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를 읽고...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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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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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1954년, 63세의 스토너는 자신의 몸에 퍼져있는 '암'으로 생명을 놓기 전, 병실의 침대 위에서 위와 같이 홀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1891년 농가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를 도와 농삿일을 하다가, 1910년 대학에 입학한다. 애초의 계획과는 다르게, 영문학에 대한 열정에 빠진 스토너의 대학시절, 결혼생활, 그리고 교수로서의 그의 삶을 따라 가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그의 삶에서 경험한 전쟁의 흔적이나, 징병에 대한 사회적 선동, 그에 따른 젊음의 허무한 죽음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짧게 접하기도 한다. 곧, 작품 <스토너>에 담긴 그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그에게 이입해 보기도 하며,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어떤가하는 물음을 던지며 마지막의 여운을 곱씹게 한다.
소설 <스토너>에 대한 첫인상들은 어떨까? 소위, '답답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소극적인 것 아냐, 미래에 대한 계획도 그다지 없는 것 같고,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욕망도 없는 사람 아냐, 등등 겉으로 대충 보고서는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시시한 어떤 사람의 인생을 굳이 400여 페이지까지 담아 낼 이유는 뭐가 있나하며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과연,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재조명받아 유명해졌다는 뉴스없이, 온전히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라는 대열에 올라갈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가져본다. 그만큼, 개인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 보기보다는, 역동적이며, 빠르고, 뭔가 흔치않는 성공의 삶을 다룬 것이 성과나 결과중심에 익숙한 우리에게 더 강렬히 다가오지 않겠는가? 아이돌이든, 사업이든, 청소년의 꿈이든, 한 순간에 '빵' 터지는 '대박'의 사건에 이미 너무 익숙한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존 에드워드 윌리엄스'라는 작가의 음성을 들어보고 싶었다. 혹여, 그의 입으로 직접 <스토너>에 대한 언급이 있는 동영상을 찾으면 더 현실감을 느낄 수 있을테고 하면서... 왠걸, 동명이인의 작곡가의 것만 나오거나, 각 개인들의 <스토너> 작품에 대한 리뷰들로 youtube를 도배해 놓는다. 결국, 그의 동영상은 포기하고, 그나마 Wikipedia에서 공유된 그의 이력을 보며, 만족할 수 밖에... 그래도 사진은 볼 수 있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았는가. 2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 대학에서의 학사 및 박사학위 경력을 보니, 소설 속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에게 작가의 모습이 이입되지는 않았을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나는 농촌에서 자라지도, 농삿일을 어려서 했던 경험도 없다. 그래서 책에서 언급한 '윌리엄 스토너'에 내재해 있는 땅과 같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성향의 특징에 대해서 가슴으로 동감하기보다는 머리로 이해하며 넘기기로 한다. 그렇게, 그가 겪는 장애물이나 고난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을까를 가늠해 본다. 그렇게 '받아들임'을 생각해 보니, 이건 삶의 지혜 아닌가? 하는 평소의 소신이 뇌리를 스친다. 마치, 물줄기의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듯, 때가 되어 낙엽이 떨어지듯, 새찬 바닷물에 바위가 깎여가듯, 내가 관여하지 않은 그 세상은 자연스럽게 내게 오고, 가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토너, 그에게 왔던 장애물이나 고난을 계산해서 따지고 피하려고 하기보다, 오는 그대로를 감수하는 모습을 본다. 마치 땅이 모든 것을 스스럼없이 받아낸다는 그런 모습으로.... 흔히, 우리가 볼 때는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좀 더 신중하게 스토너를 바라보면, 그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욕구에 대해서는 그것에 무엇보다 충실하게 이행하는 그를 본다. 그의 행동을 옮기게 한 것은 바로 열정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가 모든 것에 우선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 예를 들어, 그는 농과대학 과정을 밟을 예정이었으나, 영문학을 선택하고 그것을 더 공부키로 했다. 이는 오로지 그만을 바라봤던 농부인 부모의 기대를 저벼린 것이었다. 자신이 공부하는 것에 열정으로 파고 들었다. 흔히, 출세의 도구로 공부하는 것을 보지 않고, 그 자체를 사랑한 것이다. 남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징병을 거절한다. 이는 앞으로 불리함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임을 불구하고... 자신이 첫 눈에 반한 여자와 결혼을 한다. 물론, 그 결혼은 실패였지만... '찰스 워커'라는 학생을 소신껏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또한 자신에게 닥칠 부당함이 명약관화했지만... 그리고 온전히 자신의 내면을 충족할 사랑을 한다. 겉으로 보이는 자신들보다 내면의 자신들에 충족하려 했다. 가르침 속에서 다시 자신의 공부의 열정에 빠진다 등등 스토너가 선택한 열정의 결과물들을 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무기력한 것 같은 그였지만, 그의 내면의 욕망은 모두 이루어내고 마는 그였던 것이다. 이럴 때, 바로 '외유내강'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스토너도 자신의 삶이 다할 때에 '넌 무엇을 기대했나?'하며 생각을 머금는다. 그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 그거면 되지 않는가? 그는 선택의 순간에 자기 내면의 소리에 충실했다. 그 결과가 초라해 보이건, 성공을 거두건, 아니면 심히 어려운 고난이 올 것임을 알면서도... 작가는 이런 스토너의 삶을 보여주면서, 내면의 자아에 충실하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한 건 아닐까? 만일, 나 같으면 어땠을까? 결과를 가늠해보고, 이익이 날 것을 선택하려 하지 않았을까? 내면의 자아는 원하지 않는데, 그것을 무시하면서 말이다. 전쟁에 참여하고 오면 출세의 길이 보장되는 것을 알기에, 내면의 자아를 무시하고 징병에 선뜻 나서는 것처럼... 결국, '무엇을 기대했나'라기 보다, '무엇에 충실했나'로 물어보면 나의 삶을 내가 산 건지, 아니면 내가 아닌 남의 시선에 맞춰 산 건지를 뚜렷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혹시 남의 시선에 맞추느라, 나를 잃어버린 그대가 있다면, 작품 <스토너>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보면 어떨까?
글을 정리하다보니, 작가의 메세지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뚜렷해지고 있는 기분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책 안의 놓치고 싶지 않은 문장들을 정리하며 이번 <스토너>의 여운을 정리하고자 한다.
가끔 몇 년 전의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면 마치 낯선 사람 같아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땅과 똑같은 갈색을 띠고, 땅처럼 수동적이던 사람, 부모도 거의 옛날의 자신만큼이나 낯설었다. 그는 부모에게 연민이 섞인 감정과 흐릿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나중에 징병이 시작되었을 때도 그는 징병유예를 신청하면서 이렇다 할 가책을 느낒 않았다. 하지만 나이 많은 동료들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고든 핀치)는 자동차가 바로 자신의 미래라는 듯이 냉정하고 신중한 눈으로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자신은 타인에게 진정한 친밀감이나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최종적인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저 둘만의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있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소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둘만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젠장, 자네 인생은 자네 것이 아니야. 자네 인생은..... 아, 빌어먹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이제는 슬론이 우려하던 전쟁의 폐해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처 슬론과 마찬가지로 그도 세상을 미지의 종말로 몰고 가는 비합리적이고 어두운 힘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무익한 낭비임을 깨달았다.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이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중략)-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