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고...
260여쪽의 길지않은 작품이다. 제목에서 이미 어떤 내용이 실려 있을지를 가늠케 해 준다. 작가 솔제니친 자신의 강제노역 수용소내 실제 경험이 작품전체에 담겨있고, 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으리라. 책의 뒷부분에 포함된 역자의 작품 해설에서는 당시 스탈린 체제의 비판, 혹은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폐해 등과 같은 정치적 또는 무력적 폐해의 실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미 우리에게 친근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과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려진 깨진 유리조각과 같은 인간 혹은 더 이상 내려갈 데 없는 존재를 볼 수 있다 하겠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빽도 없고, 장애도 없는 일반 남성으로서 경험했던 군대생활이 작품을 읽는 내내 떠나질 않는다. 물론, 수용소 생활의 감시와 비인간적 대접이 더할나위없이 비참할 테지만 말이다. 부대 전체가 같이 일어나 연병장에 집합하는 아침 점호, 때론 참호를 만든다고 열심히 언 땅을 삽질하던 때, 중대별 식사집합, 놓칠 수 없는 초코파이 등의 기억이 작품내 막사생활의 비참함을 좀 더 사실적으로 전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눈에 띄는 건, 사소한 것들에까지도 온갖 편법과 뇌물이 뒤섞여 있고, 또 나 자신의 생존이 먼저이어야 하는 우리네 인간의 약하지만 어쩔 수 없는 본질을 깊이 관찰하게 된다. 마치 <소년이 온다>에서의 고문장면을 보는 바와 같이... 그렇게 나약한 우리는 극한 수용소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생존하기 위한 극한 몸부림을 치게 된다. 같이 죽임을 당하는 목숨이어도, 나만은 조금이라도 늦게 죽임을 당하고 싶은 그런 본성을 갖고 있는 생명체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런 인간의 나약함을 이용해 지배하고자 하는 파렴치한 인간들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밑바닥까지라도 나약해 질 수 있는 생명을 가진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보자는 것이다. 이미 깨진 유리잔을 다시 붙힐 수 없는 영혼을 가진 그런 존재처럼 말이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말 그대로 아침에 눈을 떠서, 밤이 되어 잠이 들 때까지의 수감자인 슈호프(이반 데니소피치)의 하루동안에 벌어진 모든 일상을 담는다. 양보와 배려보다는 복불복의 생존이 먼저이다. 다른 반원들과 비교하면 내가 속한 반원들이 우선이지만, 나의 반원들내에서는 내가 먼저 우선이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내게 배고픔을 채우는 뭔가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배 곯아하는 다른 이가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그건 아는가? 생전 배 곯아 보지 않은 풍족한 자가 노숙자에게 음식을 나누는 것보다, 같은 노숙자들끼리 음식을 나누는 장면을 더 많이 본다는 걸... 이 또한 세상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새삼스레 세상의 울타리 밖에 존재하고 있는 약한 자들의 삶을 생각없이 지나쳤던 나 자신을 본다. 오로지, 권력있는 자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은 어느 한 줄의 독자평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오늘 하루가 힘들다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생각하면, 내게 감사해야 할 순간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무궁무진한 감사꺼리를 당연하게 지내왔다.
여느 때처럼, 책을 읽으며 동화되고 삶의 처절함을 느꼈던 장면들에 밑줄을 긋게 되곤 한다. 특히, 마지막의 한 패러그래프는 오늘 하루 슈호프의 일상이자, 이 책의 축약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일상이 반복되어 10년의 복역생활을 했다는 기록을 남기며 작품은 끝을 맺고 있다.
죄수에게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 그것은 옆의 죄수다.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배 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 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민족을 구별하는 따위의 일은 무의미한 것이다. 어느 민족인가를 떠나서, 항상 나쁜 놈들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발밑만 보고 걸어 다니란 말이지. 그러면, 어떻게 이곳엘 들어왔는지, 어떻게 이곳을 나갈 것인지 하는 생각을 할 시간이 없을테니 말이야.
공교롭게도 남의 것을 훔치는 놈일수록 땅을 파는 일과는 먼 놈들인 것이다.
강한 놈은 살아남고, 약한 놈은 죽는 법이다.
다른 놈들이 오늘 죽는다면 나는 내일 죽을 거란 말이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 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 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