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무슨 책을 읽을까?' 생각하고 있던 주말,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먼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작품을 떠올리며 종군기자로서의 작가를 경험해 볼까 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발표한 이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다른 유명한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에 나온 작품이기도 했던 <노인과 바다>를 손에 쥐고, 주말동안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너무나도 유명한, 바다위에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모습에 대한 이미지를 머릿 속에 저장해 둔 채, 이야기 속에서 전해지는 긴장감과 노인의 독백 등에 감정이입이 되며 흥미로움을 만끽한 시간이었다. 좋은 책은 최소 두번은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내, 커다란 물고기가 노인이 드리운 낚시바늘을 물고서 이어지는 그들의 사흘간의 여정! 그 기간 동안, 그의 온 삶을 살아왔던 어부로서의 노하우, 특히, 내가 얻으려고 하는 건 바로 앞에 있지만, '원하는 나'의 욕심이전에 '원하는 대상(여기서는 물고기)'을 보면서, 어느 때 내가 갖게될 지를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는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원하던 그 물고기를 낚아내는 노인의 경륜을 보게 된다. 마치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기회를 볼 수 있고, 때가 되었을 때 얻는 것처럼... 낚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지만, 낚싯줄의 팽팽함을 유지해야 하는 노인을 느끼고, 그것을 뱃머리가 아니라, 굳이 자신의 몸에 감아야 하는 이유도 보았고, 그래서 밤낮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물고기의 움직임을 읽어야 했던 노인, 때로는 신에게 의지해 기도하는 노인의 모습, 그리고 오로지 혼자서 지금의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그를 보면서, 이것이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얻고자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아닌가? 하는 연관성을 지어보기도 한다.
결국엔 물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길, 원했던 것을 얻은 기쁨도 잠시, 이제는 획득한 것을 지키기 위해 상어들과의 결투를 벌이는 노인을 보게 된다. 그에게 있던 작살이며, 칼과 같은 무기들도 접근하던 상어들에 의해 하나 둘씩 잃게 되고, 결국엔 부러진 키손잡이만을 움직여가며 육지로 돌아오게 된다. 물고기의 머리, 앙상하게 남은 뼈와 꼬리만을 남긴 채, 지칠 대로 지친 노인은 비로소야 천국을 선물하는 침대에 누워 깊은 잠을 갖는다. 노인에게는 잃은 것에 대한 안타까운 억울함이나 분노는 없지만, 아쉬움은 남아있다. 단지, 소년이 좋아하는 그 뾰족한 물고기의 창날부리, 배와 어구를 점검하는 페드리코에게 줄 물고기 머리, 그리고 식당의 어느 손님이 신비롭게 바라보는 뼈와 꼬리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노인은 다시 깊고 편안한 잠에 든다. 노인이 예전에 꾸었던 사자(Lion)꿈을 꾸면서... 혹자는 '사자'가 뜻하는 바가 그리스도교의 낙원이다, 또는 희망이다 등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아마도 이야기 중에, 노인이 힘을 달라고 하나님을 찾고, 성모마리아를 찾으며, 하지 않던 기도를 하는 모습으로써 종교적으로 해석하려 한 것은 아닐까 한다. 나는 바로 그 사자가 '아직까지는 놓지 않게 되는 살아가는 이유' 정도로 해석하며 나의 리뷰를 마치려 한다. '희망 혹은 소망'이 물질적인 욕망으로 빗대어져서 자신을 잃게되는 '텅 빈 자아'가 되지 않길 원하는 마음에서이다.
마지막으로, 독서 중에 다시한번 읽어 봄 직하여 밑줄 친 문장들을 아래와 같이 남긴다.
$2.50의 돈을 꿀 수 있다는 대목에서, "그러나 내가 꾸려고 하질 않는 게 문제지. 왜냐하면 처음엔 꾸어 오지만 다음엔 구걸하게 되니까?."
늙은이는 왜 그렇게 일찍 잠이 깨는지 몰라. 영원히 잠들 시간이 가까웠으니까 하루를 좀 더 길게 보내라는 걸까?
바다는 대부분 친절하고 대단히 아름답지만 갑자기 잔인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간혹 젊은 어부들 가운데서는 낚싯줄을 뜨게 하려고 찌를 사용했다든지, 아니면 상어의 간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모터보트를 사게 되었을 경우, 바다를 남성으로 생각해서 '엘 마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나 경쟁 장소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심지어는 적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큰 은혜를 베풀거나 간직하고 있다고 여겼다.
저 멀리 육지 위로는 구름이 산처럼 피어나고, 해안은 연푸른 산을 배경으로 한 긴 초록빛 선으로 보였다.
지금은 꼭 한 가지 일만 생각할 때인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내가 태어난 것이니까 말이다.
제 힘이 얼마나 되는지, 또 자기가 달아나기로만 마음 먹으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서는 안된다. 내가 저 고기라면 지금 당장 어떤 짓이라도 해서 요절을 내놓고 말 텐데. 그러나 고맙게도 고기들은 그들을 죽이는 우리 인간처럼 영리하지를 못하거든.
하여튼 이제 나는 너란 놈을 알 것 같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에게 알리고 싶구나. 그렇게 되면 너는 나의 쥐난 손을 보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큰일이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실제보다 더 강한 인간으로 보여지도록 해야지. 또 반드시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지금은 그냥 조용히 내버려 두고 해질녘이니까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어떤 고기든 해질 무렵에는 다루기가 더 어려운 법이니까.
순간 노인은 새로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기 자신과 바다를 상대로만 말을 하다가 진짜로 얘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