외모와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아주 마르고 강단 있는 사람으로 일관성 있게 말하고 타협 없이 행동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재범은 엄마의 그런 단단함이 너무 징그럽다고 했다. 이런 엄마의  삶의 방식이 자유분방한 예술가 기질을 가진 재범이와 충돌하는 것 같았다.

스타일은 서로 맞지 않았지만 이 엄마는 자녀의 심리를 알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전문가와 상담도 많이 했다고 한다. 급기야 시골에 사는 친정어머니까지  올라와 함께 살며 육아를 도와주었고,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정신과 진료도 받고 있는데 신재범은 ADHD진단을 받아 약도 먹었다고 한다. 진료 초기엔 좀 나아지나 싶다가 최근에는 좀 컸다고 의사도 불신하고 약도 거부하니 방법이 없다고 했다. 여고에서 학생진로를 담당하는 아버지는 재범이 때문에  상담을 자주 받았더니 부부의 라포가 아주 잘 형성됐다고 하더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재범이는 교육청 시험에서 창의력이 상위 1%에 해당되는 아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그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을 받자  어떻게든 지름길로 끌어주기 위해 재범의 엄마는 모든 정보를 동원하여 아이를 케어했다. 애가 그림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이자 일찌감치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정한 후 아이의 기질 고려하지 않고 과하게 입시로 밀어붙였던 것 같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성향의 재범에게 그런 교육 방법은 오히려  독이 됐던지 언행이 거칠어지나 싶더니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질 나쁜 동네 형들과 어울리면서 흡연, 절도, 폭력 등 온갖 나쁜 짓들을 일삼으며 심각한 일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사건이 터지면 합의를 해야 하는데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은 협조를 하지 않으니 늘 재범이 부모가 모든 합의금을 내고 애를 쓰다 보니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서너 명의 문제아를 키우는 느낌이 들어 진이 다 빠졌다고 했다. 이 정도면 부모의  진심을 알아줄 법도 한데 이 녀석도 참 고집 센 아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찰이 나지 않으면 예의도 바르고 기본인성은 갖추고 있어 조심조심 가르치고 지도를 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수업 시간에  녀석이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나가는 거였다.

자는 걸 깨우지 않고 봐준 것도 어딘데 말도 없이 나가다니..!  

"야!  너 어디가? "

"야! 신재범!"

하니 갑자기 탁 돌아서며

"왜요? 신재범 불렀어요? 신재범 뭐요? 어쩔 건데요?" 

느닷없는 반응에 나는 이게 자다 깨서는 미쳤나 하다가 그 애의 눈을 보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짜증이 잔뜩 차있는 것 같은.......,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엄연한 수업 시간인데 이런 태도를 그냥 지나가 주면 내 권위에 큰 상처가 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더 강경한 어조로

"뭐야? 너 지금 선생님한테 뭐 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아니요 그냥 짜증 나서 그러니까 냅두라고요 씨발"

"뭐라고? 야,  너  지금 일 크게 들지 마라. 이따 후회하지 말고"

"후회요? 후회할 놈이 이러겠어요? 그니까 상관하지 마요."

"감정이 나도 참을 줄을 알아야지. 지금은  수업 중이야. 고등학생이면 이 정도는 견뎌야 하는 거라고".

"이런 주저리주저리 도움 안 되는 얘기 듣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서시? 이런 건 학원 가면 하루 만에 책  권 다 배울 수 있거든요. "

"야. 어디 자다 일어나서는 난동이야?  학교가 공부만 하는데야?  기본을 먼저 배워야지! 싸가지없게!" 

 이럴수록 말을 참아야 하는데  나도 잠시 이성을 잃은 것처럼 다다다다  잔소리를 했다. 자극을 받은 녀석은 핑곗거리를 찾았다 싶은지 복도로 나가 유리창을 주먹으로 내려쳤는데, 세상에 그 큰 유리창이 주먹 한 방에 '와장창'  큰 소리를 내며 깨졌져 버렸다.  순식간에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황당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생각과는 달리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른 반에서 수업하던 선생님들이 달려 나왔고 연락을 받은  학생부 선생님들이  달려와서 신재범을 격리실로 데리고 갔다. 나는 달리 생각을 할 수도 없을 만큼 패닉에 빠졌고 선생님들 손에 이끌려 간신히 자리로 갈 수 있었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 나는 재범이 엄마와 통화를 했고, 신재범과 마주 앉게 되었다.

상담실에 마주 앉아 눈빛이 꺾인 아이를 보니 '이 아이 환자였지....., ' 하는 생각 들며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숨기지 않고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이는 연신 죄송하다고 했고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예의 바른 모습으로 사죄를 했다. 동료들은 교권위원회를 열어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정신과를 다니며 약도 먹는다는 아픈 아이한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출근을 하니 신재범의 엄마가 선도실 앞에 서있었다.  안 그래도 애처롭게 마른 몸인데 밤새 힘들었는지 얼굴이 창백했다.

