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고래>를 읽고...
나의 읽어왔던 독서목록을 훑어본다. 주로, 제목만큼은 익히 들었던, 그만큼 꽤 저명하다고 평가되어왔던, 그러나 실상 읽어보지는 않았던 그런 고전들의 목록이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대략 3년전부터의 리스트가 정리되어 있는 걸 보니, 페이지를 넘기면서 약간의 대견함 내지 흐뭇함의 아지랭이가 주위에 피는 듯하다. 관성의 법칙인가! 해 오던 대로 나의 독서일기는 하나씩 채워지고 있다. 그렇게, 해가 바뀌면서 선택한 세번째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한국인 작가의 천명관 <고래>를 선택했다. 마침, 지역 독서모임 회원으로부터의 추천이 있기도 했고, '천명관'이라는 이름이 그리 낯설게 들리지는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을 보며, 몇 개월전 읽었던 <모비 딕>의 여운이 스쳐 가기도 한다. 책을 읽기 전, Youtube에서 천명관 작가가 직접 <고래>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고, 기대감을 품는다. 게다가, 이 지역 도서관에도 버젓이 한국어 책으로 대여가 가능하니, 마치 물결이 자연스럽게 흐르듯 어느새 내 손에 쥐어지고 책장을 넘긴다.
https://youtu.be/Rpf3BZDEPso?si=ngC2ivDxTWu9eLEN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읽는 독자의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530여페이지에 달하는 긴 이야기를 엮어놓은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논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럴만한 자격도 없는 나임을 먼저 밝혀둔다. 다만, 내가 읽은 독자의 것으로서의 작품 <고래>에 대한 감상을 독서일기라는 지면에 남겨볼까 한다. 왜 이렇게 서두에 주저리주저리 하고 있냐고...? 눈치빠른 독자는 이미 알아챌 만하지 않을까? 그렇다. 대.실.망.이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톨스토이의 <부활>을 이 앞전에 읽어서 그런가? 아니면, 이 책을 읽는 중에, <레미제라블>이라는 명작영화의 감흥에 심취해서 그런걸까? 2부의 후반부터는 자꾸만 언제쯤이나 이 책을 다 읽게 될까? 하면서 남은 페이지를 세어보기도 한 독서였다. 지역의 독서모임에서 이 책으로 다음 달에는 모임을 주최하게 될 텐데, 어떻게 진행할 지 대략 난감하기도 하다.
한국작품으로서의 잇점 중에 하나는 바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입에 찰싹 붙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읽는 동안에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하며, 다시 찾아볼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사용한 단어때문에 국어사전은 연신 찾아봐야 했다. 실생활에서는 전혀 듣도보도 못한 단어들을 왜 그렇게 자주 사용했던지... 의사전달의 목적보다는 국어 어휘력 테스트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소설 속 내용을 간략히 보자면, 엄마 '금복'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이어가고, 그에 이은 딸 춘희의 삶과 죽음까지를 담고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과정 중에 얽히고 섥힌 인물들, 사건들, 그리고 만화나 동화에서나 있을 법한 또는 실제하고는 거리가 먼 지어냈음직한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왜 그렇게 시도때도 없이 남녀간의 배를 맞추는 이야기를 삽입시켜 놓았는지... 마치, 액션영화 상영중에 질퍽한 sex scene을 굳이 끼워넣어 관객들의 집중을 놓치지 않으려는 인위적인 시도와 같이, 소설을 읽는 내내 너무나도 남발한 느낌을 갖게 한다. Youtube에서 보았던, 한국 전쟁후, 급변하는 사회, 정치적인 변화를 운운했던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차원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오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한국판 <백년의 고독>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즉, '마꼰도'라는 삶의 터전을 일구어가는 콜롬비아 배경의 '부엔디아'가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과 같이, '천명관' <고래>에서는 우리나라 배경의 '금복'과 '춘희' 삶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자에서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경험한다고 흔히 학계에서 평가하듯이, 후자에서는 신화적 상상력을 경험한다고 소개하고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후에 '춘희'가 홀로 벽돌공장에서 기거하다 아기를 낳는 모습은 2023년 발간된 셸리 리드의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나왔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우연을 보면, 아마도 다른 책에서 볼 수 있음직한 묘사이지는 않을까 하며 상상해 본다. 한 가지를 더 덧붙히자면, '점보'라는 코끼리와 벙어리인 '춘희'의 대화를 읽을 때는, '뭐야, 동화야?' 하는 불만이 뿜어 나오기도 했다.
주로, 책 속에서 작가의 철학적 사상이나, 인생에 관해 사색해 보기를 원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내게는 그닥 관심이나 애정을 갖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530여 페이지를 읽으면서도 하이라이트 해 놓은 문장들은 아래의 것이 전부이다. 이렇게 적었던 경우는 나도 처음이기에 약간 놀랍고 허무한 감정을 갖고 글을 마친다.
끝없이 달아나고자 했던 과거는 다시 고스란히 그에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무질서와 부조리로 가득찬 낯선 세계였으며 끔찍한 증오와 광포함이 넘치는 야만의 세계였다.
혼자 벽돌을 굽는 동안 그녀는 점점 더 고독해졌으며 고독해질수록 벽돌은 더욱 훌륭해졌다.
그녀(춘희)는 우리와 달랐으며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 고독속에서 살았다.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