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동물농장>을 읽고...
조지 오웰의 글은 항상 기억 속에 잔상이 남는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글을 쓰는 여러 목적 중에서, 정치적인 목적이었을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글이 쓰여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치에 관심이 있던 없던, 우리의 삶, 즉 인생의 여정에 어떻게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것은 인간으로부터 행해진 것이기에, 예나 지금이나 시대는 달라도 그가 적어낸 이야기가 작금의 현실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보여지는 것이 괘이하지는 않다. 아마도 인간이 존재하여 통치 혹은 정치라는 형태가 있는 한, 그가 얘기했던 모습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경각심을 던져주지 않을까? 이미 80여년 전의 <1984> 내용이 한국의 군부독재시절에서도, 그리고 지금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보여지고 있지 않는가. 그것이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라고 하든...
조지 오웰은 이 작품의 서문에서 전체주의의 폐단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는 소비에트 정권의 실태를 쉽게 보여줄 수 있었지만, 그가 살았던 영국에서조차도 이런 폐단의 모습이 보여졌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지금의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도 완벽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아직도 해결 못하는 빈익빈 부익부의 자본주의라는 나라에서조차도 이 전체주의적 발상이나 거짓은 유효하지 않는가. 지금 당장 뉴스를 켜서 전쟁뉴스를 보던, 국내의 정치뉴스를 보던, 속으로는 온갖 계략을 펼치며 겉으로는 순수한 척하는 정치인들의 낯짝들을 한번 보라. 여기저기서 거짓뉴스가 난무하며 어떻게든 자신이 주장하는 여론을 이끌어 내려하고,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여 기억을 훼손시키는 작태들을 보라. 바로 <동물농장>에서 나오는 나폴레옹, 스퀄러, 돼지들, 개들이 보이지 않는가. 물론, 작가는 당시 스탈린 독재체제에서의 잔인함, 위선 등을 담아내려고 했다지만, 이것이 지금의 민주주의라 불리는 곳에서도 자행되고 있지 않는가.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전이나 법적인 족쇄를 채우면서 말이다.
정말 세상은 악(惡)인 것인가? 아니 인간 자체가 바로 악(惡) 아닌가? 이야기 속, 목장 주인 존스의 불행을 본 이웃 인간들은 자기들에게 어떻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것인지를 궁리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의 동료들이 바로 이반 일리치 자리에 누가 앉을 지에 대해 머리를 굴리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동물농장>에서는 권력이라는 것을 손에 쥐고 행사하면서, 그것을 굳건히 하기 위한 각종 음모, 혐오, 두려움, 공포, 거짓, 선동 등의 구역질나는 모습들을 본다. 돼지 나폴레옹이 쫓아낸 스노볼을 모든 잘못의 원흉으로 몰아가며 선동하는 것처럼, 윤석렬이도 문재인을, 트럼프도 바이든을 힐난하는 모습을 이미 매스컴을 통해 많이 접해온 것처럼 말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계산에 의한 것이었는 지를 <동물농장>에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 나온, '나폴레옹 풍차'를 보면, 얼마 전 케네디 센터의 이름을 바꾼 행태가 보이고, 자신의 이름이나 상(象)을 만들어 내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쉽게 떠오른다.
<동물농장>의 이야기는 이미 대중적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이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제작된 것만도 여러편이 있을 정도이며, 아이들을 위한 교육자료로도 활용되고 있을 듯 싶다. 어떻게 보면, 공산주의 체제, 독재국가 등에 대한 교육적 소재로 활용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세계 2차대전 즈음의 공산주의 혹은 독재정권에 대한 교육자료로 군인들에게도 보급했다는 얘기를 언뜻 들어본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또한 자각해야 할 것이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직분을 맘대로 권력을 부리는 자리로 착각하는 나폴레옹같은 대통령을 이미 겪어보지 않았는가. 결국엔 돼지들이 인간들과 같이 두발로 다니며 앞발에는 채찍을 든 모습들이 나온다. 애초에 만들었던 7계명이 단어 하나 둘을 끼워넣어 해석을 변형시키더니, 결국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는 변형된 계명만을 남긴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부분에는 인간들과 어울려 노는 돼지들을 보이다가, 결국엔 또 자기들끼리 고함치며 서로가 서로를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며 끝을 맺는다. 돼지의 모습이 인간이 되고, 또 인간의 모습이 돼지가 된 자신들의 욕심만 그득한 모습일 것이다.
책에서는 작품의 해설이나, 등장인물이 스탈린 시대의 어떤 인물들을 나타내는 지를 자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제공된 하나의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들에도 투영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덧붙혀, 그것을 볼 수 있는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이런 인물들을 솎아내어 살필 줄 아는 시야를 가져야 함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그것이 좌측이든 우측이든... 나 또한 한 쪽에 편향되어 다른 쪽을 무작정 막는 편협함을 경계할 것을 다시 새기며 독서일기를 마치도록 한다.
그는 어린 동물들의 교육이 이미 다 자란 동물들의 교육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농장의 모든 결정 사항은 다수결에 의한 투표를 거쳐야 했지만, 다른 동물보다 확실히 더 영리한 돼지들이 농장의 모든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는 합의를 보았다.
이 일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었지만 참여하지 않는 동물은 누구든지 식량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나폴레옹이 회의를 폐지했을 때 항의했던 네 마리의 젊은 돼지들이 이번에도 머뭇머뭇하며 이의를 제기해 보았지만 개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바람에 곧 입을 다물고 말았다.
동물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란 전의 생활상이 어땠는지 뚜렷이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존스라는 이름과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들은 대부분 동물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거기엔 7계명은 온데간데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 남아 있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만약 여러분에게 다루어야 할 하층 동물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게도 다루어야 할 하층 계급이 있습니다!
열두 개의 목소리가 일제히 화를 내며 고함을 치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들은 모두 똑같았다.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를 한 번 보고 인간을 한 번 보고, 인간을 한 번 보고 돼지를 한 번 보고, 번갈아 자꾸만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