'선생님 자식을 잘못 가르쳤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  이 와중에도 아이는 어젯밤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눈물로 아들대신 사과를 하는 그 속이 오죽할까 싶어 같이 울었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충동적인 행동 충분히 이해한다. 더군다나 정신과 치료 중인 아이니만큼 원만한 학교 생활을 위해  앞으로 더 치료에  힘써달라는 부탁을 하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재범이 자신의 SNS에 자기를 위너라고 하면서 선도실에서 센 척하는 여자 선생을 묵사발 냈다는 스토리와 함께 브이 자를  하고 있는 자기 사진을 올려 학교가 시끄러웠다. 애들이 자리로 와서 "샘 울었어요?" 물었고, 동료들도 "자기야 교실에서 울었어?"라고 수없이 물어와 '아니, 신재범이 무서워서 운 게 아니고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선생을 했나 싶은 자괴감 때문에 눈물이 났다"라고 시시콜콜 대답해 주어야 했다. 상황이 참 창피하고 곤란하며 귀찮게 되었다.

나는 신재범을 만나려고 교실을 몇 번이나 찾아갔고 담임과 친구들에게도 선도실로 오라고 부탁까지 해놨지만 신재범은 찾아오지 않았다. 학교에 오기는 하는데 2,3교시에 오거나 중간에 무단조퇴를 해서 지도가 안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에 교문지도를 하러 나가다가 땡땡이를 치고 나가는 신재범과 마주치게 되었다.

"학교 왔구나. 내 자리로 오라고 말했는데 못 들었었니? 지금 어디 가는 거야?"

하니 벙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땡땡이치는 중?"

뻘쭘하니 웃는다. 어차피 못 나가니 샘이랑 얘기 좀 하자며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도 학생한테 상처를 받는데 이번엔 상처가 컸다. 마음을  진심으로 전달했는데 말의 핵심은 무시하고 가십거리를 만들면 안 되는 거다. 당장은 네가 선생님을 망신 준 것 같고 우쭐할지 모르지만 그런 행동은 바람직하지는 않다. 등등 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를 최대한 관찰자 입장에서 전달하고자 애를 썼다. 어머니의 태도와 표정 말투까지 아주 섬세하게 전달하고 내가 느낀 점을 전하는데 이 아이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교육은 학생과 부모와 교사가 협력해서 이루는 것이니 나와 어머니는 최선을 다 할 테니 너 또한 최선을 다해주도록 요청을 했다. 나는 너를 여러 번 용서했다. 앞으로 한 번 더 이런 막무가내로 하는 행동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모기만 한 소리로 "네 "한다. 나가보라고 하자 나가면서 " 샘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꾸벅한다. 나와의 문제는 해결되었고 나는 여전히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신재범은 1학기를 넘기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학교에 나타난 것이다. 창원 쪽에서 인테리어를 하는 친척이 있는데 그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조만간 타일기사 시험을 볼 예정인데 무난히 붙을 것 같다고...

"그래. 잘하고 있구나.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길을 잃지 않도록 노력한다면 그 자체로도 대단한 거야. 가야 할 곳이 어딘지를 아는 사람은 좀 둘러가더라도 언젠가는 도달을 하게 되거든.

내가  네 인생에서 만난 한 어른으로서  티끌만큼이라도 힘이 되고 지침이 되는 선한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어디에 있든 항상 바르고 성실하게 살도록 해라. 늘 너를 응원하며 지켜볼게."

"넵 선생님. 꼭 좋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그래. 고맙다. 그리고, 담배는 좀 끊어 ~"


칠레에는 아카타마 사막이 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평균 강수량이 0이다.

하지만 이 사막에는 5년의 주기로 폭우가 쏟아지는데 비가 오고 나면 사막 전체는 야생화로 뒤덮여 꽃천지가 되어 버린다고 한다. 건조한 환경 중에 땅 속에 묻혀 휴면상태에 있던 씨앗과 구근이 홍수와 사태로 깨어나 일제히 개화를 하는 것이다. 어디에 그런 꽃들이 숨어 있다 올라오는지 모두가 놀라워한다. 아이들도 그런 것 같다. 메마른 사막 같은 시기를 지나기도 하지만 땅 속에 숨겨진 잠재력이 언젠가 단비를 만나면 순식간에 놀라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 개화의 시기는 다르지만 묻혀있던 씨앗이 세상에 고개를 내미는 상황을 지켜볼 때면 교사로서의 자부심과 대견함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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